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 무렵, 대한민국에서는 건국 시점이 언제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유엔 인정하에 선거를 거치고 국가의 체제를 갖춘 1948년 8월15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건국일이지만, 1919년의 상해임시정부수립을 건국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해묵은 논쟁이 반복됐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전 일본 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중·고교를 합쳐 전교생이 16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학교라고 한다.
전국에서 3441개 팀이 참석했지만 49개 학교만 본선에 진출했다. 그중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계 학교라고는 하지만 태반이 일본인 학생들이고 한국계 힉생은 30% 정도라고 한다. 한·일 두 나라 학생이 어울려 있는 국제학교인 셈이다. 전교생 138명 중 선수로 뛰는 학생은 61명인데,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도 듣고 교내 활동도 하는 보통의 학생들일 뿐이다. 야구부 활동을 위해 특별히 스카우트된 학생도 없고, 평소에도 야구부 활동을 한다고 학교 측에서 특별 대우를 하거나 기필코 우승을 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대회 우승은 현실에서 이루어 낸 기적 같은 사건이다. 한국어로 된 교가가 우승 후 NHK를 비롯한 여러 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중계됐다. 그렇다고 조직적인 반발이나 비난은 없었다.
몇 년 전 한국배우 심은경이 일본 아카데미영화상의 최우수 여배우 상을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신문기자’(2019)라는 영화에서 정부 권력의 비리를 추적하는 기자 역할을 통해서였다. ‘신문기자’는 일본 영화다. 한국인 배우 심은경이 일본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유력한 영화상 중의 하나인 아카데미영화상의 주연 여배우 상을 받은 것이다.
일본 영화계가 여느 배우들과 마찬가지 기준으로 심사해 심은경에게 최우수 여배우 상을 수여한 것은 파격적이다. 일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을 주었으나 오히려 놀란 것은 지켜보는 우리 쪽이었다. 일본 영화계는 심은경을 한국 배우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우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한국 배우가 일본 영화에 출연한 것이 뭐가 어떠냐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저 일본 영화 한 편에 출연한 배우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 연기자라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면 특정 영화제의 주요 부문 상 수상자로 결정할 수 있었을까.
한국 영화 중에도 일본인 배우를 기용한 경우가 여럿 있지만 주요 수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면 ‘친일’이니 ‘매국’이니 하면서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아예 수상 후보로 선정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더 들어맞는다.
올해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부산영화제)에서는 모두 12편의 일본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뱀의 길’(2024) ‘클라우드’(2024) 2편을 상영하는 것을 비롯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아이미타가이’ ‘이별, 그 뒤에도’ ‘나미비아의 사막’ 등 극영화와 ‘고스트캣 앙주’ ‘너의 색’ ‘알사탕’ 등 애니메이션 3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 부문에 선정된 영화 역시 ‘모래 수영장에서 헤엄치기’ ‘해피엔드’ ‘마이 선샤인’ 등 모두 3편의 일본 영화이다.
부산영화제는 첫 회부터 일본 영화를 소개해 왔는데, 1회 14편·2회 18편을 상영하는 등 해마다 15편 내외의 일본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이시이 마모루·미야자키 겐지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비롯해 현대 일본 영화들은 부산영화제가 주목해 온 영역이다. 부산영화제는 크고 작은 정치적 행사에 이름을 얹은 적이 있지만 일본 영화 상영은 계속했다. 반일 분위기가 민감한 이슈로 떠오를 때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산영화제가 친일의 창구 역할을 한다는 비난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독일과 1965년에 수교를 맺었다. 이스라엘 국민에게 쌓인 한을 생각하면 전쟁을 치러도 몇 번을 치렀겠지만 역사는 역사로 돌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을 되찾은 결과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했던 베트남과 미국 역시 종전 20년 만에 수교했고, 영국은 400여 년간 인도를 식민 통치했음에도 인도와 영국은 오래 전에 수교를 맺었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에 수교했지만 수교 과정에 대한 반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본을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는 세력이 있다. 다행히 정치적 선동은 무시하듯 한·일 두 나라를 오가는 인구가 연간 10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해방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파’라는 용어는 정적에 대한 공격용 올가미로 사용되고 있다. 정치 분야는 아직도 선동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문화 분야에서는 장벽을 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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