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도 없는 즉석 상황에서 제 애드리브가 영화의 좋은 장면을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와 ‘극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해요. 또한 제 연기로 인해 현장 분위기가 밝아져 주변 동료들은 물론, 스텝들 까지 칭찬을 많이 해주곤 하죠.”
“제 연기는 실생활과 관련된 연기들이 많아요. 평소 제 생활과 밀접한 배역을 맡아 이를 캐릭터에 투영해 보는 거죠. 그래서인지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요. 이제 어느덧 저도 ‘중년 배우’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선배라고 목에 힘주지 않고 후배들은 물론 동료들과 선배들까지 상대 배우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연기를 하고 있어요.”
조명연(46) 씨는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베테랑 배우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지만 ‘연기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 지금도 데뷔 당시 초심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항상 연기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자신의 연기를 점검하며 ‘어제보다 나은 배우가 되자’는 슬로건으로 연기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지독히도 괴롭혔던 생활고…겸손한 자세와 꿈을 향한 열정으로 버텨내
“아무래도 배우도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의식주 등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이 없으면 힘들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배우 생활 중 공백기가 길어지면 일정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죠. 또한 언제 어떤 배역이 주어질지 모르는 입장에서 캐스팅 되기를 마냥 기다릴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새벽에는 쌀가게 배달, 12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주방서빙, 낮에는 만화가게 등 정말로 안해본 일이 없는거 같아요.”
“그렇지만 그 시간들 역시 지나고보니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했어요. 배우는 어떤 배역을 맡을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이같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제 실생활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된거 같아요. 제가 어떤 배역을 맡았을 때 이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더욱더 연기에 집중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도록 이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경험하면서 지나온 시간 하나 하나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연기에 대한 밑거름을 만든거 같아요.”
조 씨는‘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상업영화도 출연했으나 주로 독립영화에 출연한 경우가 많아 수입이 일정치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배우들은 하나의 배역을 맡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이 생각하는 배역 이미지와 맞지 않거나, 어렵게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제가 출연했던 영화 중 유진수 감독님의 영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몇 줄 안되는 대사인데 이 짧은 몇마디가 외워지지도 않고 연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아무래도 독립예산 영화는 제작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 당시에 제가 연기를 못해서 많이 미안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때 경제적인 부분도 힘들어서 잠깐 배우 생활을 그만두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은 점도 문제였죠. 그리고 제 자신이 오랜기간 연기를 해서 자연스럽게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와 배우생활에 대한 좌절을 맛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성격이 조금 내성적이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친화력 있게 지내지 못하는 편이죠.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숨기려고 한 경우가 많아요. 특히 배우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부분을 조금 아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때는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일반 사람처럼 다른 일을 하면서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는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치 않게 TV를 보는데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는거에요. TV에 나온 배우들의 연기를 보니 또 다시 배우에 대한 갈망이 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조 씨는 이를 계기로 하루하루 배우의 길을 다시 재점검하기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사를 읊조린다거나’, ‘길을 가다가 대본을 중얼거리거나’, 거울을 보면서 ‘내가 슬픈 연기를 할때는 내 눈썹은 어떤지’, ‘대사를 할 때 내 표정은 어떤지’ 등 시간이 날때마다 연기에 빠졌다. 그러면서 다시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기존의 장점인 애드리브에 연습으로 다진 연기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제작진들이나 주변 동료들이 ‘영화에 출연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올거 같다’ 등의 말을 해줬을때 스스로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꿈을 향한 문 두드리기…오랜 연륜으로 사람 챙기는 안목 생겨, 후배들 위한 배움 공간 마련
“그래도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존경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거 같아요. 또한 제가 2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기 때문인지 현장에서 후배들이 대하는 모습도 달라지기도 했어요. 저의 연기도 데뷔 초 보다 능청스러울 정도로 더 자연스러워졌죠. 그러면서 제 소극적인 성격도 좀더 적극적으로 변해서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상대배우는 물론 현장 분위기 마저 더욱더 좋게 만든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 일을 기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그동안의 모습들을 저장해 놓기도 해요. 이 와중에 제가 출연했던 ‘엄마의 공책’에 저도 역시 리뷰를 남겼었거든요. 그런데 김성호 감독님이 제가 쓴 리뷰를 보고 저에게 ‘너무나 고맙다’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이를 통해 연락이 안됐던 사람들이 저를 찾기 시작했고 배우로서 더 단단한 버팀목으로 길을 걷기 시작한거 같아요.
“나이가 40이 되든 50이 되든 아직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그분들을 나쁘게 보는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내 시간과 청춘을 투자해 이왕 하는 일이면 이 일에 대한 즐거운 감정이 수반돼야 더 행복한 삶을 살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주변에서 힘든 점을 알아주거나 다독여줄 사람이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이 아들이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배우예요’라고 답했을 때 진정으로 내 삶을 인정받은 벅찬 감정을 느꼈어요.”
조 씨는 이같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서 행동도 바뀌고 결국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점이 지금의 그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차츰 길을 갈 때 많은 팬들이 알아보고 싸인을 요청해 온다거나 그의 영화를 일부러 찾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점차 배우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느끼고 이 일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군산에 살면서 약 30편이 영화를 찍었거든요. 그런데 이 중 약 26편의 영화를 거의 다 서울에서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자동차로 이동을 하기도 하고, 친척집에 얹혀 자기도 하고,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조금 이런 부분이 아쉬워요. 서울이든 지방 도시이든 이 길을 꿈꾸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제작환경이 조금 더 개선되기를 바래요.”
“꼭 배우라는 필모그래피를 쌓기 위해 서울로 갈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상업영화와 같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죠. 그러나 독립영화처럼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제가 살고 있는 군산같은 소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제작을 할 수 있거든요. 또한 지방에도 많은 인재들이 있기도 하고 이 길을 원하는 청춘들이 많더라고요”
조 씨는 지난 2019년 상반기에 ‘군산 시민영상미디어지원센터 샘’을 창립했다. 이 단체는 군산에서 연기를 하고 싶고 촬영에 대해 알고싶은 기초적인 부분을 교육해주는 단체이다. 실제로 이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조 씨는 많이 놀랐다고 했다. 아마추어나 막 데뷔한 배우들을 통해 영화를 찍는 동안 그들에게 배울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씨는 ‘풍경’, ‘화이트데이’, ‘편지’, ‘아해 아리랑’ 등 4편 정도의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 씨는 이를 통해 많은 후배들은 물론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김병만 기자/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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