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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10> ‘평범한’ 삶이 얼마나 그립고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9 06:30:51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전국에서 그러모은 중학생 6명
 
그 후 모란봉여관 1층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다른 도(道)에서 온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북한 전역에서 당시 나와 같이 중앙당에서 불러 평양에 온 중학생들이 나를 포함해 모두 6명이었다.
 
당시 평양에 모였던 6명의 인적 구성을 보면 황해남도에서는 내가, 황해북도에서는 명수, 평안남도·강원도에서도 각각 1명씩 오고 평안북도에서만 2명이 왔다.
 
나중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해 보니 위에서 얘기한 6명 가운데 황해남도에 살던 나를 포함해 강원도의 박문일과 황해북도 한명수 등 3명만 공작원으로 최종 선발되었고,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에서 왔던 나머지 3명은 탈락했다. 결국 평양까지 왔던 인원 가운데 50퍼센트만 합격한 셈이다.
 
당시 평안남도에서 왔던 친구는 신체검사가 끝난 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간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탈락한 것 같다. 평안북도에서 온 2명은 참으로 운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이들 2명이 숙소인 모란봉여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사이에 도둑이 방에 들어와 1명의 옷을 모두 훔쳐간 것이다. 그래서 중앙당 지도원이 상점에 가서 옷을 사 입혔는데, 아마도 그때 옷을 도둑맞은 것이 약점으로 평가되어 결국 탈락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밤에만 찾아오는 중앙당 간부
 
당시 평양에 올라와 신체검사와 면담을 하면서 느꼈던 특징적인 부분은 모든 일을 낮이 아닌 밤에만 진행했다는 것이다. 매번 저녁 9~10시경에 승용차가 와서 나와 명수를 태우고 평양 시내를 한참동안 빙글빙글 돌다가 면접 장소로 가거나 신체검사 장소로 이동했다. 아마 6명 가운데 탈락하는 친구가 발생하더라도 그가 어디에 갔다 왔는지 모르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 같다.
 
나중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과 공작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신체검사는 평양의학대학병원과 공작원 전용병원인 915병원에서 각각 실시했고, 면담은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연락부 초대소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모란봉여관은 물론 평양시 당위원회 청사에서도 여러 명의 간부를 만나 면담을 했다.
 
신체검사는 도에서 했던 정도로 했고 면담 내용 역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다만 ‘라틴아메리카를 왜 라틴아메리카라고 하는지 아느냐?’라는 질문과 ‘희랍(그리스의 북한식 표현)이 어느 대륙에 있느냐?’ 등의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2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나중에 질문했던 간부가 ‘라틴아메리카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국가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며 ‘희랍은 구라파(유럽)에 있는 나라’라고 가르쳐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본 가정(假定)이기는 하지만 그때 간부들이 물어본 문제들에 답을 완벽하게 했다면 그 후에 해외공작 전담과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시 지리 상식에 대해 질문했던 간부가 연락부 이완기 부부장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개월 내에 안 부르면 마음대로 해라
 
5일간에 걸쳐 신체검사와 간부들과의 면접을 마친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 건강하게 공부 잘하라는 중앙당 지도원의 당부를 뒤로하고 다시 해주로 향했다. 그때 누가 최종적으로 선발되고 또 누가 탈락할지 몰라 명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다.
 
해주에 도착한 나는 도당 간부과 지도원을 찾아가 신체검사와 면접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도당 간부과 지도원은 이렇게 당부했다.
 
“고향에 가면 몸 건강에 특별히 유의하고 또 자그마한 사고도 내지 말고 생활을 잘 해라. 그리고 앞으로의 최종 소환 여부는 네가 이번에 평양에 가서 어떻게 했느냐에 달려있는데, 신체검사와 면접심사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소환할 것이고,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환하지 않을 거니까 기다려 보면 알 것이다. 네 말을 들어 보니 신체검사도 그렇고 면접심사도 괜찮게 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니까 두고 봐야 알겠지.
 
만약 1개월 이내로 부르지 않으면 불합격인줄 알고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도 돼. 다만, 그 전에는 그 어디로도 움직이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가는 길에 군당 간부과에 가서 보고하고 거기에서 지시하는 대로 하면 돼. 갔다 오느라고 고생했는데 집에 내려가서 푹 쉬어라.”
 
