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본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가 무엇인지 또 그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역사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석 및 평가해 재구성하는 것이다”며 “역사가란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일이다”고 전했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곧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인 셈이다. 그는 또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고 전했다.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환경에 따라 선택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때로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용어구와 맥을 같이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날 우리 사회는 그가 생각한 역사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역사를 논하며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지만 현재의 당리당론에 따라 논란을 야기 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학자들의 이야기가 존중돼야 하지만 일부 목소리 큰 세력의 해석이 앞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한국사 역사교과서’와 일부 세력의 해석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계 전반의 이야기다. 근현대사의 해석을 놓고 여·야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강단파와 재야사학 진영 등이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재야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유구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우선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 교과서가 환국(유라시아 강역)은 물론 환국과 연결선상에 있는 배달국·고조선(한韓민족의 중국 대륙사)의 상고사를 인정하지 않는 학파의 의견만 반영된 상태에서 70년 근현대사만을 놓고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역사가 찬란했던 고대사 뿌리를 송두리째 잃은 채 근현대사라는 곁가지 만 놓고 못난 집안싸움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의 정쟁도구로까지 전락한 ‘국정교과서’ 논란과 이를 바라보는 재야사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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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는 지난 12일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정치권은 여야간 극명한 입장차와 함께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1974년 검정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은 오늘날과 같은 당리당략이 아닌 상고사에 대한 학계의 이견차로 빚어졌었다. 사진 위는 서울시내 대형서점의 학습서 매대, 아래는 역사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시중 참고서. ⓒ스카이데일리
지난 12일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구분(안)’을 행정예고 했다. 지난 2003년부터 줄곧 제기돼 온 교과서 편향성 논란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교육부의 발표 직후 여·야는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그동안 이어진 역사 교과서 논란의 이면에는 정치적 당리당략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 집안싸움에 한창이었던 여·야도 모처럼만에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은 이번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역사교과서 단일화에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으며,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의사를 밝히며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이다. 이번 논란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국회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역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다투는 정치권을 재야사학자들은 불편함을 넘어 한심하다는 표현 일색이다. 해방 전후 채 100년도 안 되는 반도역사를 두고 다투는 정치인들이 정작 7000년이 넘는 한민족(韓民族) 제국사(환국·배달국·고조선)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뿌리를 찾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자료: 교육부 ⓒ스카이데일리
12년 ‘편향성’ 논란 방점 찍은 교육부…논란은 4348년(단기) 중 100년 미만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는 당초 검정교과서 체제로 시작됐다. 1974년 ‘국사’ 국정교과서체제가 첫 출범했다. 유신체제 하에서 국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고대사 분야를 두고 재야와 기존 사학계 간 갈등을 빚어진 것이다.
갈등은 1981년까지 이어졌다. 결국 1982년 국정교과서부터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등의 개념이 포함되는 선에서 갈등은 마무리 됐다. 이후 국정교과서 체제는 지난 2002년까지 이어졌다.
2003년부터 국사는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로 나뉘어 이원화됐다. 1863년 대원군 집권을 기준으로 두 과목으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 과정에서 ‘국사’는 국정으로, ‘한국근현대사’는 검정교과서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40년 만에 부활한 검정교과서체제는 논란의 씨앗이 됐다. 2004년 10월 금성출판사가 출간한 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좌편향’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논란은 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업적과 과오 등을 해석하는데서 이념적 견해차가 주된 원인이었다. 예를 들어 1948년 8월 15일이 남한 단독 정부수립인지 건국인지를 두고 이견을 보인 것이다.
▲ ⓒ스카이데일리
결국 논란의 핵심이 된 부문은 20세기에 국한된 내용이었다. 자연히 이념차를 보이는 이들을 중심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고 정치적인 사안으로 번지게 됐다. 보수층은 참여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이원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의적인 뜻을 담은 근현대사를 발간하게 돼 좌편향 됐다고 주장했으며, 진보진영 측은 보수진영 측이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고 맞서게 됐다.
결국 이들 간 갈등은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체제로 전환시키며 ‘역사논쟁 1라운드’를 종결지었다. 교육부는 검정교과서가 끊임없는 사실오류 및 편향성 논란이 제기 돼 사회적 문제로 번져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적 통합 차원에서 국정으로 전환하게 됐다고 밝혔다.
