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심하게 다쳐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우룡의 기사가 연일 신문방송을 달궜다.
“은선우 씨 되시나요?”
선우를 확인하고 누군가 한우룡을 바꿔주었다.
“나요. 한우룡…. 자격 없지만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아비라고 나설 수 없는 인간이라 미안하다 선우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선우는 한참 망설였다.
“선생님. 김소영이라는 그 친구도 자기 부모에겐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잠깐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니가 어떻게 그걸….”
“그리고 선생님. 저는 선생님 딸이 아닙니다. 검사가 잘못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선우는 우룡의 번호를 차단했다. 이제 더 이상 알아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상훈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공천 자리를 내놓았고, 깔끔하게 서류 정리가 완료되었다.
선우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집 안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사를 하고 달라진 게 있다면 매일 한두 시간씩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을 끼고 달리다 보면 삶을 한 움큼씩 퍼 올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두레박이 깊은 벽에 부딪치며 울리는 공명 같은 것.
어둠에 갇혀 있던 물이 햇살에 얼굴을 드러내고는, 말갛게 찰랑이는 그 순간에 선우는 행복을 느낀다.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에 초대받아 왔다는 걸 잊는다. 잠시 자신이 세상을 초대한 기분이 된다.
잠수교 중간에서 멈추어 섰다. 진욱이다. 잠깐 진욱의 옆에 서서 함께 강을 바라본다. 뉴욕을 떠나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브루클린 브릿지 일몰이었다. 거기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잠수교에 있다.
“내일 사무실 오픈하는데 올래?”
“재선 출마 안 하기로 했나 봐요?”
“싸움이 끝났으면 선수는 링에서 내려와야지.”
넘어가는 햇살에 진욱의 안경이 반짝 빛을 냈다.
선우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진욱은 진욱대로 선우는 선우대로 가던 방향으로 각각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늦게 오는 것과 다음에 오는 것은 다르다…. 어떻게든 늦게 오는 것을 일찍 오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에 오는 것을 앞에 오게 만들 수는 없다. 그건 반드시 꼭 어떤 일의 다음에야 찾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고 후에…. 나의 딸이 이곳으로 왔듯이. 그렇게 초대받아 오는 것이다.’
“사력을 다해 엄마가 말을 하고 내가 받아 적었다. 하지만 이걸 네게 전해줄 수 없었어. 네 아빠가 원하지 않았지. 네가 아직 어리다고. 이제 너는 어른이니까 이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니까.”
김기태가 주려고 했다던 건 그 글이 쓰인 종이 한 장이었다. 소선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그것을 선우는 곱게 접어 넣었다. 햇살이 눈부셨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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