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박선옥 팀장|김재민·노태하·김나윤 기자]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업무 대신에 갖가지 무인화 기기들을 통해 손쉽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신속·정확·편리함의 장점으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무인화와 자동화 등 바야흐로 디지털 문명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명의 이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디지털 취약계층(정보취약계층)이 겪는 일상의 불편함이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공동의 과제이기에 정부당국도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디지털 정보 취약계층으로 꼽히는 장애인들과 노인들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음식점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사용 방법을 몰라 주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이들은 요즘처럼 택시 잡기 힘든 시기에 카카오택시 등 택시 어플을 통해 택시를 부르는 것도 너무 어려워 아예 택시 타는 것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의 이점이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는 역효과를 빚고 있는 모양새다.
디지털화 가속에도 시각장애인·노년층 디지털 소외 여전해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9월 자영업자 수는 552만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만6000명(0.5%)가량 감소했다. 고용원이 없이 홀로 영업하는 사장님의 수도 424만4000명으로 32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인건비 등 고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무인점포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키오스크 점포가 날로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이같은 디지털화에 대표적 취약계층으로 꼽히는 시각장애인들은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측은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유리 장벽과 같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며 “메뉴 고르기와 결제, 포인트 적립 등 복잡한 과정을 확인할 수 없고 신용카드 투입구도 찾지 못해 총체적으로 접근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지난달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시각 장애인 키오스크 권리 찾기’ 캠페인을 위해 서울시청 인근 ‘맥도날드’ 매장을 직접 찾아가 키오스크 주문을 한 뒤, 키오스크 이용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권리보장연대는 “국내 맥도날드 키오스크는 전맹 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기능이 전혀 없고,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화면 확대 기능도 무의미한 수준”이라며 “갈수록 키오스크 무인단말기 설치율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장애인을 위한 안내 기능은 턱없이 부족한데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각장애인들의 디지털 접근성 향상을 위한 ‘디지털시각장애연대’의 한혜경 대표는 “시각장애인이 국민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소비자로서 온라인 환경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문서는 접근성 없이 업로드되고 홈택스 연말정산조차 사용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보면 스캔한 이미지를 PDF로 변환해 그대로 등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접근성은 기술이 아닌 노력의 부족이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시각장애인도 디지털 시대에 소외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과 함께 대표적인 디지털 정보 취약계층으로 꼽히는 노년층도 가속화되고 있는 무인화 등 디지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디지털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평균 69.1%로 전 세대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키오스크와 관련해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로 거래한 경험이 있는 만 65세 이상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중복응답)를 실시한 결과 51.4%가 ‘상품 선택부터 결제까지 단계가 너무 복잡하다’고 하소연했다. 그 다음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주문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뒷사람 눈치(49%)’, ‘글씨체 안 보임(44.1%)’ 등의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생 전 모씨(27)는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과 관련해 “카페를 찾는 어르신들 10명 중 5~6명은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신다”며 “결국에는 키오스크를 옆에 두고 제가 직접 주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 모씨(62)는 “키오스크 사용을 할 때 인터페이스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불편하기도 한데 더 큰 문제는 사용하는 동안 뒷사람들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져서 힘들다”고 불편한 마음을 털어놨다.
패스트푸드나 카페뿐 아니라 공공기관을 이용할 때도 디지털 소외계층의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주민센터의 무인 민원발급기 사용시 불편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특히 주민등록등본 등 민원서류를 무인발급기로 발급하는 경우 수수료가 무료인 반면 창구를 이용한 발급에는 수수료가 500원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인발급기 쪽에 줄을 선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경우 대부분 무인발급기 이용 자체를 어려워하며 창구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지방직 공무원 김 모 씨(31)는 “주민센터를 찾는 고령층 어르신들 10명 중 8~9명은 주민센터의 무인발급기를 이용하려다 실패하고 결국에는 창구로 다시 찾아오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귀띔했다.
최 모씨(73)는 “무인 자동화기기를 사용해야만 서류를 뽑을 수 있다고 해서 이용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손을 못 대겠다”며 “간단하고 시간 절약할 수 있다고 하던데 눌러야 하는게 너무 많고 어려워서 결국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대중교통에도 불어온 디지털화에 소외받는 장·노년층
디지털화에 노년층들이 겪는 불편은 대중교통 이용 시에도 드러나고 있다. 최 모씨(71)는 기차 예매와 관련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할 때마다 막혀 포기했다”라며 “이미 표가 매진되어 입석을 타고 갈 때도 있다. 불편한 것은 알지만 평생 창구에서 표를 끊었기 때문에 이게 익숙하다”며 디지털사회를 살아내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장·노년층들도 최근 늘어난 스마트폰 앱을 통한 택시 예약과 관련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모씨(54)는 “80대 중반의 시부모님이 거동이 힘드셔서 병원 등을 가실 때 최대한 제가 직접 차로 모시고 다녀오고는 하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 제가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을 이용해 택시를 먼저 부른 다음 이용할 택시 차량번호를 문자로 보내드린다. 큰길까지 나가셔서 한없이 택시를 기다리실 것 같은 안타까움에 생각해 낸 방법”이라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모씨(58)는 “최근 밤 10시가 넘어 식당을 나와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택시들이 ‘예약등’을 켜고 지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20분이 지나도록 택시를 잡지 못해 집에 가는 데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택시를 호출해 타고 가는 동안 길거리에서 수십분간 ‘택시’를 외쳐야 했던 씁쓸한 기분이 영 가시지 않는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부를 포함해 각 지자체들은 앞다퉈 디지털 취약계층들에 대한 교육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이 느끼는 소외현상은 디지털 사회에 익숙한 구성원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선결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모두 함께 누리지 못하고 선택된 사람만 혜택을 즐기는 디지털사회는 '진정한 디지털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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