황우여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은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키고 미래 세대에 민족적 자긍심을 길러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며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 만들기에 학생·학부모·교사는 물론 전 국민의 뜻을 모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발표 직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교과서 국정화 금지를 법제화 하겠다”면서 정치권 역사 논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 ⓒ스카이데일리
재야(在野) 사학계 “위대한 뿌리 철저하게 외면돼…정치권, 본질적 문제 초점 맞춰야”
역사적 해석을 두고 보수·진보진영 간 이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정치권 역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는 재야사학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우리 역사의 토대가 된 배달국은 인정치 않고 단군의 고조선을 ‘신화(神話)’로 격하시키는 등 상고사에 대한 교과서 누락에 대한 관심이 철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 체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일부 수정한 ‘수정 식민사관’이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정착이 이뤄져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야 사학자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는 “과거 국정화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왜 대한민국 역사의 뿌리가 되는 상고사가 교과서에 올바로 표기되지 않는지 참으로 답답하다”며 “고작 몇 십 년의 역사를 두고 갈등을 빚는 정치권이 7000여년에 달하는 한민족 제국역사 상고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 한민족 역사의 시원이자 뿌리가 전 세계 5대 인류문명과 문화를 잉태시킨 역할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왜곡·날조로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며 “한국역사의 현 내용을 반성하고 작금의 역사기술이 타당했느냐를 면밀히 다시 연구해야 한다. 이 같은 역사 바로잡기를 통해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한 일제잔재를 깨끗이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야 사학계는 고(故) 이병도(1896~1989)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그들의 제자가 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수정 식민사관’ 현상이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추구해 한국 근대사학이 성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와 함께 평생 ‘친일사학자’란 논란의 꼬리표를 지녀야 했던 인물이다.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1925년 발족된 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가 일본민족 우위성을 입증하고 한국인 민족의식 말살을 목적으로 설치한 기관으로 1916년 중추원 산하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모태로 하는 곳이다.
▲ 재야 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7000년 상고사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 안 된 점에 대해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삼을 수 있는 일종의 밥그릇 논리 때문에 100년 미만의 현대사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발표하는 황우여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사진=뉴시스]과 이를 중심으로 문제인(사진 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스카이데일리
‘을사오적’ 이완용의 족척으로 알려진 이 명예교수는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해방 후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재야 학자들은 쓰다 소우키치의 제자인 이 명예교수의 실증사학이 일본의 식민사관과 그 뜻을 같이하는 일종의 ‘수정 식민사관’이며 그의 제자들이 이 실증사학을 바탕으로 국내 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아 상고사에 대한 악의적인 외면이 자행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쓰다 소우키치는 식민사관 이론의 창시자며 삼국사기를 부정하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학자다.
재야 사학자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는 “통일 후 북한 지역 진주의 명분을 위해 중국이 동북공정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우리 학생들은 독도가 우리 땅인지는 알지만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정치인들은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만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는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검증되고 또 다양한 시각으로 봐야 하는데, 왜곡되고 날조된 중국 중심의 시각이나 식민사학을 외면하면 ‘재야(在野) 사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며 “옳은 역사를 단순히 주류가 아니란 이유로 철저히 외면 받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와 다르지 않다”고 성토했다.
일단의 재야사학자들은 국정교과서에서 반드시 넣어야 할 내용으로 △러시아의 푸틴 등 세계 역사학자들의 인정하는 한민족 고대사의 실체 △홍산문명(기원전 5000년경)이 인류 4대문명의 시원이 된 형성과정과 진실고증 △인간(人間)사상, 천민(天民)사상, 중물((重物)사상 등 한민족의 3대 사상 발현과정과 내용 △환국(53대 환웅 3301년), 배달국(18대 환웅 1565년), 단군조선(47대 단군 2096년) 7000여년의 실체에 대한 연구와 재조명 △한민족의 정통성을 끊는 위만·기자조선과 한사군의 허구성에 대한 실체 △중국 대륙역사가 반도역사로 지명이동 된 반도역사에 대한 연구 및 고증 등을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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