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를 중심으로 대형 건설사가 국적 불명 아파트 이름의 개선을 위해 뜻을 모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건설사들이 마치 명칭 개선 동참 선언식에 참석한 것을 잊은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외국어 조합으로 만들어져 한 번에 뜻을 알기 어렵고 점점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으로 불편이 커지자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선 것은 서울시다. 2022년부터 공동주택 명칭 개선을 위한 사전조사·실태 분석·시민 인식 조사에 나섰고 건설업계·학계·조합장 등이 참석한 공개 토론회를 두 차례 개최했다.
과거 아파트 이름은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결합해 알기 쉽게 지어졌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아파트 브랜드를 출시하고 ‘에듀’ ‘파크’ ‘퍼스트’ 등 펫네임(아파트의 특징을 부각시켜 브랜드명에 추가적으로 붙이는 별칭)이 더해지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두 개 이상의 건설사가 시공한 단지의 경우엔 단지명이 더 길어진다.
최근 서울시는 전문가·조합·건설사 의견을 바탕으로 ‘공동주택 명칭 제정 가이드라인 안(案)’을 발표하고 주체성·공공성·경제성·편의성·자율성을 명칭 작명 5대 원칙으로 삼았다. 어려운 외국어 사용 자제·우리말 이름 발굴·고유 지명 활용·펫네임 자제·최대 10자 내외 글자 수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되 다수가 선호하는 명칭으로 제정하는 자율성도 존중했다.
다만 이는 사실상 권고 수준에 그치고 강제성은 전혀 없다. 단지명이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조합원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시 외 지자체와 대형·중견 건설사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동주택 명칭 개선 동참 선언식’은 지난해 12월28일 ‘공동주택 명칭 개선 3차 토론회’ 이후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앞서 서울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현대건설·대우건설·포스코이앤씨·GS건설·롯데건설·DL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금호건설·두산건설·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공사(SH공사) 등에 참석을 요청했다.
이 중 금호건설을 제외한 모든 건설사가 토론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건설산업을 이끌어 가는 주요 건설사로서 아름다운 주거 문화와 건설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공동주택 명칭 개선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서울시 담당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가 동참했기 때문에 오히려 참여하지 않는 건설사가 시대에 뒤처지는 것으로 취급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해 캠페인을 이어 가겠다”고 전했다.
물론 시의 권고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펫네임 사용을 지양해 귀감이 되는 건설사도 있다. 한화 건설부문은 아파트 브랜드 ‘포레나’를 출시한 이후 펫네임을 사용하지 않는 브랜드 중심의 네이밍 전략을 추구해 왔다.
서울에서는 조합원들이 지역명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강북 권역에서도 ‘포레나 노원’ ‘포레나 미아’ 등 펫네임을 사용하지 않고 브랜드 이름과 지역명을 조합해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 단지명을 지었다. 경기도에서도 ‘포레나 광교’ ‘포레나 킨텍스’ ‘포레나 북수원’ 등의 명칭을 사용했다.
최근 선보인 브랜드 광고에서도 건설업계에 만연한 펫네임 문화의 문제점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 화려하게 포장된 이름이 아닌 ‘주거의 가치에 집중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반면 동참 선언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서울시와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일부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태도를 바꿨다.
‘여의도 1호 재건축’이라는 상징적인 사업을 수주한 대우건설은 공작아파트 재건축 단지에 ‘써밋 더 블랙 에디션’이라는 단지명을 제안해 아쉬움을 남겼다.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의 수주전이 한창인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에는 현대건설이 ‘디에이치 여의도 퍼스트’를 제안한 상태다.
서울 밖으로 지역으로 넓혀서 보면 삼성물산이 부산 촉진2-1구역 조합에 ‘래미안 에스팰리스 부산’을 단지명으로 제안했다. ‘단지명 간소화’를 스스로 약속한 대형 건설사들이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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