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극장은 영화제의 공식 상영관으로 개막작인 레이먼드 장 감독의 다큐멘터리 ‘국유장기(State Organs)’를 비롯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시대혁명’ 등 주요 작품들이 이곳에서 상영할 예정이었으나 락스퍼 개막을 하루 앞둔 29일 어떠한 통보도 없이 일방적인 상영 취소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영화제 주최 측은 물론 예매를 완료한 관객에게조차 어떠한 사전 안내도 없었다는 것이다.
‘국유장기’는 31일 오후 3시30분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상영 하루 전인 29일 오후 4시 30분 기준 전석(총 89석) 매진을 기록했다. 1매당 가격은 1만 원이었으며, 다음 날인 6월 1일(일) 상영 회차도 빠르게 매진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제 주최 측의 문의에 대해 메가박스 동대문 관계자는 “정치적인 영화제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해당 사실을 내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 언론 보도를 통해 파악하고 즉시 상영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메가박스 본사의 공식 입장이나 해명은 29일 밤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상영작인 영화 ‘국유장기’의 레이먼 장 감독은 “정치와는 무관한 작품이며, 인간성과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룬 영화다”며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레이먼 장 감독은 “한국에서 상영이 돌연 취소된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의 개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 대만에서도 상영 당시 수백 통의 협박 편지를 받고, 중국의 온라인 여론 공작이 발생했었는데 설마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레이먼 장 감독은 “한국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시민들이 이런 압력에 쉽게 흔들릴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의 총감독이자 수석 프로그래머인 허은도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메가박스의 이번 결정은 예술을 검열하고 표현을 억압하려는 시도이며, 우리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어떤 방식으로도 진실은 침묵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끝까지 묻고, 끝까지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끝까지 대응할 것이며, 이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온 예술가, 관객들과 굳건히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메가박스 예매 페이지에는 상영이 취소된 영화의 정보가 모두 삭제된 상황이다.
아래는 허 감독과 외신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언제부터 예매가 시작됐고, 언제 상영 취소 통보를 받았나
극장과 접촉한 건 열흘 전쯤부터였고, 이후 계약이 이루어졌다. 예매는 28일 저녁 7시쯤 오픈됐고, 29일 12시쯤 전석 매진됐다. ‘국유장기’는 그 다음 날 회차도 예매가 계속 진행 중이었고, 티켓이 계속 팔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우리는 상영 취소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예매 상황을 계속 확인하려고 메가박스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갑자기 우리 영화 관련 정보가 모두 사라져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5월31일과 6월1일 이틀간 총 7회 상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모든 상영 정보가 삭제돼 있었다.
극장 측에서는 상영 취소에 대해 어떤 사유를 댔나
극장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정치적인 영화제는 상영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인권 영화제를 정치 영화제로 폄하, 상영 취소 이유로 내세운 것이다.
심지어 극장 측에서 우리에게 사전 통보를 해준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먼저 ‘왜 영화 정보가 다 없어졌지?’ 이상해서 확인차 전화를 걸어 오늘(29일) 늦게서야 취소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번처럼 극장이 영화제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간섭하는 일이 종종 있나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그것도 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어떤 기준이나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나는 이건 외압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이미 본사까지 결제가 승인된 상태였고, 본사의 도장까지 받아 계약이 다 이루어졌다. 대관료도 다 지불됐고, 예매도 오픈해 티켓도 판매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해당 영화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이미 그들에게 전달한 상태였다. 모든 자료와 소스를 넘겨준 상황에서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락스퍼영화제가 어떤 영화제인지도 당연히 미리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젯밤 예매가 오픈됐고, 아마 오늘쯤 외부 압력을 행사한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상영이 취소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 외에는 딱히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역사상 전례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정식 개봉작도 아니고, 국제영화제 프로그램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간섭을 한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명백히 강제적인 개입이고 사실상 ‘금지 조치’에 해당한다. 국제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 상영이 이런 식으로 취소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짓밟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번 사태가 영화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 손실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한두 달 준비한 영화제가 아니다. 이 영화제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1년 동안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하며 준비해 왔다.
그런데 단지 “인권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다”는 이유로, 아무런 경고도 없이 상영이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 일정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개막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상영관을 알아볼 시간조차 없는 절박한 상태다. 피해 규모는 액수로 따질 수조차 없다. 굳이 산출하자면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이번 상영작 중 ‘국유장기’ ‘시대혁명’은 어떤 영화인가
락스퍼영화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탄압받는 인권 문제’를 다루는 영화제다. 매년 세계적인 인권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국유장기’는 인간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다루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장기적출 범죄를 고발하는 이 작품이야말로 락스퍼영화제의 정체성과 너무도 잘 맞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의도 없이 오직 ‘인권’이라는 기준에 따라 선정한 것이다.
‘시대혁명’은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다룬 영화다.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홍콩의 과거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고, 많은 분이 이 영화를 통해 경각심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상영작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이 정밀하게 타겟이 되어 상영 취소 조치를 당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이런 식의 탄압과 상영 방해에 굴하지 않고 국민의 문화적 수준과 의식 수준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토요일 상영은 취소됐지만 많은 분이 이미 예매를 마치고,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더 큰 극장, 새로운 상영 장소를 준비 중이다. 우리는 이 부당한 처사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고 싸울 것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을 묵인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단순히 예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과 다름없다.
이번 사태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모두가 이 부당한 현실에 저항할 수 있도록 저희는 끝까지 결연히 나아갈 것이다.
정치적인 건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 이 행위들은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볼 땐 중국 공산당의 외압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거다.
그 누구도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자유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문화에 대한 의식 수준도 높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한 극장이, 그것도 인권 영화를 단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판단해, 표가 팔리고 있는 상영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과연 그런 조치를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문화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진다. 보지 말라면 꼭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락스퍼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더 큰 상영장소를 찾아낼 것이다. 상영관 찾으면 다시 공지하겠다.
한편 ‘국유장기’는 협박과 위협 속에서도 대만 전역에서 700회 이상 상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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