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남 여수와 경남 남해를 잇는 가칭 ‘동서해저터널’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저터널이 연결되면 동서화합을 이루고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작 해저터널 수혜 당사자로 지목되는 여수 및 남해시민들 사이에선 해저터널 사업을 두고 기대보단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은 해저터널보단 도로확충이나 산업단지 조성 등 지역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SOC사업을 재추진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해저터널 사업이 이미 낮은 경제성평가로 인해 수 차례 무산된 바 있는 만큼 지역발전보단 내년 치러질 선거를 대비한 치적 쌓기용 아니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여수~남해 해저터널 B/C 고작 0.4점…수천억 혈세에 사업성은 바닥
주승용 국회부의장과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여수~남해 해저터널 대토론회에서 해저터널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널이 뚫리면 현재 두 도시 간 차로 80분 걸리는 거리가 10분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수~남해 간 해저터널 공사는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한려대교의 대체하는 대규모 SOC사업이다. 한려대교 건설 사업은 앞서 박근혜 정부의 10개 지방공약 중 하나로 경제성 평가에서 최하점을 기록한 바 있다. 한려대교의 경우 경제성평가에서 장대교량을 이용해 지으면 B/C(비용편익비)가 0.045에 불과했고, 해저 터널과 해상 교량을 활용해 짓더라도 0.108에 그쳤다.
비용대비 경제성을 따지는 비용편익비는 1점을 넘으면 사업 시행이 바람직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용편익비가 0.1 수준이란 말은 사실상 경제성이 전무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공사비만 1조408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31년까지 하루 평균 차량 통과 대수가 1만대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 결과다.
그런데 낮은 경제성으로 표류됐던 사업이 주승용(여수시·을) 의원과 여상규(남해·사천·하동) 의원이 해저터널을 제안하면서 또 다시 대두되기 시작됐다. 여수~남해를 해저터널로 연결하면 교량건설비용의 30% 수준에 불과한 5000억 원이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해저터널 사업 역시 경제성평가 사업 추진 기준인 1.0에 턱없이 못 미치는 0.4점으로 평가됐다는 점이다. 이에 두 의원은 해저터널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을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사업인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해저터널로 여수와 남해가 연결되면 동서화합을 이루고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상규 의원실은 “경부선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경부선으로 경제효과를 보고 있다”며 “여수~남해 해저터널이 타당성 조사는 낮게 나왔지만 광양과 같은 인근 지역과 연계해 충분히 경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주승용 의원실은 “수도권이 아닌 외진 곳은 SOC 예산 받기가 어렵다”며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이나 낙후지역, 관광 특화지역 등에 대한 별도의 교통SOC 투자기준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까진 실수요 예측에 대해 제대로 검토한 조사기관이 없어서 대략적인 추정치만 나온 상황이다”고 밝혔다.
여수시민, 남해군민도 반기지 않는 여수~남해 해저터널 “왜 추진하나”
해저터널 사업이 지역발전에 도움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정작 여수·남해 시민단체 및 시민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성이 낮아 막연한 추측만 무성한 해저터널 사업보다 도로확장이나 산업단지 조성 등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해저터널 조기추진 토론회를 개최한 것을 두고 비판어린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사회간접자본을 뜻하는 SOC 사업은 재선을 노리는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 치적용으로 남발하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전시성·선심성 정책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남환경여수운동본부 본부장 김권호씨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을 위해서 해저터널을 짓는 것이다”며 “여수시민들은 터널로 인해 타지역과 교통이 수월해져서 오히려 인구유출을 걱정 해서 반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자체나 의원이 시민과 사회단체의 말을 안듣고 본인들의 이력을 위해서 터널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수 조원에 달하는 세금이 투입됐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 대규모 SOC사업의 사례는 적지 않다. 2조7000억 원을 투입해 건설했으나 물류 기능을 상실해 방치된 ‘경인 아라뱃길’과 강원도 ‘양양 공항’ 등은 잘못된 수요예측과 선심성 공약으로 세금이 낭비된 대표적인 사례다.
뿐만 아니라 해저터널 사업에 대해 남해·여수시민들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철현(남·54·가명) 씨는 “군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도로확장이나 산업단지 조성을 하는 것이 훨씬 도움될 것이다”며 “남해 맥주축제를 할 때면 도로가 1차선 밖에 되지 않아 10km에 불과한 거리를 가기 위해 2~3시간을 줄을 선다”고 토로했다.
이어 “도로가 불편한 탓에 관광객들이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해저터널보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해군 망운산 인근에서 만난 김세화(여·58·가명) 씨는 “남해~여수로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수천억의 세금을 쓰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노령화가 극심한데 같은 돈이면 젊은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하는 길이다”고 밝혔다. 또 “해저터널이 지어져도 문제다”며 “교통편이 발달해서 남해에서 쓸 돈을 여수로 가서 쓰면 오히려 남해는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만난 박오동(남·62) 씨는 “있으면 편리해지긴 하겠지만 평소 여수~남해로 왕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차라리 그 돈이면 포스코 광양제철소처럼 대규모 산업단지를 만든다던지 지역에 특색 있는 문화산업을 만드는 게 여수 발전에 더 도움될 것이다”고 말했다.
해저터널 사업 추진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어린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여수종합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는 장민호(남·66·가명) 씨는 “오래전부터 선거철만 되면 다리 만든다, 해저터널 만든다 말만 하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며 “전에는 기대가 많았지만 이제는 만든다고 말 해도 기대도 안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수시청 관계자는 “현재는 추상적인 자료 밖에 없어서 명확한 데이터가 나올 순 없는 상태다”며 “모든 사업이 그렇듯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결과물이 나와봐야 아는 것이다”고 밝혔다.
[전경훈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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