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선에 국내외 눈길이 쏠리고 있다. 1기 시절의 실패 사례로 ‘인사 오류’를 꼽던 트럼프가 마이크 폼페이오(60) 전 국무장관의 배제를 공개 천명해 주목된다. 그는 9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서 “현재 구성 중인 행정부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와 폼페이오 전 장관을 부르지 않을 것”이라며 “함께 일한 것을 매우 즐겁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봉사해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헤일리(52)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대항마로서 마지막까지 날을 세웠다면, 폼페이오는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가 대선 불복 와중에서 고전할 때 그를 2021년 1월6일 사태의 배후로 거세게 몰아 간 세력에 가담해 함께 공격한 전력이 있다. ‘이번 유세에서 찬조연설을 하는 등 충성을 보인 폼페이오가 배제돼 궁금증을 키운다’ 식의 국내외 보도엔 핵심적인 배경 설명이 빠져 있다.
1986년 미 육사를 수석 졸업한 폼페이오는 트럼프 1기 때 중앙정보국(CIA) 국장·국무장관 등 요직 중의 요직을 지내며 대외정책 전면에 섰던 인물이다. 폼페이오의 재등용 가능성에 트럼프 가족·측근·지지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폼페이오를 트럼프에 적대적인 네오콘의 일부로 본 것이다. 한 지지자가 10일 SNS에 폼페이오 배제 결정을 반기며 “모든 네오콘·전쟁우선론자들의 배제”를 주장하자 도널드 주니어가 이를 퍼나르면서 “100%, 100%, 100% 동의”를 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를 마치 트럼프 진영 내 권력투쟁인양 전하고 있다. WSJ 10일 온라인판 사설은 트럼프 2기 실세로 등장한 트럼프 장남 도널드 주니어의 행보를 ‘JD 밴스 대통령만들기’ 프로젝트로 지목하며 폼페이오 배제, ‘국방 강경파’ 톰 코튼(아칸소주)의 상원 잔류를 “트럼프 외교정책에 순조롭지 못한 신호”로 지적했다.
밴스를 ‘트럼프 후계자’로 옹립하려는 세력이 2028년 대선에서 밴스에 도전할 만한 중량급 인사의 진입을 막으려 한다는 게 WSJ의 해석이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지원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지 등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을 믿는 폼페이오와 헤일리에 비해 트럼프주의자들은 미국이 그런 역할에서 발을 빼길 원한다고 봤다. 이런 WSJ 분석은 트럼프를 단순한 이기적 고립주의자로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중국의 강력한 도전 앞에 예전 같지 않은 미군을 수습해 최강의 군대로 부활시켜 억제력을 배가시켜야 한다고 이미 트럼프는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강한 군대만이 군대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인류사의 교훈과 오랜 군사학·전쟁론에 기반한 관점이다. 또한 트럼프처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이전에 군사학교를 다니며 일찍부터 손자병법을 탐독한 사람에겐 매우 익숙할 논리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명분 삼아 ‘전 세계 경찰노릇’을 자임했고 미 방위산업체가 크게 몸집을 불렸다. 동시에 중국공산당 협력 아래 제조업의 이전(移轉)이 대거 이뤄져 일자리 상실과 서민·중산층 몰락을 낳았다. 밴스 부통령 당선인의 출세작 ‘힐빌리의 노래’(2017)에 잘 그려져 있다. 민주당 글로벌리스트와 공화당 네오콘이 국경을 넘나들며 큰 부·명예를 누릴 때 미국 황금기를 이끌던 공업지대엔 마약과 복지수당에 의존해 사는 백인들이 늘어났다.
1차·2차 세계대전 등 유럽의 갈등에 휘말려 들지 않으려는 고립주의 경향이 미 보수 공화당의 기본 체질이지만, 1990년 전후로 자유민주주의 전파를 앞세워 군사력를 전개하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네오콘)가 출현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아들 부시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이 네오콘 전성기였으나 사담 후세인 제거가 이란 제어 세력을 없앤 꼴이 돼 중동 정세는 오히려 더 꼬여 갔다.
이들 20년 전쟁에서 미국이 수렁에 빠진 가운데 퇴조 기미의 네오콘은 건재했으며 미국인들의 세금을 한없이 빨아들였다. 이에 자국민부터 챙기겠다는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다. 다만 2016년 당선되긴 했으나 공화당 내에서조차 트럼프는 이방인이었고 민주당 글로벌리스트와 연대한 네오콘에 둘러싸여 손발이 묶여 있었다. 2기 인선에 트럼프 진영의 촉각이 곤두선 이유다.
반(反)트럼프 세력은 ‘이름만 공화당’(RINO)의 대표격인 네오콘 거물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 리즈 체니 전 연방 하원의원 입을 빌어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를 저격하며 카멀라 해리스 편에 섰다. 폼페이오가 이들과 한무리로 간주된다는 것은 심각한 사태다. 트럼프와 갈등을 빚다 2019년 9월 ‘트위터 해고’ 당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대표적 네오콘 인사다. 2020년 3월 출간된 회고록에서 트럼프을 맹비난했고 2차 탄핵 명분인 ‘권력남용’의 근거 자료를 제공했다.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2019년 8월 트럼프는 이미 승인된 우크라 원조 3억9100만 달러 집행 기한이 다가오자 막아섰다. 우크라 수사당국으로부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 관련 자료를 넘겨받기 전까지 원조를 보류하려 했다고 한다. 2020년 1월3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이란 쿠드스군(혁명군 정예)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를 주도해 네오콘 부활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아브라함 협정’ 등에서 드러난 트럼프 중동 구상의 골자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관계를 수립시켜 이란의 힘을 빼 미국이 중동에 덜 관여하는 방향이다. 셰일가스 채굴이 가능해져 미국은 에너지 자립국이 됐고 중동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조로 이를 뒤엎은 게 현 조 바이든 정부였다. 이에 따른 유가 인상이 러시아에게 오일머니를 안겨 우크라 침공의 뒷받침으로 작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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