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럭비공 같은 MZ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20,30대로 모바일과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를 지칭한다지만, 도대체 MZ이 무엇에 대한 약자인지 해석은 구구하다. M은 밀레니얼의 약자임이 분명하지만, Z가 모호하다. 20세기의 끝인 90년대라는 설, ‘제네레이션’을 압축해서 부르는 것이라는 설 등 다양하지만 20,30대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모바일과 SNS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과거부터 이어진 세대 갈등에 젠더 갈등까지 부가되어 기성세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미의식조차도 많이 다른 것 같다. 기성세대가 보편적이라 믿어온 미적 기준들과는 확실히 다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것일까.
오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展(22.1.18~4.17)이 그 일단을 엿보게 한다. 김혜리, 전가빈, 곽인탄, 남진우, 최은정, 정나영 6인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로서, 회화, 조각, 키네틱 작업을 하는 80년대 생들이다. 아날로그 기반의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정서적으로 낯설고 어색할 수도 있는 주제나 양식들이 주를 이룬다. 다분히 반항적이며 개성적이고, 또한 거침없는 파격적 행태와 강렬한 색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신명나게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물론 현실에 대한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김혜리는 화면에 과거 ‘이발소 그림’ 혹은 ‘싸구려 그림’ ‘상투적인 복제 이미지’ 등으로 폄하했던 텍스트들을 자신의 화면에 대거 인용하고 있다. 고뇌하는 작가의 예술혼이 없다 하여 키치라 불리는 코드나 부류의 화풍들을 가혹하게 폄하하는 문화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작가의 서사에 대해서는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어릴 때 그 기법들을 흉내내면서 그림 교과서로 삼았던 입장에서 답답함이 많았다. 작가는 ‘밥 로스’ 풍의 웻-온-웻(wet on wet) 기법을 터득하여, 키치 풍의 텍스트들을 자신의 화면에 다채롭고 활기차게 구성하고 있다. 적어도 이 점은 확실하다. 그러한 류의 화풍으로 복고한다기보다는, 과거의 민화를 현대적으로 이용하여 민화의 가치와 현대회화의 가치가 시너지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것.
전가빈은 시멘트와 철근으로 조소 작업을 한다. 조각은 전통적으로 석재, 동, 흙 등의 재료를 주로 쓰는데 시멘트는 다소 생소한 재료다. 물론 최근에는 경도나 강도가 개선된 특수 시멘트들이 보급되어 공공미술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전통적 재료에 비해 ‘염가 재료’라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 전통적 재료들은 내구성과 고급 감각의 물성에 기인한다. 작가가 모델링을 하는 소재는 주로 만화영화 주인공 캐릭터들이며, 패러디의 문맥을 즐겨 구사하고, 아울러 의도적인 거친 텍스추어로 표현하고 있다.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 뽀빠이, 아톰....시멘트 덩어리 공간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 조합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너지를 유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한 명의 조각가 곽인탄은 고전적 거장이나 전 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는 트렌드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보통은 기존 텍스트를 인용할 때 이미지나 특징들을 부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체로 원형의 왜곡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거의 동세나 골격을 남겨두고 디테일의 경우 참고작품의 연관성이나 유사성이 사라질 정도, 나아가 악몽 속에서 나올 법한 형태로 해체나 변형을 한다 “ 과거의 회화, 조각들을 과감하게 나의 작품에 도입, 배치, 분해하여 나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노트) 움베르토 보치니, 나움 가보, 타틀린, 드 쿠닝 등의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해체하여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내는 양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근 들어 과거 불후의 명화라 일컬었던 영화들이 판타지로 리메이크되고 있다. 어느 사이 판타지가 청년문화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게임의 영향일까. 남진우의 페인팅도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영웅과 괴수’ ‘주인공과 악인’ ‘천사와 악마’ 등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는 언제나 스릴이 넘친다. 신화나 전설, 종교적 스토리 등과 관련하여 상징주의적 극적 서사를 흔히 접해 온 작가는 깊은 영감을 받고 자신의 화면에 등장시킨다. 자세히 보면 괴물을 등장시키지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얼굴들이 편재하고 있어 의아해진다.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 속에 여성성, 미녀 속에 남성성이 드러나는 것과도 흡사하다. 어쩌면 오늘의 세계를 더 리얼하게, 환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접근하면 바로 구조물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정나영의 ‘사악한 회전’(Vicious Circle)이다. 마치 판테온 같은 다층 구조마다 비슷한 포즈의 피규어들이 놓여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계급이나 계층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구조가 회전하면서 인물들은 일정한 재현운동을 제한적으로 반복한다. 초당 16컷으로 활동성이 영사되는 뤼미에르의 메커니즘이 작동함으로써, 피겨들로 하여금 모종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춤추는 동작을 보이는데, 또 어떻게 보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찰나의 순간적 왜곡, 그리고 끊임없이 윤회가 이루어지는 반복 회전은 혼돈 속에서도 어떤 질서나 원리가 작동하는 오늘의 세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최은정은 1927년 발표된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Metropolis’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토피아이면서도, 아래에서는 지속적으로 고된 노동을 피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가 설정된 SF같은 서사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거기서 더 나가는 듯하다. 적어도 외면적으로 기계와 인간, 기계와 자연이 혼재되거나 공존하는 파라다이스가 그것이다. 조각적인 변형 캔버스에 (shaped canvas) 그려진 ‘열대도시’(tropical city)에서 보듯 자연생태의 상실을 기술 혹은 기계의 힘으로 복원하는 듯하다. 사방에 황홀한 무지개가 오히려 어떤 모순이나 역설을 암시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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