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우리 국민들은 서양문화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대대로 이어 온 의식주 중에 상당 부분을 바꿔왔다. 심지어 우리 몸에 DNA로 새겨진 먹거리조차 과거의 순수전통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의복과 집은 거의 전통을 버리다시피 했다. 특히 의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예복으로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정부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한복입기 운동을 펴야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한복이 다시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세 지긋한 노인층이 아니라 ‘1020세대’가 한복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의 이슈키워드를 ‘한복’으로 선정하고 전통의복을 즐기고, 지키고,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복의 미래’를 집중 조명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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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한복입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SNS 등을 통해 한복을 입고 고궁 등 전통적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한복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020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이 같은 유행은 국경을 넘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이벤트가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복이 관심받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여전히 ‘일회성’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이들이 일상복 대신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선 까닭은 한복이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복 놀이’에 참여하는 주 연령층은 한복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던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이다.
이들 젊은이들은 한복을 입고 고궁 등 전통 색채가 짙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나눈다. 찍은 사진은 SNS 등에 올려 즐거움을 나눈다. 온라인상에서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다보니 많은 이들이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한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이다.
낮 기온 34도…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한복사진 추억 만들기’ 땀 뻘뻘
지난 주말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을 찾았다. 정오가 되자 이날 낮 최고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았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주차된 차량 행렬은 끝이 없었다.
민속촌은 지난 2012년 전통문화 테마파크로 리뉴얼됐다.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 놀이공원과 각종 전통음식점을 갖추고 또 춘향이, 사또, 이방 등 캐릭터로 분한 연기자들이 곳곳에서 등장해 재미를 더했다. 자연스럽게 민속촌을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최근 민속촌에는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한복을 입고 민속촌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민속촌은 연중 한복을 착용하고 방문한 고객에게 자유이용권 50%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민속촌 입구에는 한복을 챙겨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한복을 빌려주는 업체가 생겨났을 정도다.
▲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만난 커플은 “일상적인 데이트코스에서 탈출하고 또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한복을 입고 이곳에 왔다”고 전했다. 실제 거리 곳곳에서는 한복을 차려입고 나선 젊은 커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카이데일리
4시간에 3~4만원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한복을 대여해 민속촌으로 향했다. 민속촌 입구에서 인근 고등학교 학생 5명을 만났다. 이들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민속촌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무리 중 한 학생은 “모처럼 휴일을 맞아 친구들끼리 민속촌을 찾게 됐는데 그냥 오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한복을 대여하게 됐다”며 “사진도 많이 찍고 SNS에도 올려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할 생각이다”고 전했다.
이들 무리와 함께 민속촌 안으로 들어섰다. 학생들은 들어서자마자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준비해둔 삼각대로 스스로의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으로나마 영원히 간직될 순간이었다.
여학생들을 뒤로 하고 좀 더 안쪽으로 향했다. 대장간에서는 실제 장인이 낫, 호미 등 간단한 농기구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이웃 매장은 담뱃대를 만드는 곳이었으며 그 옆은 놋그릇을 만드는 곳이었다.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로 돌아갔다면 딱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시 현대적 일상복이 눈에 띄었다. 이들 뒤로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동행한 이들의 관계도 각양각색이었다. 친구, 연인, 가족 등이 보다 기억에 남는 하루를 한복과 함께하고 있었다.
포도청 처마 밑에서 햇볕을 피하고 있던 커플은 춘향전에서나 나올법한 도련님과 규수로 분해 있었다. 볕을 피하기 위해 착용한 선글라스를 제외하면 사극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들은 “매번 데이트가 비슷해 새로운 것을 찾던 중 한복을 입고 민속촌에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두 명은 한창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기간에 민속촌을 찾았다. 이들은 조선시대 기생모습을 분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왕 한복을 입는 날인데 평범한 옷은 입기 싫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익살스럽게 기생과 같은 걸음걸이를 보이고 사라졌다.
