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를 돌려받은 상훈은 헛웃음을 웃었다. 쪽지까지 선우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민망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로펌 임원들한테 매년 나가는 건데 티오가 생겨서 이모님 한 장 드렸더니 감당이 안 되나 보네. 어떻게 이게 이렇게 돌아오나?”
선우는 돌아서 방으로 들어왔다. 상훈과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의리상 시장선거일까지 한 집에서 살기로 한 거지만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때가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이상훈과 관계가 엮이는 게 싫었다. 이혼 후 보여 준 상훈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매우 실망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수빈 이야긴데 잠깐 나와서 이야기 할까? 아님 내가 들어가도 되고.”
아마도 상훈과 선우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건 이수빈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수빈에 대한 선우의 질문에 상훈은 화영에게 무슨 소리 들었냐고 말을 되받았다. 그래서 선우는 화영과 상훈이 수빈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눈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 화영은 펄쩍 뛰었다.
“내가 상훈 씨랑 수빈이 이야기할 게 뭐가 있어? 백화점이랑 리조트 고문변호사 소개받을 때 통화한 게 전부야. 상훈 씨가 수빈이를 어떻게 안다고 내가 뭔 이야기를 나누겠니?”
그래놓고 다시 수빈 이야기를 하겠다니 그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수빈이 이야기 내게 할 게 뭐 있어?”
선우는 상훈이 방으로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문을 열고 나갔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좀 있어.”
상훈은 머쓱하게 웃으며 거실 테이블로 가 앉았다. 상훈은 깊게 파고 들어가 보지만 않으면 좋은 남자에 속했다.
“며칠 전엔 전혀 아닌 것처럼 굴더니 진술 번복하는 거야?”
상훈이 큰 소리로 웃었다. 상훈은 변호사인 시어머니의 인텔리한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오래 전 상훈에게 조금이라도 끌림이 있었다면 아마도 시어머니를 빼닮은 인텔리한 태도 때문일 거라고 선우는 항상 생각했다.
“한 때 이수빈 씨 여자로 만났던 적 있었어. 마지막이 그렇게 돼서 마음이 안 됐지만. 당신한테는 숨기고 싶지 않아서….”
선우는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앞 계단에서 찍은 상훈의 사진이 생각났다. 수빈은 상훈의 얼굴을 도려낸 채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
“두 사람 만났을 땐 많이 수빈이 많이 어렸던 때 아닌가? 많이 좋아했던 것 같던데….”
“그냥 지나가는 청춘 한때의 객기 같은 거지. ”
선우의 넘겨짚은 말에 살짝 당황했던지 상훈은 얼른 일어나 냉장고에서 음료 두 병을 꺼내서 가져왔다. 재미있게도 시장 공천이 정해진 후 상훈은 과천댁에게 사사로운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그럼 혹시 수빈이 우리 미술관에서 뛰어내린 이유도 알아?”
“내가?”
상훈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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