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11-03 08:57
뉴스 > 칼럼
[스카이 View] 고려아연 최씨·장씨의 볼썽사나운 이별
고려아연 분쟁에 LG그룹 인화(人和) 부각
구인회 "결별하더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
이상준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15 00:02:40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하기란 어려우니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사업하면 성공하기 쉽다. 그러나 ‘형제끼리도 동업은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사업에 성공하더라도 경영권을 놓고 다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구인회와 허만정은 승산 마을에 살면서 사돈이 되었다. 구인회가 1931년 포목사업을 하자 허만정은 셋째 아들(허준구)을 맡기며 자금을 댔다. 구인회와 허만정은 1947년 동업해서 락희화학공업(현 LG생활건강)을 창업했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구인회는 경영에서도 인화(人和)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동생과 아들에게 “만나면 되도록 헤어지지 말아야 하고 할 수 없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손잡고 웃으면서 헤어지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만석꾼이었던 허만정은 아들들에게 “앞에 나서지 마라. 조용히 시키는 대로 잘 따르라”고 가르쳤다. 이런 까닭에 구씨는 사업과 공장 건설을 맡았고 허씨는 재무와 회계를 챙겼다. 허만정 아들 허신구와 허준구는 순응과 겸손의 미덕을 지켰다. 구씨 가문을 돋보이게 하려고 인터뷰에 나서지 않았고 회사의 성과는 구씨 가문의 덕으로 돌렸다.
 
구본무 회장이 1995년 LG그룹 3대 회장이 되자 아버지 구자경 회장과 함께 창업세대인 허준구(LG전선 회장)와 허진구(LG석유화학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은 경영자 활동에 부담을 주지 말자”는 구자경 회장의 뜻에 허씨 집안은 군말없이 따랐다. 허준구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02년 7월 구씨 집안은 상주처럼 빈소를 지켰다. 인화단결이 돋보였던 두 집안이 2004년 LG그룹(구씨)과 GS그룹(허씨)으로 계열 분리하자 세상은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칭찬했다. 구씨와 허씨 집안은 65%(LG)와 35%(GS)라는 지분율도 끝까지 지켰다.
 
영풍그룹도 시작은 LG그룹과 비슷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장병희와 최기호는 1949년 동업해서 무역회사 영풍기업사를 차렸다. 장씨와 최씨 집안은 1974년 고려아연을 세웠다. 최기호가 고려아연 초대 사장이 되었지만 공동경영 정신에 따라 장기호가 2대 사장을 맡았다. 공동경영 원칙은 2대까지 이어져 장씨 집안이 영풍을 운영하고 최씨 집안이 고려아연을 경영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아연과 황산 등 원료를 공동구입해서 제련하면 공동판매했다. 장병희 차남 장형진과 최기호 장남 최창걸도 공동경영 원칙을 지켰다. 
 
그러나 최씨 집안의 투자 실패가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최창걸은 2006년 영풍 지분을 팔았지만 장형진은 영풍이 가졌던 고려아연 주식 27%대를 샀다. 2대 주주로 전락한 최씨 집안은 허씨 집안과 달리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다. 최씨 집안 3세 최윤범은 2022년 고려아연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씨 집안을 등졌다. 미국 변호사로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서 쌓은 경험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활용됐다. 최 회장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한화그룹을 백기사로 확보했다. 최 회장과 한화그룹 후계자 김동관 부회장은 미국 세인트폴 고교 동문으로 절친하다고 알려졌다. 
 
고려아연 지분을 살펴보면 장씨(35%대)가 최씨(10%대)보다 훨씬 많았지만 최윤범 회장이 우호지분을 끌어들이면서 엇비슷해졌다. 고려아연은 올해 6월 장씨 집안 4세를 사실상 대표이사에서 쫓았다. 본사를 영풍빌딩에서 그랑서울빌딩으로 옮기면서 영풍과 함께 사용하던 로고도 바꿨다. 최근 고려아연 사태를 보면 LG그룹과 GS그룹이 보여 준 아름다운 이별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광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승자의 저주를 떠올린다. 영풍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판결이 사실상 최씨와 장씨 집안의 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석포제련소 조업 중단이 결정되면서 영풍으로선 매출 급감을 피할 수 없다. 고려아연이 비철금속 해외유통을 맡았던 서린상사(현 KZ트레이딩) 경영권을 뺏으면서 영풍은 원료 수급 및 해외 판매 판로가 막혔다. 게다가 지분 경쟁을 위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으면서 경영권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최씨 집안도 고민이 많다. 최윤범 회장은 투자 관련 배임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친구인 지창배 씨가 운영하는 사모펀드(원아시아파트너스)에 이사회 의결 없이 총 5800억 원을 투자해서 고려아연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 때문이다. 미국 폐기물 재활용 회사 이그니오 홀딩스 매출이 수십억 원대에 불과하지만 무려 5800억 원에 사들인 이유도 석연치 않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누가 이기더라도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허씨와 구씨의 동업은 이별마저 아름다웠으나 최씨와 장씨의 동업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1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62,439 ▶
어제 196,604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