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장을 던진 황교안 후보(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검사부터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 등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로 살아 왔다.
공직 생활 이후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계속됐다. 오히려 신발끈을 더욱 강하게 동여맨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누구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있는 21대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헌법에 명시된 국민 참정권을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선거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국운 회복의 첫 단추이자 사회 정의를 회복하는 시발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운 회복의 첫 걸음, 선거정의 바로 세우기 위한 묵묵한 걸음…“목표는 내년 3월 9일”
수십년 간 공안검사로 일하며 선거관련 수사를 다뤄 온 황 후보는 최근 사상 초유의 부정선거 의혹 해소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결정적 증거들이 하나 둘 수면위로 올라오고,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침묵하는 것은 국민에게 부여받은 의무를 등한시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는 선거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단순히 국민 개개인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선거로 권력 불균형이 생겨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이유에서다.
“선거 당시 유권자가 투표한 것을 개표한 것을 이의신청으로 인해 봉인해둔 것을 다시 꺼내 확인하는 작업을 재검표라고 합니다. 재검표는 대법원에서 심리를 합니다. 6월 28일 인천 연수구 을 지역구의 재검표가 있었는데 문제가 되는 투표용지가 무수히 많이 나왔습니다. 부정 투표용지를 막기 위한 투표관리관 도장란에 이상한 도장이 찍혀 있는 투표용지가 1000여장이 발견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개표 당시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이의를 기록해야 하는데 이의제기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사전투표함에서 빳빳한 투표용지가 발견된 것 입니다. 무려 전체 투표지의 3~40%에 해당하는 투표지가 그랬습니다. 보통 기표를 한 후 투표용지를 접어서 투표함에 넣는데 접은 흔적이 없는 투표지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누가 봐도 상식과 크게 어긋난 일입니다. 선관위는 원형 복귀 투표용지라고 해명했는데 그렇다면 왜 다른 투표용지들은 복구가 안 하는 것인지 국민 모두가 궁금해 합니다.”
“사실 그동안 부정선거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출처 없는 의혹이라고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선거에서 참패한 야권 의원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심리하는 재검표 현장에서 문제의 투표용지들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불법선거가 아니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황 후보는 부정선거 문제는 단순히 정치권의 기득권 문제가 아닌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권력의 쏠림 현상으로 특정 세력을 위한 불필요한 법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결국 그 피해는 온전히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이 총선 이후 더욱 어려워진 모습을 보며 더욱 부정선거 의혹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진심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국민에게 다가가 정권교체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거대여당을 만든 기반 중 하나가 부정선거라고 봅니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국민의 삶이 21대 총선 이후 소주성 드라이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작은 가게 하나 유지하기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를 보며 가슴에서 피가 끓어 올랐습니다. 더 이상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습니다.”
“선거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바른 정치만이 초일류 정상 국가로 가는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민의 판단을 믿습니다. 말만 앞서는 정치가 아닌 진심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언제든 새로운 광풍이 불 것이라는 믿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국민 위한 헌신적 자세의 토대는 늘 아낌이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
황 후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가시밭길을 스스로 자처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과 관련 깊었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고 이후 정치권에 뛰어들며 다시 한 번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게 된 데는 어머니가 보여준 희생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황 후보는 밝혔다.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그 역시 평생을 옳은 일에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됐다는 설명이다.
황 후보의 부모님은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1·4 후퇴 때 남한으로 피난 온 이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의 부모님은 공부만큼은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누구 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황 후보는 경기고를 거쳐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남들 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어머님의 믿음과 신뢰를 꼽았다.
“정말 많이 가난했습니다. 유년시절에 도시락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담임선생님과 나눠먹을 정도였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머님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무학인 어머님은 저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고 오히려 ‘거짓말 하지 마라, 남의 물건 탐내지 말아라’ 등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부분을 더욱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늘 존경해왔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황 후보는 항상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부모님을 보며 스스로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선택한 직업이 공직자였다. 그는 행정보다는 국가의 기강을 잡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법고시에 응시해 27살의 나이에 당당히 검사가 됐다. 이후 황 후보는 주로 공안사건을 다루는 공안검사로 재직했고 굵직한 성과로 ‘MR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27살에 임관해 청주지검, 홍성지청을 거쳐 서울지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서울지검에선 공안검사로 일을 했습니다. 당시 안기부(국정원 전신)가 전 국민을 상대로 조직적인 도청을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도청은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구속시켰는데 덕분에 국민 모두가 도청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생활을 마친 황 후보는 박근혜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일반 국민도 법적 자문을 쉽게 받을 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실제로 여러 가지 성과도 이끌어 냈다. ‘마을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5년엔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황 후보가 국무총리를 역임하던 시기 국정농단 사태, 대통령 탄핵 등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했는데 당시 그는 총리로서 국가와 국민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 혼란을 수습한 이후엔 총리직을 내려놓고 1년 반 가량을 평범한 시민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사회적 혼란은 가라않질 않았고 그는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 정계에 입문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다양한 사회적 제도 덕분에 국민의 삶이 나아졌지만 법적은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읍·면 단위의 작은 도시 일수록 더욱 심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변호사협회와 협력해 자원봉사·재능기부 개념으로 법적 초기 자문을 해줄 수 있는 변호사를 모집했고 1500명 규모가 자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 1412개 읍·면에 한명 이상의 변호사를 배치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마을변호사’입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성과를 인정받아 국무총리를 맡게 되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역임하게 됐습니다. 당시 대선 출마 요구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의 혼란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끝내 고사했습니다. 누구라도 혼란을 끝내길 바라며 그 때까진 내가 맡은 소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혼란을 잠재우긴 커녕 소득주도성장,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국민이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지지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사회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이대론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정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비록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되돌려 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공직의 길을 걸었을 때 그 마음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옳은 길을 걸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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