“소속팀이 없다 보니까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동호회 리그에서 축구를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축구에 대한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생계유지를 위해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죠. 전기차배터리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서 하루 꼬박 12시간 동안 일을 했어요. 퇴근 후에는 ‘벽산 플레이어스’라는 팀에서 경기를 뛰었죠.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본 순간이었어요. 축구선수로만 살다가 사회에 나와 일하면서 ‘축구할 때가 정말 행복했던 거구나’라는 걸 느꼈죠.”
잉글랜드에 ‘제이미 바디(Jamie Vardy)’라는 축구선수가 있다. 바디는 잉글랜드 8부리그 아마추어팀에서 공장 일과 병행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7부리그로 이적한 그는 주급으로 고작 30파운드(4만6000원)를 받으며 꿈을 키워갔다. 이후 5부리그와 2부리그를 거쳐 마침내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며 리그우승뿐 아니라 득점왕까지 달성했다. 공장 노동자 출신 무명선수가 인생역전을 이뤄낸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프로리그에서 방출된 이후 아마추어리그인 7부리그에서 다시 시작해 3부리그까지 올라가며 맹활약을 펼친 선수가 있다. 바로 축구선수 허준호(27)다. 그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동호회리그에서 경기를 소화하며 축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노력한 끝에 K3리그(4부리그)를 거쳐 내셔널리그(3부리그)에 입성했다. 거기서 수많은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팬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물했다. 한국의 ‘제이미 바디’로 불리는 허 선수를 만나고자 경기도 수원시 근처 어느 한 카페로 향했다.
무적 신분에서 대학리그로 그리고 K리그 데뷔까지
허 선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체격이 왜소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새벽부터 꾸준히 기본기 연습을 하며 축구실력을 갈고 닦았다. 노력의 결실은 고등학교에 와서 빛을 발했다. 박지성의 모교인 수원공고에 입학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44회 대통령 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3학년 때는 ‘제35회 전국 대한축구협회장배 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마다 밖으로 나가서 개인훈련을 했어요. 그때 흘렸던 땀은 고등학교에 가서 빛을 보기 시작했죠. 중3 때 또래 경기도 못 뛰던 선수였는데 수원공고에 가서는 1학년 때 3학년 경기로 월반해서 뛰었죠. 그때 처음으로 노력하면 된다는 걸 느꼈어요. ‘하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아요.”
고교 졸업 후 청주대에 체육장학생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한 번의 실수로 무산됐다. 입학금을 제때 내지 못해 입학이 취소된 것이다. 당시 그는 동계훈련에 참여하느라 바빴고 부모님도 가게운영으로 바빠 등록금고지서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무적(無籍) 신세로 전략한 그는 팀을 찾아 방황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4부리그 소속 ‘광주 광산 FC’의 입단테스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여기서 합격한 뒤 입단하게 됐다.
광산 FC는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소속이자 호남대학교 2군 팀이었다. 호남대는 국가대표 선수를 많이 배출해 축구계의 명문학교로 꼽힌다. 그는 여기서 잘해 호남대로 반드시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0년 간 단 2명만이 광산 FC에서 호남대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호남대 이사장님이 축구를 엄청 좋아하셔서 호남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잘하는 선수를 뽑아요. 잘하는 선수들로 1군을 채웠기 때문에 굳이 2군 선수를 올릴 필요는 없죠. 잠깐 좌절했지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러자 운이 찾아오더라고요. 호남대 감독님이 바뀌면서 광산FC 감독님이 호남대 코치로 들어갔고 저를 호남대로 콜업(call up)했어요. 노력하면 기회가 찾아오고 운도 따라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허 선수는 호남대 축구팀으로 올라오자마자 각종 대학 축구 대회에 출전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한국대학축구연맹이 주최하는 ‘KBS N 제12회 2015 전국추계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전국 32개 대학을 꺾고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15 카페베네 U리그 왕중왕전’에서는 팀을 8강까지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해 팀 내 선수들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대학리그(U리그)에 가자 동호회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여기서 통하겠느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처음엔 기존 선수들로 선발 라인업을 짜서 나가더라고요. 약간 차별받는 느낌이 들었죠. 저를 데리고 왔던 코치님이 감독님한테 ‘준호를 한 번 써보라’고 어필하더라고요. 경기에 나가자마자 골을 넣었죠. 그때부터 쭉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어요.”
U리그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K리그 최다우승팀 전북현대와 1년 계약을 맺었다. 4부리그 선수에서 1부리그 선수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약간의 운도 따라줬다. 당시 전북현대에서 우선지명을 받은 호남대 선수와 함께 입단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뽑힌 것이다. 하루하루 새롭고 신기했다. 이동국, 김신욱 등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경기를 뛰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하부리그 선수와는 다른 K리그 선수만의 프로정신도 배울 수 있었다.
