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날 너를 잡았던 손가락 마디마디에
내 심장도 뛰고 있었다 그날이 어제 같아
구석구석에 너의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은데
태워도 태워도 모자랄 아픈 사랑아
차라리 보내자 행복을 빌자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잖아
버리고 버려도 채워져 아픈 사랑아…” (‘너라서’ 중에서)
지난해 발표한 가수 유현상의 ‘너라서’는 발표 이후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남자의 아픈 사랑을 그린 이 노래의 호소력은 가수의 가창력, 감성적인 멜로디와 함께 남자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임휘 작사가의 가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가사 전달력과 애절함의 대가로 알려진 임휘 작사가(56)를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조용조용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때 묻지 않은 소녀의 감성이 느껴졌다. 그가 작업한 곡들에도 이러한 소녀 감성이 묻어난다.
취미로 하던 글쓰기에서 시인으로… 시인에서 전업 작사가로
서지오의 ‘돌리도’, 최진희의 ‘와인’ 등의 가사를 쓴 임휘 작가는 작사가로 데뷔한 지 15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작사가의 길을 걷고 나니 작사가가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쭉 활동해왔다.
“어렸을 때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기계체조나 높이뛰기 선수로도 뛰었죠. 입상은 못 했지만요. 글 쓰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가 처음부터 시인이나 작사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약 30년 전 임 작가는 지나가다 우연히 눈에 띈 여성백일장 대회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뜻밖에도 결과는 대상이었다. 상금도 받았다. 취미로만 글을 쓰던 그는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등단했다고 말했다.
임 작가는 이후 10년 이상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에서 대중가요 작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해바라기의 이주호 씨가 지인인데 제 시집을 읽어보고 작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 하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돼서 작사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작사가가 되고 나서 시는 못 쓰게 된 것 같아요. 적성도 작사가에 더 맞는 것 같고. 작품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시는 놓게 됐어요.”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하루아침에 작사가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시를 짓는 것과 노래 가사를 만드는 것의 차이를 물었다.
“보통 사람들이 시보다 가사 쓰는 일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시를 쓰는 것보다 가사를 쓰는 게 10배는 더 힘든 것 같아요. 시는 제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써 내려가면 돼요. 그런데 노랫말은 듣는 이에게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몇 줄 안에 모든 게 다 함축돼 굵고 짧게 표현해야 해요. 거기에 핵심이 들어가 있어야 하죠.”
시인에서 작사가가 되자 글에 접근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임 작가는 시가 영감, 영혼의 작업이라고 하면 작사가로서는 친(親)대중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널리 공감을 얻고 쉽게 대중에 어필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에 대한 고민도 더해졌다. 요즘 트로트가 다시 뜨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일부 장년층에서만 명맥을 유지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임 작가는 그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고민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젊은 층이 듣는 음악이 더 자유롭고 편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트로트는 듣는 연령층이 장년이다 보니 제약이 좀 있거든요.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깊이도 있어야 하고 사랑을 이야기해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이 익어가는 글을 써야 하죠. 작사할 때 가사의 깊이나 표현 등을 어떻게 할지 많이 고민해서 퀄리티 있는 작품을 쓰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트로트라는 장르가 우리나라 정서인 한과 정에만 치우친 가사들이 주를 이뤘고 가사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젊은 층에 다소 외면당해 왔던 것 같기도 해요. 그나마 요즘에는 트로트가 다시 대세가 되니까 젊은 층하고 기성세대의 거리가 가까워진 건 참 좋은 일이에요.”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좋은 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표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저마다 자기 재능이 있잖아요. 저한테 조금이나마 주어진 재능은 글을 쓰는 거니까 남들보다 자기표현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자기 안에 있는 걸 더 꺼내놓을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남들에겐 별것 아닌 것에서도 영감 얻어… 자식 같은 곡들 더 알려졌으면
임 작가는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 작업한 곡들에 대해 묻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최근에는 유현상 씨의 ‘너라서’라는 곡 작업을 했어요. 얼마 전에 TV조선 ‘사랑의 콜센타’에도 나온 곡이에요. 조항조 씨의 ‘블랙커피’, 임주리 씨의 ‘후회 없는 사랑’, 하동진 씨의 ‘당신도 여자’, 최진희 씨의 ‘와인’도 저의 작품이죠.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더 알려졌으면 좋겠는데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어요.”
