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의 ‘관치금융’ 강화 행보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여당은 금융권이 이익공유제, 이자제한 등의 선심성 정책에 동참하도록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에 배당 축소까지 권고하는 등 경영 간섭의 강도도 심해지고 있다. 여론 안팎에서는 혈세 퍼주기와 더불어 금융권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또 다른 형태의 퍼주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익공유제, 배당억제 등으로 외국자본 이탈 가능성 대두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올해 6월까지 중간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국내 금융지주사의 배당을 한시적으로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실시하는 권고안을 의결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금융사의 자본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금상환·이자유예에 따른 대출부실화를 대비해 충당금을 미리 쌓아두라는 얘기다.
당국의 이번 권고안에 ‘고배당주’로 여겨지는 금융사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배당금이 줄어들면 외국자금이 이탈해 주가가 하락할 수 있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4대 금융지주사 평균 배당성향은 25~27%다. 당시 KB금융지주는 8611억원(26.0%), 신한금융지주(25.97%) 8839억원, 하나금융지주(25.7%) 6165억원, 우리금융지주(27.0%) 5056억원 등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최근 증권사에서 발표한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예상 순이익에 배당성향 20%를 대입하면 KB금융은 7362억원, 신한지주는 7330억원, 하나금융은 5116억원, 우리금융은 2739억원 등의 배당금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산하면 전년(2조8671억원)에 비해 21.4% 감소한 2조2547억원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배당성향이 줄어들게 되면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적으로 내국인 투자자들에 비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배당을 고려한 투자의사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희 한남대 교수가 지난 2017년 한국재무관리학회지에 발표한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선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의 배당락일 이전에 배당선호 거래는 다른 투자자그룹에 비해서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선호 거래는 직전연도의 배당수익률과 양(+)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배당공시일보다 배당락일이 선행하는 국내의 배당제도 하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배당락일 이전에 직전연도 배당수익률 정보를 반영한 거래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또한 배당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배당락일 이전에 매수함으로써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의사 결정에 배당 수익이 고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KB금융지주·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 등의 외국인투자자 비율은 각각 66.32%, 58.48%, 67.19% 등이다. 코스피 시총 상위종목인 삼성전자(55.15%), SK하이닉스(49.92%), LG화학(43.10%) 등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배당성향 하락 조치에 따라 외국인투자자가 빠져나가면 금융사는 주가하락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배당성향을 20%로 제한한다고 발표한 이후 4대 금융지주의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27일부터 29일까지 3거래일 동안 KB금융 주가는 4만2400원에서 4만300원으로 4.95%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신한지주와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도 각각 5.26%, 7.24%, 5.68% 감소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세 달 동안 국내 은행주는 5.3% 상승하는데 그치면서 같은 기간 35.4% 상승한 코스피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며 “그동안 금리상승으로 순이자마진(NIM)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주가 약세를 보인 것은 배당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민간기업 아닌 정부 부처로 전락한 은행…정부·여당, 우월적 지위 이용해 ‘돈줄’ 취급
금융권에 대한 정부·여당의 압박은 금융당국 보다 수위가 더욱 높다. 일례로 현재 여당 내에선 이익공유제 논의가 한창이다. 이익공유제는 은행이나 기업의 이익금 중 일부를 소상공인 등 코로나 피해 업종과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만 이는 충당금을 쌓아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방침과 충돌하는데다 정부·여당이 금융당국을 압박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민간기업에 대한 갑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로 많은 이득을 얻은 계층이 코로나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방식을 우리 사회도 논의해야 한다”며 이익공유제 논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어 24일 여당은 금융권과 함께 현재의 서민금융 기금(3900억원) 규모를 5000억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금융 기금은 ‘햇살론’ 등 정부지원 서민대출의 보증 재원이 된다.
정부·여당의 행보에 금융권은 물론 다수의 경제단체까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업종과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향후 생겨날 수 있는 여러 논란과 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조사본부장은 “코로나 상황에 따른 이익이나 피해, 업체별 기여도 계산을 과연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란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업체 간의 협력을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여당 내에서 은행의 이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권에 대한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난달 19일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KBS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코로나 상황에서도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 업종은 금융업이다”며 “은행이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가고 있는데 임대료처럼 이자를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계층의 대출 이자를 감면하거나 이자 상환을 유예하도록 하는 이른바 ‘이자 멈춤법’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말 이낙연 민주당 대표 역시 시중은행에 예대금리차(예금 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 완화를 요구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이 대표는 4대 시중은행 간부와 가진 화상간담회에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하소연이 있다”며 “서민 가계의 부담 경감을 위해서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당시 이 대표의 발언은 부탁의 형식이긴 했지만 우월적인 위치에 놓인 입장이라는 이유로 ‘부탁을 가장한 압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리를 낮춘다는 것은 대출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며 “과도한 가계부채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은행에게 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책적인 측면으로 보더라도 적절하지 않”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 이자를 낮추면 은행 예금 금리도 낮아짐에 따라 예금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은 코로나 피해를 명분으로 금융권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상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조치 등도 요청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금융권의 일시상환대출 만기연장금액, 분할상환하는 원금상환 유예, 이자상환 유예금액, 이자상환이 유예되고 있는 대출 원금 등은 각각 116조원, 8조5000억원, 1570억원, 4조7000억원 등에 달한다. 올해 3월 추가 연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어 금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은 한국형 뉴딜펀드 등 정부사업과 관련해서도 이미 ‘돈줄’ 신세에 내몰렸다. 지난달 22일 정부·여당은 17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인 K뉴딜 사업 중 70조원을 민간 금융지주사가 조달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치금융’으로 인해 올해 4대 시중은행들은 마이너스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6.1% 줄어든 2조2750억원으로 전망된다. 그 밖에 신한은행(1조8910억원)과 하나은행(1조8110억원), 우리은행(1조3400억원) 등도 전년 대비 순이익이 각각 8.7%, 13.1%, 11%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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