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크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되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죠.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지금 어머니의 말씀을 돌이켜 보니 그렇게 살고자 진정으로 노력해 온 것 같아요. 은가비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죠. 생색을 내려고 봉사활동을 하는 게 아니듯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따뜻함을 전하는 은가비의 활동이 참 보람돼요.”
얼마 전 안타까운 소식이 우리 사회에 전해졌다.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김홍빈 씨가 하산 도중 실종돼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올해 7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됐다가 구조 과정에서 절벽으로 추락한 뒤 실종됐다.
조난 당시 김 씨는 수차례에 걸쳐 구조 요청을 보냈으나 최소 15명 이상이 요청을 무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간이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아려 왔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 아닌 이타적인 동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 7월 강물에 빠진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에 근처를 지나던 시민이 주저 없이 뛰어들어 구해낸 일화처럼 이타심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가득해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돕고자 한다.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은 물론 때론 희생이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헌신한다. 여기 인간이 이타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봉사단체 ‘은가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집회 후 사람들 머물렀던 자리 청소·정리하던 모임서 전국 규모 봉사단체로 성장
은가비는 전국에 300여명의 회원을 둔 규모 있는 봉사단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은가비는 마음이 맞는 몇몇 사람으로 구성된 작은 모임에 불과했다.
“은가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졌어요.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비선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보고 들으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둘 모여들었죠.”
“당시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가 열렸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찾아오더군요. 하루는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마음에 뿌듯함을 느끼던 찰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됐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집회가 잘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해산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가 각종 휴지와 쓰레기로 어지럽고 지저분하더라고요. 더구나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흔들었던 태극기마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에 참 마음이 아팠어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이 휴지와 쓰레기를 줍고 집회 장소를 깨끗하게 치우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은 매주 집회가 끝나면 늘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했죠.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사람들이 단순히 일회성에 그칠 게 아니라 단체를 꾸려 본격적으로 활동해 보는 게 좋겠다는 데 공감하면서 비로소 은가비가 탄생하게 돼요.”
편의상 은가비라 칭하지만 전체 단체명은 은가비 마하나임(하나님의 군대)이다. 이중 은가비는 ‘은은한 가운데 발하는 아름다운 애국의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쁜 속뜻처럼 은가비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또 그들이 속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침 일찍 모이곤 해요. 그리곤 종일 자리를 지키죠.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점심, 저녁을 굶는 경우가 허다하더라고요. 나라에 대한 걱정에 하루 종일 집회에 참가하고도 정작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귀가하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자장면 한 그릇, 김밥 한줄이라도 대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회원 각자의 형편에 맞게 회비를 걷어 넉넉할 때는 좀 더 든든한 음식으로, 다소 부족할 때는 작지만 알찬 음식으로 집회를 찾아준 사람들에게 대접했죠.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은가비는 집회와 관련해 벌어진 각종 사고를 수습하거나 집회 중 다친 사람들을 돕는 등 궂은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9년 12월쯤이었을 거예요. 상당히 추운 날이었어요. 그날 집회에 참여한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갔다가 현기증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져 고관절이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고관절이 부러지면 걷지도 못할뿐더러 통증도 엄청 심해요. 잘못 하다간 사망할 수도 있는 무서운 사고죠. 이런 사고가 집회에 참여한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곤 우리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은가비 회원부터 개개인의 가족과 지인에까지 수소문해 사고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찾았어요. 또 무사히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고 환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금했어요. 그렇게 500만원이 넘는 큰돈을 모아 사고 환자에게 전달해 드렸어요.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모자라 수술비까지 마련해 준 데 대해 사고 환자가 연신 고맙다고 얘기해 주는데 그 말을 듣는 우리가 오히려 더 감사하더라고요.”
은은한 가운데 발하는 아름다운 애국의 빛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에 매진하고파
은가비의 회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학생부터 변호사, 전·현직 교사, 화가, 목사 등 다양하다. 연령대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흰머리 지긋한 노인까지 폭넓게 구성돼 있다. 다만 부모 뻘인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집회에 온 어린 아이나 젊은 학생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했다.
“한번은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집회를 찾아왔더라고요. 그 아이가 사람들을 향해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아이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어요’라면서 ‘저는 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해요’라고 외치는데 얼마나 예쁘던지요.”
“집회를 찾아주는 젊은 학생들이 귀하다보니 청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지 먼저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주변에 형편이 좋지 않은 청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위해 이른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모금 활동을 펼쳤어요. 그렇게 모은 돈을 청년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했죠. 풍족한 양은 아니지만 이 돈으로 청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에 지금도 후원을 이어가고 있어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은가비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정치적 구호나 논리에 휩쓸리기보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에 적극 매진하겠다고 했다.
“은가비는 모든 회원들의 단합과 노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어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회원 모두가 진심을 다해 봉사했죠. 그 결과 매주 치러지는 집회가 큰 사고 없이 질서 있게 잘 마무리됐고 약소하지만 맛난 음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했어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하루는 남루한 행색의 할머니께서 집회에 오셨는데 우리에게 받은 것에 비해 당신께선 줄 게 없다며 꼬깃꼬깃 접힌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시더라고요.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요.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몰라요.”
“그 뿐인가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회원들이 없었다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후원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청년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다음 세대를 이끌 지도자로 성장하게끔 돕는 것이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해요.”
이에 은가비는 다양한 활동을 원활히 해낼 수 있도록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은가비는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은가비란 각 회원들에게 있어 순수함 그 자체임에 틀림없어요. 은가비 회원 모두 어떠한 대가나 보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개인의 의지대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으니까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어요. 이는 은가비에 딱 어울리는 말이에요. 은은한 가운데 발하는 아름다운 애국의 빛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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