임 작가는 본인이 작업한 곡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가수들이 활동을 더 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계속 덧붙였다.
“제 자식과도 같은 곡들이잖아요. 정성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제 혼이 담긴 곡들이니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요. 정성껏 쓴 곡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면 많이 속상해요.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방송을 열심히 하면서 곡을 더 알리려고 하는 가수들을 보면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작품이 방송에 나오면서 전국에 퍼져나갈 때, 많은 사람이 불러줄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니까요.”
임 작가에게 기억에 남는 곡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제까지 작업한 수백개의 곡들이 모두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제가 작업한 곡 중에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 곡도 있고 저 스스로 흡족하지 못한 곡도 있어요. 제가 작업한 노래들을 운전할 때 많이 듣는데 가사를 곱씹어 보면서 이건 잘했네, 하면서 만족하기도 하고 아 이건 별로다, 하기도 해요.”
“그래도 몇 개 뽑아보자면 서지오 씨의 ‘돌리도’, 조항조 씨의 ‘블랙커피’랑 최진희 씨의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까’랑 나훈아 씨의 ‘간다 이거지?’ 같은 곡들이 더 애착이 가요. 이 곡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작사가라면 모든 장르를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가리지 말아야 하지만 자기 성향이라는 게 좀 있잖아요. 특히 ‘블랙커피’가 제 감성에 정말 잘 맞는 곡이라 기억에 남네요.”
그는 최근 캠핑카를 타고 전국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인터뷰한 다음 주에도 여행을 간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많이 보고 많이 느끼면서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한 영감을 얻는다. 캠핑카 안에서 즉석에서 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굳이 가사를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좀 쉬어가자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가요. 너무 작품만 많이 하다 보면 에너지 고갈이 되잖아요. 그래서 충전도 하고 그냥 오면 서운하니까 가사가 될만한 거리를 한두 개씩 건져오고, 이러다 보니 제가 쓴 가사 중에 반은 여행하면서 쓴 것 같아요.”
“좋은 글을 보거나 좋은 장소에 가면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통해 영감을 얻어요. 남이 보기엔 별거 아니지만 그 별거 아닌 것에서 독특한 단어나 특이한 행동들이 떠오르면 주저 없이 써내려가요. 요즘 새롭게 뜬 서지오 씨의 ‘돌리도’ 는 분당 유원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아가 사랑을 돌려달란 아이디어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5분 만에 썼어요.”
가사를 다 썼다고 해도 작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사를 쓰고 나면 어떤 가수와 가장 잘 어울릴지, 어떤 작곡가와 작업을 했을 때 가장 잘 맞을지에 대해 찾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사를 쓸 때 어떤 느낌이 와서 쓴 거잖아요. 그러면 작곡가한테 부탁을 해서 어떤 가수에 맞춰 곡을 써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곡을 미리 만들어 놓고 어느 가수에게 어울리겠다 싶은 게 있어요. 그러면 가수한테 전달을 하죠.”
“반대로 가수나 작곡가에게 의뢰가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가사를 쓰죠. 어떤 방향으로 할지 어떤 콘셉트로 할지 전달 받았을 때 미리 써놓은 것 중에 맞는게 있으면 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새로 써요. 그쪽에서 원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임 작가에게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장르에 대해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에게서 ‘비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업해보고 싶은 장르도 있고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은 가수도 있지만 작품에 있어서는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계획은 많이 있으니 작품으로 보여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마지막으로 임 작사가는 자신의 이루고 싶은 목표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대중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불러주는 국민 가요를 만들고 싶어요. 작사가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꿈이 아닐까요. 스카이데일리 독자 여러분도 제가 쓴 노래들 많이 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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