▲ 친구들의 추억용으로도 한복은 인기다. 경복궁의 경우 경회루(사진 배경) 인근이 가장 각광받는 사진 촬영장소다. 저마다 셀카봉·삼각대 등을 이용해 단체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한복착용 방문객은 또래 친구들끼리 온 10대 후반의 학생들이었다. 접할 기회가 없던 한복에 학생들은 즐거운 반응이었다. ⓒ스카이데일리
“한복나들이, 한국서 꼭 해야 할 일”…북촌 한복 행렬 외국인 더 많아
경복궁과 북촌, 삼청동 일대를 찾았다. 이곳의 풍경 역시 민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경복궁의 경우 민속촌과 같이 내국인의 한복착용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북촌 일대는 한복을 착용한 이들 대다수가 외국인들이었다.
경복궁의 경우 민속촌과 배경만 다른 모습이었다. 함께 온 이들의 관계도 비슷했다. 같은 반 친구 4명과 함께 온 여중생들을 비롯해 이색 데이트 장소를 찾아온 연인들, 가족단위 방문객 등이 주를 이뤘다.
경회루가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었다. 경북 안동에서 경복궁을 찾았다는 20세 여대생은 “인터넷을 통해 대여점에서 미리 한복을 예약했다”며 “한복을 입으니 사진도 잘 나오고 무엇보다 주목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정말로 더욱 예뻐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가족이 한복을 갖춰 입고 경복궁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친척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 이렇게 모두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오게 됐다”며 “한복 입고 나오면 주목받을 줄 알았는데 많은 이들이 입고 있어서 놀랐다. 한복입는 것이 유행이란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복입기 유행은 SNS 등을 타고 외국까지 전달됐다. 태국 내 최대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여행 때 반드시 해야 할 일로 한복입고 사진 찍기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나라 관광객들 역시 한국에선 한복입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북촌, 삼청동 일대를 찾은 외국인들 중 상당수가 한국 드라마와 SNS를 통해 한복 및 한복 입기 열풍에 대해 알고 있었다.
태국에서 온 바니차씨는 조선시대 임금이 입었던 붉은 곤룡포를 입고 이곳을 찾았다. 그녀와 함께 찾은 두 명의 친구들은 양반댁 규수 같은 한복을 골랐다. 이들은 색이 곱고 아름다운 옷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 온라인을 통해 번진 유행은 국경과 관계없이 전 세계로 번지는 분위기다. 특히 한류열풍 등을 타고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에서 한복을 입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유행이라는 반응이다. 실제 북촌·삼청동 등의 경우 다양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스카이데일리
다소 생경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여행 전 커뮤니티에서 추천한 한복을 보고 구미가 당겼다고 입을 모았다. 비단 자신들뿐만 아니라 한국행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한복입고 북촌과 삼청동을 거니는 일을 여행코스에 포함시킨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이날 한복을 입고 북촌을 찾은 관광객들 중 태국 등 동남아 국가 출신 여행객 비율이 가장 높아보였다. 대만·베트남 등에서 온 관광객들은 SNS 등을 통해 한국에서 한복을 입고 즐기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국내외 안팎에서 불고 있는 한복열풍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환영과 함께 우려 섞인 반응을 동시에 나타냈다. 점차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의상에 대해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의복으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1회성 놀이문화로 전락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관련업계 안팎이 당면한 숙제라고 지적한다.
한복제작을 하는 한 전문가는 “서울, 전주, 용인 등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는 문화가 정착되기에 앞서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한복을 입고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SNS를 타고 번진바 있다”면서 “우리 옷을 입고, 알리고, 즐기자는 이들의 취지는 분명 칭찬받아야 마땅하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복은 한국을 대변하는 의복으로서의 지위를 여전히 갖고 있으나 일상 의복이 아닌 관혼상제 등을 위한 의식 혹은 놀이 등에 활용되는 단순 이벤트성 의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젊은 층에 불어 닥친 한복열풍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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