당시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 졸업 시기가 8월이었다. 그리고 대학으로부터 인민학교(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각급 교육기관의 새 학년도가 9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내가 평양에 가서 신체검사와 면접심사를 받고 내려온 2월 하순은 고등중학교 졸업을 불과 5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보통 3월부터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와 면접심사, 대학 입학을 위한 면접 및 추천 등 여러 가지 조치들이 실제적으로 취해진다.
 
 
▲ 북한 정권 창건 55주년인 2003년 9월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북한 군인들이 개인화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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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도당 간부과 지도원이 ‘1개월 내에 중앙당에서 소환하지 않으면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도 된다’라고 말한 것은 최종적으로 중앙당 소환 여부가 1개월 내에 결정되기 때문에 1개월 내에 중앙당에서 소환장이 내려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군에 입대하거가 일반 대학에 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나는 해주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와 군당 간부과 지도원에게 그동안 해주와 평양에서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보고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그동안에 겪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당에서 나를 데려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는지 무척 궁금해 하셨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최선을 다했으니 앞으로의 일은 일단 운명에 맡겨 놓기로 했다. 그동안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들뜬 기분을 자제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도 하고 산과 강에도 놀러가는 등 예전처럼 평범한 생활을 이어 갔다.
 
전투기 조종사에 선발되다
 
집에 돌아와 예전과 같이 생활하면서 군당 간부과 지도원이 지적해 준 내용들을 공부하면서 생활한 지 며칠이 지난 2월 하순 어느날, 군사동원부에서 나를 포함해 졸업반 남학생 20여 명에게 군 입대와 관련한 신체검사를 실시하려고 하니 읍 소재지에 있는 군사동원부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군사동원부는 북한의 모든 도·시·군에 설치되어 있는데 군 입대와 제대, 입대 대상자들의 이동 문제 등 병무행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한국의 병무청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근무 인원들은 모두 현역 군관(장교)들로 군복을 입고 근무한다.
 
군사동원부에서는 해마다 고등중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군 입대를 희망하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고 합격된 대상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 군종 및 병종별로 필요로 하는 인원만큼 필요한 시기에 입대시키고 또한 제대 군인들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고등중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신체검사(징병검사)를 나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반 친구들과 함께 군사동원부에 가서 신체검사표를 받아 군(郡)인민병원으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또다시 군사동원부에서 불러서 가 보니 군사동원부 부부장이 군당 간부과에서 요구했던 것과 같은 간부 문건(서류) 용지를 주면서 집에 가서 작성해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요구대로 집으로 돌아와 서류를 작성한 다음 그것을 가져다주며 어디 좋은 곳에 나를 보내 주는 것이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앞으로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생겨 조종사든 뭐든 시켜 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군사동원부 부부장은 나를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대학에 추천할 생각이라면서 집으로 돌아가 공부도 잘 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평양에 올라가 중앙당 간부들의 최종 심사를 받고 내려와 1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군사동원부에 몇 번씩 불려 다니며 간부문건 작성은 물론 신체검사와 면접심사를 여러번 하면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들떠 언제 또 나를 부를까 하고 은근히 기대까지 했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아직도 내게는 생생하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김정일군사정치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수 차례의 면접과 신체검사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없으세요? 저나 동생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자주 말씀해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사실 평범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이 왠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버지: 내가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의 신체검사와 면접심사를 했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어디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전혀 몰랐어.
 
그리고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또 평범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었지. 오히려 어렸을 때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보다는 특별하게 사는 것, 튀어 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
 
북한 사람들은 물론 나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중앙당에 소환되어 평양으로 가는 것은 곧 출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 난 최종 소환되어 갈 때까지도 김일성·김정일을 경호하는 요원으로 차출되는 줄 알았거든.
 
물론 내가 중앙당에 소환되어 가면 평범한 삶을 살게 될지, 아니면 특별하고 힘겨운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어.
 
그런데 내가 남파공작원으로 생활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삶이라는 것과 함께 그러한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삶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때에야 비로소 ‘평범한’ 삶이 얼마나 그립고 행복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지.
 
그래서 너희들에게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항상 얘기해 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군복무를 하는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며 군 입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한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너희들이 아버지의 얘기를 경청하고 군복무를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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