“하부리그에 있을 때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면 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와 달리 전북현대 선수들은 지고 나면 항상 자기 탓을 먼저 하더라고요.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이죠.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1년 이상 쌓이면 달라요. 남을 탓하며 발전하지 않는 선수와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발전하는 선수와의 격차는 크죠. 이러한 사소한 마음가짐 하나하나를 전북현대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1부리그의 벽은 높았다. 전북현대와 재계약을 맺는 데 실패했다. 다시 새로운 팀을 찾아야 했다. 2부리그에 속한 팀으로 이적하는 게 거의 확정됐지만 막판에 해당 구단이 감독을 교체하면서 흐지부지됐다. 3부리그로 이적할 수 있었지만 도전을 택했다. 바로 해외진출이었다. 그는 스페인 7부리그 ‘꿈 FC’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곳에서 그는 7경기에서 11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치며 죽지 않은 득점본능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저와 맞지 않는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이미 바디’라는 선수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7부리그부터 1부리그까지 올라갔던 전설적인 선수죠. 유럽의 하부리그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어서 그게 가능했던 것이에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한국의 제이미 바디’가 되고자 도전했죠. 이런 생각으로 스페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어요. 1년 간 열심히 해서 상위리그로 올라갈 것이라고 다짐했죠. 동료들이 의아해했지만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공장 노동자로 ‘투잡’ 뛰며 동호회리그에서 세미프로까지 올라가
엄청난 활약으로 스페인 3·4부리그 팀에서 허 선수에게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 중 CD바다호스라는 3부리그 팀으로 이적해 프리시즌에서 경기를 뛰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시련이 찾아왔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군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비자를 연장할 수 없었다. 허 선수는 일단 군복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해 6개월의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에서 선수생활 하는데 있어서 군대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그때 실감했어요. 연봉도 밥만 먹고 살 정도로 그리 높지 않았죠. 계산해보니까 스페인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2~3년 정도로 한정돼 있더라고요. 많지 않은 나이였기에 군대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상황에서 축구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국내로 돌아왔지만 소속팀을 구하긴 쉽지 않았다. 일단 먹고 살아야 했다. 생계유지 수단으로 오후 6시까지 전기차배터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퇴근하고 나서는 동호회리그로 분류되는 7부리그에서 경기를 뛰며 아마추어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사회에서 처음 쓴맛을 봤죠. 축구선수로만 살다가 사회에 나와서 처음 일했는데 축구할 때가 정말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전엔 노력은 했지만 운동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즐겁지는 않았어요. 힘들었기 때문이죠. 근데 사회에 나와서 일 해보니까 그 시간들이 엄청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축구에 대한 감사함이 생겼죠.”
허 선수는 군 제대 후 입단테스트를 거쳐 K3리그 소속의 시흥시민축구단으로 이적했다. 당시 25살로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부모님의 걱정도 컸다. 그는 부모님께 리그 첫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그만두고 골을 넣으면 계속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해 우승팀인 화성 FC를 상대로 허 선수가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제대하자마자 팀에 합류하며 첫 경기로 뛰었던 화성 FC와의 경기를 잊을 수 없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운동장에서 엔돌핀이 솟아났던 것 같아요. 뛸 때마다 설렜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걸 느꼈으니까요.”
허 선수는 2개월 간 5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는 등 빼어난 활약으로 3부리그 천안시축구단의 입단테스트 제안을 받았다. 당시 천안시축구단은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아 후반기 때 열심히 하는 선수들로 재편하는 중이었다. 그는 테스트 첫 경기 때 ‘인생경기’라고 할 정도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정식 계약을 맺게 됐다.
“1부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많이 있어서 실력이 K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주전경쟁에서 밀려 초반 한 3경기 동안 벤치만 지켰죠. 팀 성적이 좋지 않자 감독님은 변화를 원했어요. 그러던 중 팀 훈련이 끝나고 헬스장에 홀로 남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던 제게 감독님이 ‘허준호, 몸 좋냐’고라고 묻더라고요. 이에 ‘당장 저를 써주시면 잘할 자신 있습니다’라고 답했죠. 그러고 다음 주에 선발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어요. 잘하면 계속 뛰고 못하면 끝나는 상황이라 사실 엄청나게 부담스러웠죠.”
부담스럽긴 했지만 골을 넣는 것보다 전방에서 열심히 싸워주고 뛰어주는 걸 기대해 선발로 넣었다고 생각하며 경기에 집중하고자 했다. ‘역할에 충실하자’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자 마음이 편해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그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저는 앞에서 선수들이 잘할 수 있게끔 열심히 뛰어주면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어요. 물론 골도 넣었죠. 그 경기 이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 선발로 뛰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다섯 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어요. 4골 1도움이었죠. 3부리그 전체 라운드 MVP도 수상했죠. 그러고 나서 바로 좋은 조건으로 1년 재계약을 했어요.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게 재계약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이뤄서 너무 좋았어요.”
이듬해에도 천안시축구단에서 뛰었지만 팀 성적이 전년과 비교해 3위에서 11위로 떨어지자 그를 포함해 기존 선수들 대부분이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결국 계약만료로 팀을 떠났다. 허 선수는 다시 무적 신분으로 돌아왔다. 올해 6월 태국 2부리그의 람팡 FC로부터 이적제안을 받아 재기를 노렸으나 무릎 부상으로 두 달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무릎을 다쳤어요. 무릎 연골이 찢어져서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태국의 의술은 좋지 않아서 한국으로 가서 수술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계약을 해지했죠. 그 팀도 새로운 용병선수를 구해야 하잖아요? 기량이 완전히 물올랐을 때 부상을 입어 경기를 못 뛰게 되니까 너무 아쉬웠어요.”
두 달 전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현재 유소년선수를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 은퇴를 선언한 건 아니다. 주위에선 선수를 복귀할 생각이 없냐는 식으로 계속 연락오고 있다. 하지만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무릎 부상을 당한지라 고민이 많다. 선수로 복귀할 수 있고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아니면 완전히 다른 분야로 나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실패하든 성공하든 노력을 계속 멈추지 않는 것이죠. 희망을 느낄 수 없을 때 다 포기하고 싶은 기분에 빠지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근데 거기서 끝까지 가라앉지 않고 일어서려고 노력하면 비록 앞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할 수 없다고 말해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요. 저는 분명히 경험했어요. 운은 노력하는 자를 따라간다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노력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허 선수의 말을 들으며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희망이 느껴졌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