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실정으로 벼랑 끝에 몰린 정부·여당이 집값 안정화를 명분 삼아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회·청와대 등을 세종시로 이전할 경우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서울·수도권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행정수도 이전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강력한 추진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은 서울·수도권 집값 안정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많은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 효과가 미비한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 또 다른 목적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기 대권에서 충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일종의 선심성 정책이라는 주장에 무게감이 실린다.
부동산정책 참패에 결국 등 돌린 민심…대선 앞둔 정부·여당 행정수도 충청이전 추진
최근 문재인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 여론이 정부·여당을 향한 반발 여론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선이 2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불거진 현 사태에 정부·여당은 긴장한 기색을 내비치며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서울·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해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행정수도의 완성은 국토 균형 발전과 지역의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이자 필수 전략으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많은 기관이 지역으로 이전했고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 행정기능을 지역으로 옮긴다고 공공서비스가 부실해질 염려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등은 행정수도가 아닌 것처럼 서울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도시, 세계도시로 계속 성장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발표 이후 여당 주요 인사들도 행정수도 이전에 힘을 보태는 발언을 쏟아냈다. 차기 대권주자로 지목되는 이낙연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은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며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힘을 보탰다. 김부겸 전 의원은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대책을 세워봐야 한계가 있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국토균형발전 철학을 되살려 보자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실화 가능성 희박하고 서울·수도권 집값 못 잡는 행정수도 이전 ‘진짜 목적은’
180석을 차지한 슈퍼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카드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추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당초 목적인 집값 안정화 효과도 미비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집값 안정화 효과 자체가 미비한 행정수도 이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부동산 정책 실정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아닌 충청도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을 발의하고 다음 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이후 행정수도 이전지역 최종 후보지까지 결정했지만 그해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행정수도 이전은 전면 중단됐다.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조선 시대 이래 600여 년간 우리나라의 당연한 규범적·전통적 사실이었고 헌법적 관습 또한 자명하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결국 공공기관(중앙부처 포함) 지방 이전만 계획대로 진행돼 지난해 말 153개 기관(혁신도시 112개, 개별 이전 22개, 세종시 19개)이 이전을 완료됐다.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은 다른 지역의 수요 과밀만 일으킬 뿐 서울·수도권의 집값 안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비좁은데다 세종으로의 교통망이 이미 잘 발달 돼 있어 행정수도를 옮기더라도 서울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수도 이전을 추진한 호주의 경우 행정수도 캔버라와 경제수도인 멜버른은 약 666km, 뉴욕과 워싱턴은 약 450km 떨어져 있다. 세종과 서울의 거리는 약 140km에 불과하다. 멜버른과 뉴욕은 근현대에 수도이전을 추진해 교통망이 지금처럼 발달 되지도 않았지만 KTX기준으로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는 50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또 여당의 수도이전 추진 이후 투기 수요가 몰려 세종시와 그 일대 부동산 시세만 요동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세종시 새롬동 ‘새뜸마을10단지 더샵힐스테이트’ 아파트 전용면적 59㎡는 지난 22일 6억1000만원에 팔려 이전 최고가(6월25일) 5억6500만원보다 4500만원 올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7·10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사안이 부각된 적은 없다”며 “그런데 지난달 대책 이후 여론이 안 좋아지자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정부·여당의 계획대로 국회와 청와대 등을 이전하게 되더라도 민간 산업 기반을 분산시키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며 “서울·수도권 과밀 현상은 일자리 때문이지 행정기관 때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투기 세력이 몰려 세종시 집값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행정수도를 이전하게 되면 상징성 때문에 잠깐 미미한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서울·수도권 과밀 현상이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며 “미국이 워싱턴으로 행정수도 옮겨 경제와 행정을 분리시킨 것은 사실이나 뉴욕으로의 과밀을 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행정수도와 경제수도를 분리 시켜 과밀을 분산 시킨 사례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세종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약간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사회적 비용을 감안 했을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세종과 서울이 동시에 오르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지적했다.
[배태용 기자 / 생각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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