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동물복지(animal welfare)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논의 범위도 반려동물 위주에서 축산동물, 실험동물 등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소유’ 개념을 넘어 ‘생명윤리에 기반한 공존의 대상’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물복지’는 동물이 청결한 장소에서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윤리적으로 보호·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동물복지와 관련해 그동안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논의대상은 반려동물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개·고양이의 지위는 단순 ‘소유하는 애완동물’에서 이제는 일생을 함께하는 ‘가족 구성원’으로 높아졌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학대·안락사 금지 △유기동물 방지 △동물 보호센터 확충 △반려인과 함께하는 전용구역 조성 등 주요 이슈가 활발히 다뤄진 탓에 반려동물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된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반려동물 이슈에 밀려있던 축산동물과 실험동물에 대한 동물복지 이슈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동물학대 논란을 불러온 공장식 밀집사육 중심의 축산방식은 지난 2012년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 도입을 계기로 동물복지를 강조하는 축산방식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대량살처분·집단발병 축산관행 멈춰야”…축산동물복지 공론화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는 축산동물을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육함으로서 보다 신선하고 안전한 양질의 먹거리를 만들자는 제도다. △2012년 산란계 △2013년 돼지 △2014년 육계 △2015년 한·육우, 젖소, 염소 △2016년 오리 등으로 축종 대상이 확대됐다.
인증제 시행 이후 △넓은 사육공간 확보 △동물 고유의 습성 유지 △꼬리 자르기·송곳니 뽑는 시술 금지 △풀·사료 등 충분한 공급 등 쾌적한 환경에서 동물을 사육해야 한다. 인증을 받은 농장은 정부로부터 축사시설 개선비용과 경영상담·교육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초기투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사육농장들이 상당수인데다 생산성 하락으로 안정된 수익보장이 우려되면서 2019년 4월 기준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을 받은 농가는 213곳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증 축산농장의 축산물의 소비 활성화’ 여부가 인증제 확산과 축산동물 복지확대의 성패를 판가름하게 될 전망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축산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홍근·김동철·이상돈 의원 등 58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국회동물복지포럼과 농림식품수산부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복지 소비전환의 흐름과 촉진을 위한 역할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달 16일 ‘지속가능축산과 동물복지, 그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에 이은 후속 토론회다.
이날 1차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동물복지 축산 활성화 방안과 소비증대를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회에서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국내 동물복지 축산 확대의 문제와 한계점으로 △기존 관행의 틀 내에서 동물복지형 축산 진행 △동물복지인증제가 산란계와 육계에 집중 △소비자들의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높은 구매의사와 반한 낮은 구매율 △제한적인 동물복지 축산물의 유통 채널 등을 꼽았다.
동물복지형(形) 축산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농장동물의 사육 환경을 규제하는 방식만으로 동물복지 축산물 시장의 확대와 사회적 인식 변화를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조 대표는 배터리케이지(Battery Cage, 밀집형 사육장)를 금지하는 내용의 케이지프리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배터지케이지를 금지하고 있다”며 스위스,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미국(캘리포니아·미시건·오하이오 주) 등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기업의 케이지프리 선언으로 인해 영국의 경우 방사형 산란계 달걀이 케이지 달걀을 제치고 계란 점유를 1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국의 140개 이상 글로벌 대기업의 케이지프리 선언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케이지프리 운동은 소비자들의 동물복지 축산물 구매의향과 실제 구매와의 간극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대국민 캠페인과 기업압박 등을 통한 변화를 유도해 동물복지 축산 시장의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이외에도 △동물복지 축산의 특성과 소규모 농가를 고려한 규제와 제도 적용 △축산물 가격보조와 농가의 세제혜택 등 재정적 지원확대 △정부 구매제도 등 판로확대 정책도입 △동물복지 사육시설에 대한 기술지원과 시설비용 지원 등을 제시했다.
유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내 축산업의 동물복지 축산으로의 전환 촉진을 위해서는 생산 축산물에 대한 소비확산이 중요하다”며 “동물복지축산물의 시장 경쟁력 확보는 해당 농가의 소득보장 문제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이어 “동물복지축산의 확산을 위해서는 소비자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2018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표시 제도에 대해 응답자의 24.5%만 ‘알고 있다’로 응답했다. 2017년 35.4%에 비해 떨어진 수치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 축산물의 구입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구입의향이 있다’는 59.9%로 2017년 70%에 비해 낮게 조사됐다.
반면 유럽연합(EU)의 동물복지축산 정책의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05년(EuroBarometer 2005) 소비자의 약 49%가 축산물 구입 시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있고 38%는 계란 구입 시 케이지 사육이 아닌 계란을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5%는 농장동물복지가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고 인식했다. 2007년 조사(EuroBarometer 2007)에서는 응답자의 60%가 ‘지난 10년간 EU에서 동물복지 수준이 과거에 비해 향상됐다’고 응답했고 89%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에도 EU 수준의 동물복지축산제도가 적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유 입법조사관은 “EU의 경우 EU 집행위원회 차원의 밀집식 사육에 대한 규제 정책과 함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장기간 홍보와 동물복지 관련 운동을 통해 동물복지축산이 확산·정착되고 있다”며 “영국의 경우 생산자들이 단체를 조직해 소비자에 대한 홍보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동물복지축산의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생산자 단체 차원의 홍보, 시민사회 차원의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인식 전환 운동, ‘동물복지축산자조금’을 조성해 생산자 단체 차원의 홍보 등의 활동 확대, 동물복지축산물의 시장 경쟁력과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한 ‘동물복지축산 직불제’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실험 대체 기술개발 논의 수면 위…법제정 요구 목소리
지난달 16일 ‘지속가능축산과 동물복지, 그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에서 전중환 박사(국립축산과학원)는 “향후 동물복지인증제도가 확대되고 일반축산농가의 동물복지 기준이 강화될 것이다”며 “동물복지와 친환경 축산물의 요구도 늘어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윤리적 소비를 위한 사회인식 변화 △안정적 판로 구축을 통한 소비시장 활성화 △동물복지 축산물의 유통구조 개선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국회 관계자는 “축산동물에 대한 비윤리적 사육과 이로 인한 축산물의 질(質)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며 “이번 토론을 계기로 보다 공론화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동물복지포럼은 두 번의 토론결과를 토대로 향후 계획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실험동물의 생명윤리에 대한 국회차원의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 관련 상임위를 대표해 남인순(보건복지위)·이상민(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박완주(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위성곤(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박경미(교육위) 의원들과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이 공동주최한 ‘동물생명윤리를 반영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법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비윤리적 동물실험 중단과 이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개발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과 동물권연구 변호사단체인 피엔알은 ‘범부처 동물대체시험법센터 활성화 지원법’ 제정을 제안했다. HSI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 정부 부처가 동물실험 연구분야를 지원하면서 무분별한 동물사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마련을 위한 논의는 전무하다“며 ”오히려 동물실험문제는 다들 관련이 없다며 다른 부처로 책임을 떠 넘겨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기술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정부 부처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며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실험동물 사용과 불필요한 고통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인순 의원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1억1500만~1억2700만 마리의 동물이 안전성과 위해성 평가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7년 308만 마리의 실험동물이 사용됐고 2018년에는 이보다 더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유럽연합과 미국을 중심으로 윤리적인 문제와 과학적인 한계로 인해 동물실험을 대체하고 있다”며 “3D 프린팅, 세포배양, AI, 오가노이드, 컴퓨터 시뮬레이션, 인체장기모사 등 정확한 시험법 개발에 대한 지원과 정책개발에 힘쓰는 추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동물대체시험과 관련해 더 많은 주체들과 함께 논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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