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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폐기를 선언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주제로 언급되면서 원자력 산업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산업이 멈춰 있으면서 경쟁자들이 성장하고 인력과 설비가 손실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합의로 원전 산업 재건 날개… 정부·기업 투자 움직임
지난달 2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원전 산업·기술을 선도하고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 원자로(SMR)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원전시장도 동반 진출키로 의견을 모았다.
SMR은 하나의 용기 안에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일체화한 300MW 이하의 원자로를 말한다. 모듈 형태를 띠고 있어 건설 비용과 시간 면에서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발전 목적에 따라 다양한 지역에 건설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향후 원자력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더해 한미 원전 기술 이전 및 수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8년 8월 이후 개최되지 않았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HLBC)도 재가동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글로벌 에너지 안보 증진을 위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원자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 한국,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 강화를 위한 굳건한 토대를 제공할 목적으로 한미 원전 기술 이전 및 수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와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자력 수출 진흥, 연료공급 확보 및 핵 안보 협력을 심화하기 위해 원자력 고위급위원회와 같은 수단을 활용하기로 약속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을 통해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폐기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예전부터 탈원전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워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탈원전 백지화’와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한 줄 공약을 발표하며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예고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던 우리 원자력 생태계가 고사위기에 빠졌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력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3일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선제적 예비품 발주 △운영 허가 만료 원전 계속 운전 허용 △원자력안전위원회 전문성·독립성 확보 방안 마련 등 에너지 주요 정책을 포함시키며 탈원전 정책 폐지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에 더해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도 원자력 사업 재건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산업부는 지난달 16일부터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와 손잡고 원전 수출 기반 구축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총 사업규모는 47억9000만원이며 33억2000만원은 국비로 지원한다.
현지 원전 행사 개최나 참여, 주요 인사 초청 및 현지 원자력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에 21억3000만원을, 수출정보 수축 및 분야별 전문가 의견 수렴 및 세미나 개최 등에 18억4000만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정부가 원자력 산업 육성에 나서며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팀 단위 조직이던 원자력 부문을 원자력 사업실로 격상하고 SMR 시장 진출을 선언하는 등 윤 정부 기조에 발을 맞췄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SMR은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축으로 떠오른 분야”라며 “현대엔지니어링은 이 분야에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고 친환경 포트폴리오 강화를 통한 ESG 경영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탈원전 후유증 심각… 인력 유출·전공자 감소·관련 기업 폐업 등
다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 발전이 정체기를 겪었던 만큼 재건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달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 원자력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자력 산업 분야 전체 매출은 문재인 정부 이전인 2016년 27조4513억원에서 2020년 22조2463억원으로 약 19% 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원자력 산업 해외 수출 계약 금액도 1억2641만달러에서 3372만달러로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특히 2019년 해외수출 규모는 2144만달러에 그쳐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낮았다.
한국 원자력 산업이 주춤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원자력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2027년까지 건설 예정인 50개 원자로 가운데 중국이 15개를 수주했고 러시아가 12개를 수주해 1,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확보한 원자로는 6개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경우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적 제재 등의 여파로 국제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러시아가 자초한 일이다. 반면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설 비용 등을 앞세워 오히려 원자력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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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임수진] ⓒ스카이데일리 |
탈원전 정책 여파로 원전 생태계가 초토화되면서 관련 기업들도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 중에는 폐업하거나 업종을 변경한 기업도 적지 않아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며 부품 수급 등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 문서 같은 것은 남아 있으니 기술력은 있다고 해도 공장도 다시 세우고 처분한 기계도 다시 구해야 하는데 이게 단기간에 가능할 리가 없다”며 “관련 인력들도 그만두거나 이직한 것을 생각하면 갈 길이 멀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실제로 인력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원자력 산업 분야 인력은 2011년 2만6200명에서 2016년 3만723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문재인정부 들어 소폭 감소해 2020년 3만5276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원자력 공급 산업체 인력이 2016년 2만2355명에서 2020년 1만9019명으로 줄어들면서 인력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원자력 관련 학과 입학생은 학사와 석·박사를 모두 포함해 608명으로 2016년(802명) 대비 4분의 3 수준으로 축소됐다. 원자력 전공 인력 재학생을 살펴보면 학사가 2016년 1819명에서 지난해 1482명으로 감소했고 석사는 2016년 359명에서 지난해 300명으로 줄었다. 박사의 경우 206명에서 233명으로 유일하게 증가했다. 석·박사 통합은 159명에서 150명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원자력 산업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외국이 아닌 국내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탈원전 산업으로 업계가 멈춰 있는 동안 SMR에서는 미국이 치고 나갔고 대규모 원전은 기술력은 남아 있으나 설비와 인원이 없는 상태”라며 “정부가 신한울 3·4호기부터 발주를 넣고 환경영향 평가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는 등 원자력 산업을 활성화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기업들이 SMR 사업에 나선다고는 했으나 이번에 진출을 선언한 현대엔지니어링이 국내가 아닌 캐나다에 투자하는 등 해외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들이 국내 원자력 산업 육성에 나서게 할 만한 동기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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