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주의 단편 ‘북경에서’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현실 자체를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젊은 작가들이 세대의 자기 ‘주장’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자기 부정을 그린다. 방향타가 달라졌다.
다큐멘터리 피디 가경의 이야기다. 북경 촬영을 마치고 가경은 헤어진 태주를 떠올린다. 방송작가 태주도 가경도 이상이 있었다. 가경은 낯선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는 방송을 꿈꿨다. 태주는 결식아동을 돕는 상인에게 50만 원을 내놓았다. 가경은 그런 태주를 사랑했다.
두 사람은 달라진다. 경제 프로그램을 맡은 태주는 전쟁을 예상하며 방산주를 사자고 한다. 가경은 암 수술 뒤 어머니의 귀촌 자금을 생각하며 천만 원을 투자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주가가 치솟는다. 전쟁이 행복의 원천이 된다. 두 사람은 동거하며 결혼을 생각한다. 가경은 태주와 북경에 가 고급 식당에서 생일을 축하받고 불꽃놀이를 즐긴다. 전쟁터에서는 민가와 방송국이 폭격당한다.
종전 소식에 주가가 떨어진다. 자극적인 사건 고발 프로그램을 맡은 태주는 가경에게 전쟁이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너무 환하기는 해도 작가의 설정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이제 두 사람은 가경의 다음 생일에 서울의 양꼬치집 ‘북경’을 찾는다. 많이 전락한 상황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가경이 들어간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왔다 달아난 것이다. 남자는 남자 화장실에 양변기가 없어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하지만, 태주는 그의 과거 스토킹 전력을 알아내 사건을 방송에 이용하려 한다.
가경의 의문에 태주의 응답. “가경아, 지금 진실이 뭐가 중요해.” 가경은 그 남자가 어려운 학생을 무상으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방송을 막지 못한다.
이 세대는 진실 대신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 돈이 주는 안락과 행복? 태주가 결혼을 제안하지만, 가경은 이별을 통보한다. 다시 북경에 온 가경은 불꽃놀이를 보며 자신도 전쟁이 계속되기를 바랐음을 떠올린다. 그녀는 이별의 이유를 묻는 동료에게 말한다. “우리가 너무 비슷해서 헤어진 거야.”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개와 혁명’의 화해는 거짓 화해였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젊은 여주인공의 행위에는 깊은 모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정 없는 긍정의 세계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작가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 다른 여러 문학상 수상작들에서도 여주인공들은 많은 경우 부정한 세계, 부당한 세계에 맞서 자기를 주장하는 결말로 나아간다. 여주인공이 아닌 경우에도 그렇다. 이런 소설들은 은연중에 세대론적 논점을 설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세계는, 선배들이 구축한 세계는 부당하다. 지배와 피지배는 부정의하다.
이 소설 ‘북경에서’는 그와 다른 결말이 이목을 끈다. 자기 부정이다. 왜 북경인가. 작가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신이 날카로운 정치적·현실적 감각을 갖고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했다고 할 수 있다. 북경은 지금 이 나라 현실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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