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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번아웃 오기 전에 스위치 끄기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13 06:31:0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와이파이 인터넷이 종종 안 될 때가 있다. 거실에 있는 공유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컴퓨터는 계속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고 한다. 여러 번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걸 참고 참다가 결단을 내렸다. 36℃의 더위를 뚫고 애프터서비스 매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친절한 기사 분이 내 노트북을 점검하더니 인터넷 연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연결이 안 될 때가 있냐는 질문에 답은 간단했다.
 
“가끔 공유기의 전원을 꺼 두셔야 하는 건 아시죠?” 
 
내가 그걸 알았으면 일하다 말고 한나절을 소비하며 폭염 속에서 서비스 매장을 찾지는 않았을 거다. 기계치인 나를 탓하면서 컴퓨터가 멀쩡하다는 고마운 말에 위안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모임에 갔는데 휴대폰을 꼭 꺼 두어야 하는 자리였다. 나는 휴대폰을 끄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폰을 바꾼 지가 몇 년 되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전원을 꺼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젊은 후배의 도움으로 문제는 해결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황당하다.
 
나는 기계를 알지 못하지만 열심히 챙기는 게 있다. 여름에 밤새 선풍기를 돌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30분이라도 꼭 꺼 둔다. 이유는 단순하다. 열대야를 지켜 준 선풍기에게 휴식시간을 선사하는 것이다. 냉장고처럼 어쩔 수 없이 계속 돌려야 하는 가전제품도 있지만 난로나 선풍기나 에어컨처럼 잠시 꺼 놓을 수 있는 물건들은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불쌍한 나의 휴대폰은 몇 년 동안 잠시도 쉬지 못한 채 열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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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시간에 쫒기거나 하여 컴퓨터 작업을 쉬지 않고 오랫동안 하다가 보면 컴퓨터가 느려지는 것은 기본이고 아주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한다. 정교한 기계인데도 ‘혹사시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휴대폰도 컴퓨터처럼 가끔씩 스위치를 꺼 주어야 한다고 한다. 스마트폰도 컴퓨터의 일종으로 오래 켜 두면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원인은 메모리 누수 현상이라고 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앱을 실행하면 필요한 데이터를 메모리에 올려 두는 방식으로 작동되다가 앱을 종료하여 데이터가 필요 없어지면 메모리를 다시 비운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찌꺼기가 쌓이고 이것이 반복되면 배수구가 막혀 물 빠지는 속도가 느려지듯이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메모리 누수를 방지하는 확실한 방법은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이다. 스마트폰도 주기적으로 전원을 끄면 최적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도 쉬지 않으면 번아웃을 경험한다. 번아웃은 몸으로 오기도 하고 마음으로 오기도 한다. 짜증을 느끼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져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면 마음의 번아웃이다. 피로가 쌓여 몸살과 두통이 오면 몸의 번아웃이다. 둘 다 제때 돌아보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 약을 먹거나 수술이나 시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스스로 몸과 마음의 스위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나의 스위치를 가끔 꺼 두지 않으면 좀체 낫지 않는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의 번아웃은 수년간 전혀 병원을 찾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게 살았던 나도 연달아 몇 년을 겪은 일이다.
 
작년 겨울에 암을 발견하여 봄에 수술을 받은 지인이 있다. 건강검진 덕택에 조기에 발견하여 항암과 방사선 표준치료 과정이 끝나 가는 중이다. 며칠 전 안부 전화를 했더니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다시 활동할 예정이라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이번 학기에 바로 대학원에 복학하여 더 늦기 전에 과정을 끝낼 계획이라고 한다. 매사에 치밀하게 성실한 그는 석사논문을 쓸 때 과로로 응급실에 실려 간 경력도 있다. 덜컥 염려가 된 내가 제발 한 학기만 더 쉬라고 말렸지만 그가 그럴지는 의문이다.
 
번아웃은 인간관계에도 존재한다. 친구든 가족이든 너무 친밀하면 힘들어진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헌신적으로 갈아 넣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 상대는 그의 순수성을 살짝 의심한다.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문에 오히려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으로 관계에 충실한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슬퍼하고 분노하기 일쑤이다.
 
친밀함이 압축적으로 연속되면 관계에도 번아웃이 온다. 이럴 때는 찌꺼기가 쌓이지 않도록 스위치를 꺼 주어야 한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평행선을 걷다 보면 해결된다. 때로 매몰차게 전원 스위치를 끌 수 있다면 좋은 관계이다. 스위치를 내려도 서로를 신뢰하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은 찌꺼기 없는 건강한 사이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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