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의 ‘민감 국가(SCL)’로 지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도 흔한 설계 소프트웨어를 유출하려 한 배경에 중국 또는 북한 등 적성국에 이를 넘기려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원자력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 미국 연방에너지부(DOE)가 한국을 SCL로 지정한 이유는 DOE 산하 연구소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유출하려 시도하다 적발됐기 때문으로 17일(현지시간) 전해졌다.
익명의 원자력 전문가는 18일 본지에 ‘원자로 설게 소프트웨어’는 충분히 국산화 설계가 가능해 미국 설계 코드를 일부러 빼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가 아주 많으므로 따로 위법한 사항을 저질러 유출할 필요가 없고 심지어 원할 때 언제든 받을 수도 있는 실정”이라며 “미국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가 정말 필요한 국가가 있다면 ‘중국’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한국은 원자력 기술 및 원료를 북한·중국에 넘겨온 사실을 미 당국은 꾸준히 포착했다”며 “현재 보고서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부 감사관실은 미국 의회에 제출한 2024년 회계연도 상반기(2023년 10월1일~2024년 3월31일) 보고서에서 수출 통제 조사를 진행하면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한 계약업체 직원이 수출 통제 정보를 소지하고 한국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다가 적발돼 해고됐다고 적시했다.
해당 직원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감사관실은 해당 정보가 수출 통제 대상임을 확인하고 직원의 정부 이메일과 채팅을 조사해 직원이 수출 통제 규정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외국 정부와의 소통이 있었음을 밝혀냈다”고 못 박았다. 감사보고서 제출 당시 연방수사국·국토안보국이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외국 정부와의 소통’에 주목한 전문가는 “외교 분란으로 이를 적시하지 않았으나 ‘중국’ 혹은 ‘북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급했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사례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주요 산업 분야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21년 디스플레이 제조 자동화 기술 관련 영업비밀 17건을 중국 회사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기업 S사의 전직 연구원 A씨를 비롯해 2019년부터 중국 업체와 협력하며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연마제 생산설비 구축을 도운 대기업 직원 B씨 사례도 있다.
올해 서울경찰청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국가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피의자 4명을 검거했다.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으로의 적극적 탈취가 지속해서 이뤄졌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원자력 기술을 빼앗고, 중국과 협업을 강화하는 상황을 미국 정부가 우려해 적극적인 제재에 나섰다는 추론이다.
다만 보고서는 한국으로 추정되는 외국 정부와의 통신 내역은 설명하지 않았다. 에너지부는 올해 1월 한국을 SCL에 추가했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SCL 지정 이유에 대해 외교 정책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미국 측을 접촉한 결과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한 것은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미국 측은 리스트에 (민감 국가로)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면서 “정부는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정부 관계기관들과 적극 협의 중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도 본지에 “한·미 군사기술 협력은 이전과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며 이번 조치로 유의미한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주 미국을 찾아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에너지 현안을 협의한다. 이번 보안 유출 사건을 논의해 SCL 명단 발효 시점으로 예상되는 4월15일 이전에 한국을 명단에서 삭제하려는 합의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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