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이라는 별명이 붙은 4월이 중반을 넘어간다. 이번 봄은 유난히 시끄럽다. 나랏일도 그렇고 나라 밖 일도 그렇고…. 게다가 웬 산불은 그리도 많았는지! 이러구러 수습되는가 했더니 태풍과 맞먹을 만한 돌풍이 불어 피해가 심하다. 지붕이 날아가고 간판도 춤을 추고 다친 사람도 많다. 날씨는 또 왜 이리 변덕이 심한가! 20도를 웃도는 초여름 기온이었다가 쌩하게 추워져서 우박에 눈까지 내렸다.
그 사이에 꽃은 맹렬하게 피어났고 뒤질새라 새싹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봄이란 게 시시각각 다르다. 몸에 와닿는 체감도 그렇고 시각적인 풍경도 그렇다. 개나리·철쭉·목련·복숭아꽃·벚꽃들이 줄서서 연달아 피어나고 시들다 보니 풍경도 제각각이다. 노련한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풍경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과정을 단계 단계 감상하는 것 같다. 자연에는 완성이란 개념이 없고 그저 모든 게 진행형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변화무쌍하다 보니 봄은 인간에게 욕을 많이 먹는다. 꽃구경 나들이 가려고 했더니 예상치 않은 비에 꽃이 다 져서 원망스럽고, 포근한 날씨에 얇은 옷으로 기분 냈더니 기온이 급강하해서 감기 들어서 속상하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봄날에는 단 하루 동안에 136가지 제각각의 날씨를 느낀다”는 유머도 남겼다. 봄 날씨의 변덕스러움을 아주 잘 표현한 말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봄은 여자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 경우는 ‘그녀는 봄 같았다… 부드럽고 예측할 수 없으며 희망으로 가득한’ 같은 매우 로맨틱한 문장이 소설이나 시에 자주 쓰인다. 비슷한 말로 ‘모든 여자는 누군가에게 봄이다’는 표현도 있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숨겨진 의미가 있겠는가! 이 로맨틱하면서도 감성적인 표현 또한 문학 작품·영화 대사 등에 변형되어 사용된다.
동양에서는 아예 봄의 특성을 여성의 마음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고, 화창하다가도 금세 비가 내리는 변화무쌍함이 여성 감정의 섬세함을 떠올리게 했나 보다. 여성의 감정은 풍부하고 민감해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날의 날씨와 여인의 마음은 믿지 말라’는 옛 속담도 있다.
그렇다 보니 봄은 유혹과 설렘, 첫사랑의 계절이 되었다. 봄날 아지랑이 속에서, 흩날리는 꽃잎 가운데서 문득 운명의 상대를 본다. 초식동물들의 짝짓기 시기도 대부분 봄이다. 태어난 새끼들을 먹일 풀이 자라나는 시기이므로. 새싹이 나고 동물들이 깨어나고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계절이 봄이다 보니 봄은 여성, 즉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의 이미지와도 통한다.
그러니까 봄을 너무 나무라진 말자! 감기 들었다고, 마음이 울렁댄다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고 생명력이 웅비하는 봄한테 투덜댈 건 없지 않은가. 봄이야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온 대기와 땅속을 꽁꽁 얼려 버린 겨울에게 이제 방 비워 달라고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입춘이니 경칩이니 내 알 바 아니라고 버티고 있는 겨울을 밀어내자니 봄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사실 봄은 차가운 음(陰)의 기운과 뜨거운 양(陽)의 기운이 대대적으로 한 판 붙는 접전의 장(場)이다. 1라운드부터 10라운드를 거쳐 음과 양이라는 두 선수가 링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이다. 이 기간이 없다면 생명의 새로운 리듬이 어디에서 울려 올까. 시냇물은 어떻게 흐르기 시작하며 꽃과 잎은 어찌 피어나겠는가. 식물과 동물, 인간 모두 봄에게 빚지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도 처절하고 시급하고 치열하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하루에도 136번 변화하는’ 요동침과 술렁임은 살아 있다는, 살아 낸다는 증명서이다. 그런 봄을 거쳐야 모든 생명은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운다. 열매를 향해 달려 나간다. 우리는 겨울과 봄의 친숙한 관계를 이미 알고 있다. 겨울을 겪어 낸 나무만이 꽃을 피우듯 인생의 봄 또한 고통스러운 겨울을 견딘 자에게만 온다는 것이다. 고통은 다름 아닌 정화(淨化)를 수반한다.
4월의 중턱에서 여름과 봄을 생각해 본다. 여름의 무성함과 활발한 성장과 성숙을. 하늘을 찌를 듯한 가지의 왕성함과 땅 속 깊이 스미는 강인한 뿌리를. 태양과 마주하는 잎의 성숙함과 부끄러운 듯 내미는 작고 보드라운 열매를! 우리를 마중하는 이 어른스러운 여름은 수줍지만 혈기왕성한 봄이 자기 임무를 다한 결과이다. 당신의 인생은 지금 여름인가, 아니면 봄인가. 한창 봄이라면 흔들림과 휘청거림에 내맡기자. 어느덧 성큼 여름이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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