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미크론 확산 우려에도 국내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코로나19 당시 주가를 견인했던 동학개미(개인투자자)들은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세장에서도 꿋꿋하게 버텼지만 이달부터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변동성이 높아진 장세에서 여전처럼 삼성전자 등 코스피 대형주를 사들이지 않고 있다. 개별 종목으로 리스크를 지는 대신 상장지수펀(ETF)를 통한 분산투자에 관심을 쏟고 있다.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미국 주식시장이나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개미들 2.8조 팔며 떠날 때 外人 2.5조 사들이며 지수 반등 견인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현재 코스피 거래대금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7.7%로 50%대 밑으로 떨어졌다. 올해 10월 50%대에 진입한 이후 두 달 만에 40%대로 추락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선언으로 증시가 급락했던 지난해 3월(53.1%)보다도 낮았다. 월간 기준으로 가장 높았던 지난해 7월(72.2%)과 비교하면 24.5%p나 낮아졌다. 개인 거래대금 비중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18개월 연속 60% 이상을 유지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다.
증시의 버팀목이었던 개인의 공백이 커지면서 코스피 거래대금은 쪼그라들고 있다. 개인·외국인·기관 등을 합친 이달(1~9일) 하루 평균 코스피 거래대금은 14조4749억원으로 올해 들어 12월9일까지 평균(18조7797억원)의 77% 수준이다. 코로나발(發) 하락장 이후로 따지면 22개월 간 지난해 5월(13조5064억원), 올해 10월(13조2387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개인은 지난 10월까지 80조2858억원을 순매수했지만 11월에는 2187억원을 사들이는데 그쳤다. 이는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3000선 넘으며 축포를 터뜨렸던 1월(24조4563억원)과 비교하면 0.9%에 불과한 규모다. 특히 이달 들어 9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2조8488억원을 팔면서 매도 우위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외국인은 이달에 2조5182억원, 지난달엔 1조8981억원을 사들였다. 10월까지 30조7378억원을 순매도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을 파는데 그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63조393억원으로 9월 10일(73조3419억원)과 비교해 3개월 사이 10조원 이상 사라졌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에 맡긴 돈으로 증시대기자금의 성격을 띤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주식계좌를 개설한 박지수(29)씨도 며칠 전 보유한 국내 주식을 대부분을 팔며 국내 주식투자를 정리했다. 연초 매수한 삼성전자와 LG화학, 현대차 등 대형주들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 들어서도 저조한 수익률을 보여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예·적금 금리가 0%대에 가까워 저축만 하다가는 돈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아 남들처럼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원금만 잃었다”며 “주변에 비트코인이나 테슬라에 투자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국내 주식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차라리 통장에 돈을 쌓아두기만 했어도 이보단 많았을 것이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개인들이 사들인 종목들의 수익률은 저조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9일 기준 올해 개인들의 순매수 상위 15종목 가운데 3종목(카카오·NAVER·금호석유)만 올랐다. 수익률을 따지면 -21.5%에 달한다. 연초에 해당 종목들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215만원(세전)을 잃은 셈이다. 이 기간 중 코스피지수가 2.9%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하락률은 상당하다.
특히 1조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한 셀트리온은 39.3% 떨어졌다. 지난해 IPO 대어인 SK바이오팜 역시 34.3% 하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밖에 △LG생활건강 -27.3% △엔씨소프트 -24.6% △한국전력 -16.9% △현대모비스 -15.9% △LG전자 -13.4% 등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이며 개인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반면 개인들이 팔아치운 상위 15개 종목들의 연초대비 주가(크래프톤·카카오페이는 상장 첫날 종가 기준)는 LG화학을 제외하곤 대부분 올랐다. 해당 종목들의 합계 수익률은 6.2%이었다. 대표적으로 1934억원을 순매도한 일진머티리얼즈는 143.8%, 3686억원을 팔았던 삼성엔지니어링은 69.3%로 크게 상승했다. 그밖에 △KB금융 35.7% △현대건설 30.1% △KT 30.0% △S-Oil 27.5% △한국가스공사 26.1% 등도 올랐다.
박스권 이어지자 ETF 시장 71조 규모로 급등
다만 개미들이 증시 투자를 포기한 건 아니다. 이들은 변동성이 심한 개별종목 직접투자 대신 간접투자인 ETF에 눈을 돌렸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9일까지 개인은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각각 5조4900억원, 1조527억원을 순매도한데 반해, 국내 상장 ETF는 2조8433억원의 개인 순매수를 기록했다. 개별종목에서 빠진 투자금이 ETF로 몰린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ETF 투자 열풍에 국내에 상장된 ETF의 시가총액은 9일 기준 70조996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월 4일(52조8777억원)과 비교해 34.3%나 늘어난 규모다.
개인들은 해외 유망 종목에 투자하는 ETF를 주로 사들였다. 이달 1~9일 개인들은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를 2633억원 순매수했다. 코스피·코스닥 등을 통틀어서 개인들이 가장 많이 산 종목이다. 중국 기업 중 전기차를 제조·판매하는 시총 상위 20개 종목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 1위 업체인 CATL,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비야디(BYD), 세계 3위 리튬생산기업 간펑리튬 등을 담고 있다. 시총 규모 3조1367억원이다.
이 밖에도 △TIGER 미국나스닥100 634억원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566억원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543억원 △TIGER 미국S&P500 403억원 등에도 많은 돈을 넣었다. 국내 2차전지 관련 기업에 분산투자하는 KODEX 2차전지산업에도 190억원이 몰렸고, 테마형 ETF인 KODEX K-메타버스액티브 ETF도 163억원 순매수했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증시가 좋지 않을 때 ETF 순매수 규모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 들어서는 이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며 “하반기부터 직접 투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간접 투자에 대한 고민이 자금 흐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해외주식을 직접 투자하는 ‘서학개미’도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외화증권 보유 잔액은 1020억9500만달러(약 120조6700억원)로 전달(975억6000만달러)과 비교해 한 달 새 4.7% 늘었다. 지난해 7월 500억달러에 도달한 지 1년 4개월 만에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지난달 해외주식 순매수액도 26억5000만달러(3조1300억원)를 기록해 지난 3월(30억2700만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개미들이 해외주식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미국 시장 수익률이 국내 시장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이달 9일까지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5.4%, 5.6% 오르는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주요 3대 지수는 치솟았다. S&P500은 24.3% 상승했고 나스닥종합과 다우존스30산업도 각각 20.4%, 16.8% 올랐다.
개인들이 가장 많이 담은 종목은 단연 테슬라였다. 9일 기준 올해 테슬라 순매수결제규모는 23억2800만달러(약 2조750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테슬라의 주가는 42.2% 올랐다. 이어 △알파벳(6억9200만달러) 68.5% △메타(6억2100만달러) 20.7% △애플(5억8500만달러) 31.6% △마이크로소프트(4억7500만달러) 49.8% △ASML(4억1500만달러) 58.4% 등 순매수 상위 종목들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접투자는 다수 금융기관이 개입하는 복잡한 거래구조에 따라 국내보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투자정보도 얻기 어렵다”며 “환율변동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 추가 위험 요인이 발생할 수 있어 소규모 투자가 쉽지 않다보니 최근 서학개미의 직접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는 이례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학개미들의 해외투자 성향을 살펴보면 포트폴리오 투자의 일환이라기보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 같다”면서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가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점인 만큼 국내 금융기관이 단순 해외주식 거래 중개기능을 넘어 다양한 국제업무 창출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할 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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