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사에서 중국의 불교미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불교미술이 곧 중국의 전통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국 전역에는 사찰 등 불교미술이 널리 퍼져 있다.
민경옥 ‘겔러리 붓다’ 대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던 중국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을 높여 한국인의 관심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1978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몇 번의 개인전을 개최한 미술작가면서 불교 조각 미술품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연구자다. 그는 처음 접한 중국 땅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96년 3월 처음으로 중국 땅에 발을 디뎠어요. 어렵게 도착한 북경시는 중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중국의 불교미술에 빠지다
민 대표와 일행은 옌샤·따펑판자위엔 등 큰 시장을 날짜별로 차례차례 둘러보기로 계획을 짠 뒤 각기 숙소로 돌아갔다. 모두 고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둘러보게 될 시장들은 동묘 시장 저리 가라 할 규모의 엄청나게 큰 고물 시장으로 주로 새벽에 장이 열렸다.
동도 트기 전 새벽 민 대표가 로비로 나오니 다들 이마에 헤드랜턴을 착용하거나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북경 시내에는 가로등이 드물었기 때문에 나름 조명기구를 준비한 것이다.
시장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옛 정취가 느껴지는 고물들이 땅바닥 횟보(이불 호청같은 바닥에 까는 재료)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어쩌다 불상이 보이면 엎드리다시피 조명을 가까이 들이대고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동불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23cm 정도에 무척 오래된 느낌이었고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다웠죠.”
그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불상에 집중했다. 늙은 상인이 떠들어 대는 중국말을 조선족 통역이 한국어로 바꿔 주었다. 이 불상 하나를 팔려고 그가 고향에서 3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다른 일행이 다 사라진 뒤에도 민 대표는 조선족 통역이 “옥이 엄마, 그만 일어나세요” 재촉할 때까지 불상에 붙들려 있었다.
민 대표가 생각하기에 노인이 부르는 불상의 가격은 싼 편에 속했다. 그가 그 가격에 사겠다고 하자 옥이 엄마가 비싸다며 펄펄 뛰었다. 그런 시장에서는 물건값 깎는 것이 상례였던 것이다. 하지만 민 대표는 노인이 부르는 가격을 다 주고 철불 한 점까지 추가로 구입해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겸 점심을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다른 이들도 서로 구입한 물건들을 펼쳐 보이면서 자랑을 했다.
2주 동안 중국 북경에 머무르는 사이 꽤 많은 물건을 사들이게 된 그는 ‘구완성’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상가에 창고 겸 가게를 얻게 되었다. 차곡차곡 선반에 쌓이는 불상을 바라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팠다.
예술의 가치에 무지한 사회
어느 날 그는 ‘구완성’ 뒤편 재래식 화장실 건물 옆 공터에 중국 주석인 모택동과 주은래의 동상이 바닥에 쓰러진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다가갔는데 글쎄 그곳에 커다란 캔버스 천이 널브러져 있었어요. 캔버스에는 붉은 혁명 전사가 그려져 있었는데 아마도 학교나 관공서 벽을 장식했던 물건 같아요.”
캔버스는 가로 5m에 세로 3m의 대작이었다. 손을 대면 붉은 사상의 피가 손바닥에 묻어날 것 같은 매우 역동적인 작품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 틀림없었다. 낡아서 철거한 것일까? 궁금했던 그는 옆에 서 있던 공안에게 물었다.
“이것은 파는 것입니까?”
그러자 공안이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못 쓰는 것이니, 필요하면 가져가시오” 하는 게 아닌가. 그는 그것을 얼른 싸들었다.
다음 날에도 그는 조선족 통역과 함께 장에 나갔다. 운이 좋아 아름다운 금동불을 사게 되었다. 티벳 불상이었다. 그 외에도 그날 그는 다섯 점의 불상을 사들였다.
“저도 모르게 점점 불상에 미쳐 가고 있었어요.”
‘구완성’ 골동품 상가에는 오래된 골동품상점이 즐비했다. 그곳에는 노인들이 인간 골동품이 되어 그곳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민 대표는 그들에게 자신이 산 불상들을 보여 준 뒤 그들이 하는 말을 메모했다. 그것은 중국 불상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정보가 되어 주었다. 때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맞다며 싸움판을 벌이기도 했다.
선반 위에 나란히 쌓여 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고 있었을 때 사건이 터졌다. 일행 중 몇몇이 중국의 마적들에게 붙잡혀 여권과 달러를 빼앗긴 것이다. 개중에는 목걸이와 시계를 강탈당한 이도 있었다. 현지 뉴스를 통해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잘 아는 동생들이 끼어 있었기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타국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대처도 어렵고 참 난감하잖아요. 그 일로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어요.”
그는 불상 두 점을 캐리어 보따리에 넣고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머리는 기름으로 떡이 져 있고 얼굴은 시커멨어요. 한마디로 때가 꼬지꼬질한 소수 민족 여인네의 모습이었죠.”
그렇게 민 대표는 5년 정도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며 불상 수집광이 되어 갔다.
불교미술 전문가가 되다
“그렇게 중국 불상에 미쳐서 5년 세월을 보내고 나자 북경에도 서서히 불상이 나오는 일이 드물게 되었어요. 어쩌다 보게 되면 가격이 수십 배 올라 살 수가 없거나 오래되어도 미술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 정도였죠.”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불상이 끝없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1966년 중국의 문화혁명 때 많은 사찰이 파괴되고 수없이 많은 불상이 깨지고 녹아 없어졌다. 찬란했던 문화와 소중한 보물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이다. 불상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종교는 봉건주의의 유물로 타파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제가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와 작품들을 바탕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책자를 집필하고 실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또한 불교미술의 가치를 한국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불교미술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때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불교미술에 관심을 가져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 민경옥 프로필
1978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 졸업
1983년 ‘구상전’ 비구상 부문 입상
2002년 서울 인사동 불교 조각 미술품 전문화랑 ‘인 화랑’ 대표
2006년 미국 뉴욕 에비뉴 86 ‘겔러리 붓다’ 대표
2016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 ‘겔러리 븟다’ 대표
2023년 ‘제20회 대한민국통일문화재’ 서울시장대전 종합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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