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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49] 악마의 발톱
인간의 몸에도 가시가 자란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14 06:30:10
 
 
특수 돌기 증후군이라니? 그런 병이 있다고? 증후군이라니! 그럴 리 없었다. 더구나 돌기라면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돋아나는 가시라든가, 코뿔소나 사슴처럼 동물의 몸 밖으로 밀고 나온 뿔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식물입니까, 동물입니까? 비아냥대고 싶었다.
 
“경미한 접촉에도 피부가 찢어지고 탈골되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 심각하지 않은 병일까? 바람만 스쳐도 바늘로 찌르고 칼로 베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씨알피에스(CRPS)는 차라리 죽음을 바라게 하지. 자해행위를 반복해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리스트-컷 증후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 남을 학대하고 자해를 일삼는 뮌하우젠증후군이 암보다 덜 위험하다고 말하는 의사는 없다네. 증상의 이름은 치유의 경중을 따지는 것과는 무관하지.”
 
불신을 이해한다는 듯 박사는 내 오류를 정정해 주었다.
 
“그래서 고칠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내 고통이 그의 탓인 양 나는 조급하게 따졌다. 내가 느끼고 있는 혼란과 불안을 모르지 않을 박사가 안대로 가린 내 한쪽 눈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무겁게 가로저었다.
 
“간혹 인간의 몸에도 가시가 자란다네. 남을 찌르는 대신 자신을 죽이지. 수천 년 전부터 비밀 의학서에만 전해지는 병일세. 그들은 ‘악마의 발톱’이라고 불렀다더군.”
 
내 귀엔 농담이나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박사의 표정과 눈빛은 더할 수 없이 진실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키득키득,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노인은 겁에 질린 환자 앞에서 의학에다 성경과 불경까지 끌어다 요설을 늘어놓고는 기어이 돌팔이의 밑천을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밥 한 끼 때문에 노인을 믿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산속에 은둔해 살고 있는 노인에게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걸었던 건 역시 어리석은 일이었다.
 
“악마가 불쾌하다면 신이라고 하세. 악마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말일세.”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과 악마를 야누스의 얼굴처럼 동일하게 말하다니. 나는 신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과 악마를 혼동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자네는 한쪽으로 단정하길 좋아하는군. 그래 놓고 번민하지. 부정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자네는 모순 속에서 자기 자신을 괴롭혀 왔겠지.”
 
딱하다는 눈빛으로 노인이 말했을 때 나는 웃는 걸 그만두었다.
 
“악마라거나 데몬(demon)이라고 하면 뿔 달린 사탄을 떠올리겠지. 하지만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은 선도 악도 아닐세. 좋다 나쁘다 편을 가른 건 인간이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 닥치면 악마의 장난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거야. 좋은 일을 만나면 신의 총애를 받는 특별한 존재라고 으스대고 싶은 걸세. 인간은 우연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의미를 해석하고 원인을 찾고 손에 답을 쥐려 하지.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기도 해. 자네는 부정할지 모르겠네만, 인간이 우연으로 점철된 삶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악마와 신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네. 그 결과 신은 인간이 겪는 모든 현상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 주지.”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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