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안보서기가 5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을 급거 방문했다. 5월 중순까지 국방장관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을 수행하던 쇼이구는 현재 안보 관련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일인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폭사하자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강력한 보복을 예고해 전면전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손님으로 온 인사가 자국 수도에서 암살당해 이란 조야 통틀어 흥분 상태다. ‘전쟁으로 이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이 소식통을 거쳐 외신에 전해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 대표단을 이끌고 테헤란을 찾은 쇼이구 서기가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리 참모총장을 차례로 만났다.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 전망으로 기대를 모아 온 그는 쇼이구와의 회담에게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이 우리나라에서 하니예를 암살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전쟁 확대나 위기 고조를 의도하지 않지만 이 범죄엔 확실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페제시키안이 “특정 강대국 일방주의 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등 미국 중심 패권 질서에 대한 비판이 부각되기도 됐다. “세계 다극체제 촉진을 위한 이란·러시아의 협력으로 세계 안보와 평화가 강화될 것”이라고 하자 쇼이구는 “러시아의 주요 전략적 동맹 중 하나인 이란과의 관계가 모든 분야에서 발전 중”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타스통신이 쇼이구의 이란 방문에 대해 “안보·무역·경제 프로젝트 등 광범위한 양자협력 현안과 중동 의제 등을 다룰 것”이라고 간단히 보도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급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확전 방지를 위한 미국 등 서방의 노력은 묵살된 상태이기에 이번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면 러시아가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와 이란이 군사·안보 분야에서 순망치한의 관계가 됐지만 소련 시절부터 친밀한 사이다. 더구나 푸틴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친밀한 관계이기도 하다. 드물게 이스라엘·이란 모두와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중동 사태를 진정시키며 가자지구 문제를 최우선하자는 취지의 푸틴 메시지가 쇼이구를 통해 건네졌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러시아 역시 지난달 31일 하니예 암살 직후 중도적인 논평을 냈다. 러시아는 “중동 평화 시도에 반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을 뿐 이스라엘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한편 dpa통신에 따르면 인접국 요르단의 항공 당국이 5일 자국 영공을 이용하는 항공기들에게 안전 지침을 배포해 45분 추가 비행을 위한 연료 사전 보충을 권고했다. 이란의 보복 공격이 개시될 경우항로를 긴급 변경해 주변국에 착륙하게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전날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이 급히 테헤란에 날아가 자제를 설득했으나 이란의 보복 의지만 재확인했다고 보도됐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위치한 요르단은 4월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첫 공격 당시에도 인접국 중 가장 먼저 영공을 폐쇄하며 긴급히 대응한 바 있다. 당시 이란은 시리아 주재 영사관이 이스라엘에 폭격당한 후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드론·미사일 300대 이상을 날렸으나 대부분 방공망에 가로막혔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테헤란 주재 각국 대사·공관장들과의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중동평화 유지에 실패했다면서 미국에 이스라엘 지원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이슬람협력기구(OIC)가 이란의 요청으로 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하니예 암살과 이란의 대응을 논의할 예정임을 밝혔다. OIC엔 이슬람권 57개국이 속해 있다.
이란의 잇단 경고에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주례 각료회의에서 “공격과 방어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돼 있다. 우리를 향한 어떤 공격행위이든 무거운 대가를 물릴 것”이라며 응수했다. 이어 같은 날 밤 회의에선 ‘선제타격’ 방안까지 논의됐다고 이스라엘 현지 매체 와이넷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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