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인물이다. 말도 못할 고초를 딛고 집안을 궤멸시킨 원수에게 복수해 전설이 된 호걸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큰 치욕을 갚아 이름을 후세에 남겼으니 참으로 비장하도다”며 찬탄했다.
오자서는 본시 초(楚)나라 충신 집안 후손이었다. 부친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암군 평왕(平王)이 사달을 일으켰다. 간신 비무기(費無忌)의 말에 혹해 ‘며느리’를 제 ‘첩’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정적으로 돌린 아들 건과 대쪽 같은 오사 부자까지 해치려 들었다.
평왕은 오사를 인질로 붙잡고서 그의 두 아들 오상(伍尙)·오자서에게 입궁을 명했다. 오상은 “나는 아버님과 죽어 집안의 명예를 지키겠다. 너는 꼭 아비와 형의 원수를 갚아라”고 당부했다. 피눈물로 형님과 작별한 오자서는 태자 건과 기약 없는 망명길에 올랐다.
과정은 험난했다. 태자 건은 정(鄭)나라에서 참살됐고 오자서는 추격병을 피해 유랑걸식 신세가 됐다. 젖먹이 왕손 승(勝)을 품에 안고 주야장천 내달린 끝에 오나라 국경에 도착했으나 거대한 강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하룻밤 만에 머리가 세어버린 오자서는 한 늙은 어부의 기적 같은 도움으로 도강했다.
오자서는 비상한 계책으로 오나라 정변 일등공신이 됐다. 새 오왕이 된 합려(闔閭)는 기원전 512년 초나라를 쳤다. 복수귀로 각성한 오자서는 손무(孫武)와 함께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공격해 초나라 수도 영(郢)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이미 자연사한 평왕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낸 뒤 수백 번의 채찍질을 가해 가루로 만듦으로써 마침내 기나긴 복수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기서 굴묘편시(掘墓鞭屍·통쾌한 복수)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불구대천 원수에 대한 복수의 집념은 확인사살까지 할 정도로 조금의 인정도, 시간 낭비도 허용치 않았다. 초나라 대부 신포서(申包胥)는 “죽은 사람을 욕보이니 하늘의 도를 어기는 행동 아닌가!”고 따졌다. 오자서는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일모도원·日暮途遠)”고 일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보수 궤멸’을 주장하며 많은 우파 인사들을 영어(囹圄)의 몸 또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 민주당은 지금도 ‘보수 궤멸’을 운운 중이다. 민주당은 현재 각종 사법리스크 앞에 폐당(廢黨)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이럴 때일수록 여당 지도부는 굴묘편시의 일념으로 임해야 한다. ‘보수 학살극’에 치를 떠는 많은 우파 시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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