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사기로 가로챈 돈을 자유적금계좌에 쪼개 입금한 뒤 인출하고,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외화계좌와 증권계좌를 거쳐 세탁한다. 범죄 조직이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적금과 외화계좌, 법인체크카드까지 악용하면서 자금세탁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김형원 민생금융 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국내은행 20개사 준법감시인·보고책임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신종 자금세탁 의심거래 유형과 검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미흡 사례를 공유했다. 참석자들은 의심거래 조기탐지 시스템 고도화와 은행권 자금세탁방지(AML) 대응 역량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김 부원장보는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청소년 대상 도박과 마약 범죄가 늘고 있다”면서 “범죄 조직이 가상자산과 해외송금, 법인계좌, 외화계좌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활용하고 있으므로 은행권이 한층 강화된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금융·통신·수사기관이 보이스피싱 정보 공유·분석 AI 플랫폼인 ASAP을 적극 활용해 의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은 자유적금계좌를 악용한 중고거래 사기를 대표적인 신종 수법으로 꼽았다. 일부 은행은 자유적금계좌의 신규 개설을 제한하지 않아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만들 수 있다. 범죄 조직은 이런 허점을 이용해 피해금을 여러 계좌로 나눠 입금받은 뒤 계좌를 해지하고 자금을 빼돌린다. 금감원은 은행권이 자유적금계좌 개설과 해지를 일부 제한하고 고객확인과 의심거래 보고를 강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법인체크카드를 활용한 자금세탁도 새로운 위험으로 떠올랐다. 범죄 조직은 사용한도 제한이 없는 법인체크카드로 대량의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되팔아 현금화한다. 외화계좌를 이용한 자금세탁도 적발됐다. 범죄 조직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원화계좌로 받은 뒤 해외주식 거래 목적처럼 꾸며 타행 외화계좌와 증권사 위탁계좌를 거쳐 다시 원화로 환전한 뒤 현금으로 인출했다.
금감원은 검사 과정에서 확인한 문제점도 공개했다. 일부 은행은 여러 고객에게 동일한 휴대전화 번호를 등록해 대포통장 의심 사례를 방치했고, 사기이용계좌 등록 이력이 있는 고객을 자금세탁 저위험 고객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또 소비자보호 부서가 확보한 사기 의심 계좌 정보를 고객확인이나 의심거래보고에 활용하지 못했고, 영업 규모에 비해 AML 전담인력과 전문성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사례가 나왔다.
금감원은 은행권에 고객확인을 강화하고 의심거래 적출 기준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한편 적극적인 의심거래 보고를 당부했다. 참석 은행들도 금융범죄 사각지대를 줄이고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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