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에 결과 나온다고 하더라. 3시에 병원에서 만나자.”
미경과의 약속은 3시였지만 선우는 점심식사 후 바로 병원으로 나섰다. 김기태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술관 개관 행사에도 와 줬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했었다.
“식사 가셨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원장실은 명환이 쓸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금방이라도 명환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기태는 명환과 대학 동창인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선우가 어릴 땐 집으로도 자주 오고, 선우도 병원으로 와서 자주 만났지만, 대학 이후는 집안 대소사 외에는 만날 일이 없었다.
“어? 선우가 왔다고? 그래. 어서 와라. 반갑다.”
시간이 오후 두 시를 넘고 있어 한편 포기하고 있었는데, 곧장 기태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없다고 아예 병원은 발을 끊었나 했지. 오늘 참 잘 왔다. 내가 너한테 줄 게 있어.”
기태는 자신의 캐비닛에서 오래 보관된 것 같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내가 너를 받았다는 거 알지?”
“원장님이 저를요?”
“다 잊었구나. 어릴 때 내가 네 아빠보다 먼저 너를 만났다고 나 보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놀렸었는데….”

기태는 박스에서 진료 기록서라고 쓰인 두껍게 엮어 놓은 노트를 꺼냈다.
“여기 봐라….”
기태가 한참 뒤적여 찾아놓은 노트의 페이지에는 ‘1988년 11월13일 새벽 7시17분 나소선의 딸 출생’이라고 쓰여 있었다. 산모의 요청으로 마취가 덜 된 상태로 절개수술. 신생아 오른 쪽 발목 안쪽에 붉은 상처 생김. 심장에 잡음이 있어 심장센터로 이동.
“마취가 덜 된 상태로 분만이 가능해요?”
“산모가 사고로 위독해서 태아도 포기할 상황이었지. 그런데 네 엄마가 아기 꼭 살려야한다고. 자기가 초대해서 오는 아기인데 잘못되면 나 가만 안 놓아둔다고 협박했어. 자기는 정말 위독한 상황이었는데….”
기태는 선우를 보며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급하니 마취 없이 낳겠다고 하더라. 그럴 수는 없었지만 좀 급하게 했어. 사실 몇 초만으로도 아기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너 오른쪽 발목 상처 있지? 내가 급하게 설치다가 상처 낸 자국이야.”
노트의 다음 장을 넘기니 발목 상처가 찍힌 사진이 한 장 나왔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선우는 여름에도 샌들을 신어 본 적이 없다. 발목 안쪽 얼룩진 흉터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앵클구두를 신거나 발목을 감싸는 스트랩구두를 신었다.
로비에 미경이 서 있었다.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서가 미경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선우는 다가가 미경의 손을 잡았다.
“엄마. 우리 오늘 드라이브해요. 엄마 좋아하는 게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미경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선우를 보았다.
“어색해도 조금만 참아요. 금방 익숙해질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미경의 눈에 물방울이 맺혔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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