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잇따른 도발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북한이 4월중 핵실험까지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달에는 북한의 빅이벤트가 차례로 예정돼 있다. 11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제1비서로 추대된 지 10주년이며, 15일은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이다. 또한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이다. 북한은 새해 들어 역대급 횟수인 13기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끝에 모라토리엄까지 해제하면서 본격적인 무력도발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반도의 시간표는 이미 5년 전으로 되돌아간 분위기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강행과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기간동안 북한의 군사능력은 점진적으로 더욱 고도화했고 메시지는 더욱 강경해졌다. 북한은 현재까지 6차례의 핵실험 단행과 함께 2017년 ‘화성-15형’을 발사하며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태양절 전후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해 온 미국 행정부를 중심으로 관련 목소리가 이어지는 중이다. 한·미정보당국 및 군관계당국을 통해 북한 핵실험의 본부격인 함경북도 길주군의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갱도 굴착과 건설 활동을 다시 시작한 정황이 포착됐다. 영변 핵시설을 다시 가동하는 등 핵실험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더해 북한이 지난달 24일 4년4개월 만에 미 본토를 사거리에 둔 ICBM ‘화성-17형’ 발사를 주장했기에 핵실험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6일 북한이 ‘태양절’에 ICBM 발사나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에 자제를 촉구했다. 그는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공개·비공개 메시지를 (북한에) 수 차례 보냈는데 어떤 대답도 받지 못해 실망스럽다”며 “북한은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행동을 중단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며 추가 도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성 김 대표는 이어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적인 행동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요구한다”며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응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최근들어 대북정책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선회를 강조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7일 북한을 ‘불량정권(Rouge Regime)’으로 규정하며 “CVID는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CVID는 한미동맹을 확대·심화하며 모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는 북한의 불량정권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억제정책과도 합치한다”고 강조했다. CVID는 2002년 10월 3일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정의한 비핵화 개념으로 미국 북한 비핵화의 기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북한이 향후 추가 핵실험을 하게 되면 전술핵폭탄 개발을 통한 폭발시험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전술핵무기와 다탄두 등이 실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핵실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북한이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한다면 모양이 작고 우라늄이 적게 필요한 2단계 수소폭탄 실험을 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수소폭탄에 분명히 관심이 있고 이와 관련한 핵실험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수와 관련해 그는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수를 20~60기 정도일 것으로 추산해왔다”라며 “지금도 거의 비슷하지만 북한이 어떤 유형으로 얼마나 많은 수소폭탄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북한이 해당 전쟁이 끝나기 전 핵실험을 서두르려고 한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실제 유엔 안보리는 3월25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시험발사 규탄 언론성명 채택을 논의했으나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며 무산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를 하자 당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참한 바 있는데, 북한의 모라토리엄(발사 유예) 파기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면서 이를 묵인했다.
미국은 해외자산통제실을 통해 1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을 지원한 5개 기관을 독자제재했다. 대외적 상황도 북한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전임 미국 행정부 당시부터 현 조 바이든 행정부까지 미·중 갈등이 격화한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북한의 전략적 입지가 넓어진 게 사실이다.
‘핵무력 완성’ 위해 달려온 북한 목표는 ‘체제보장’
외교가 및 관련 전문가 등의 주장을 종합하면 북한 핵 개발의 동기는 ‘체제 안전 보장’이란 것이 중론이다. 북한 핵실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러시아 동유럽 공산체제가 붕괴하고 한·중간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체제 붕괴 위기까지 몰리자 핵무기 개발을 통해 위기극복에 나선 것부터 시작이 된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북핵문제가 본격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4년 미·북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가 타결된 이후 북한의 플루토늄 핵시설은 수년간 동결되면서 북핵문제가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2002년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 의혹 및 플루토늄 핵시설 동결해제 조치 등으로 8년 만에 폐기됐다.
북한은 핵무장을 통한 ‘강성대국’ 실현에 착수했고 2006년 첫 핵실험을 비롯해 2009년에 핵실험을 감행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도발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랭하기도 했다. 이때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 핵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북한은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후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이어 ‘핵보유국 지위 영구화를 선언’했고 ‘경제건설 및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의 채택과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법’ 제정을 했다. 핵 개발과 경제건설을 통한 주민의 생활 수준에 대한 2대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핵기술 고도화를 위한 4차와 5차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2017년 9월 ICBM급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긴장을 계속 고조시켰다. 법적·제도적 토대를 자국 내에 마련한 후 체제결속과 대내외적 위협과 도발에 핵실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정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북 간 대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 성과로 도출된 게 ICBM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단 약속이 담긴 2018년 4월의 모라토리엄이었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와 적대정책 폐지 등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미·북 간 싱가포르정상회담까지 이뤄냈다.
이것이 결렬된 게 바로 미·북 양측에서 도출한 제2차 하노이정상회담이었다.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 이후 대북제재 해제와 북한이 바랐던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선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견해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결과였다.
2019년 6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은 남·북·미 간 역사적인 3자 회담을 이루며 실무협상 추진에 합의했으나 이의 후속회담으로서 스웨덴 미·북 간 고위급 실무협상이 결렬되며 한반도 평화모멘텀은 이렇다할 추진력을 갖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보다 강경한 기조의 조 바이든 정부가 집권에 성공하며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사실상 단절되고 말았다. 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한동안 순항하는 듯했으나 완전히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북한의 비핵화’는 ‘모라토리움 파괴’로 더욱 고도화된 탄도미사일 및 전략적 무기 개발 등의 군사도발로 되돌아왔다.
윤석열정부 ‘한·미공조 강화’로 ‘비핵화’ 추진해야
북한은 ‘체제보장’이란 상수를 위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협박, 대화, 보상’을 요구하며 핵과 전략무기를 개발, 자국의 헌법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천명했다. 북한은 2017년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이후에 안정적 핵와 체제를 보장받고자 ‘비핵화 딜’을 통해 대북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는 일종의 ‘비핵화 딜’의 기조를 유지해왔다.
주영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이 ‘쇼’를 통해 대북 제재만 풀려고 했고, 현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다’며 국제 공동체에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해왔다”며 “우리 국민은 허황한 대북정책과 안보위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가를 너무나도 똑똑히 봤다”라고 평가했다.
태 의원은 “김정은의 의도는 명백하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깊어진 미·러 대결과 미·중 갈등을 이용해 핵무력 현대화를 공개적으로 다그쳐 미국을 압박하고 새로 들어설 윤석열정부를 시작부터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기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비핵화에 집중될 것으로 관측된다. 인수위에서 차기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권영세 의원이 향후 어떤 정책을 표방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관련,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윤 정부의 남·북관계 기본은 공약에 나타난 대로 비핵화와 비핵화를 통한 남북 간 공동 번영 등의 방향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은 1월24일 발표한 외교안보공약에서 북핵에 대한 대응력 있는 강화와 원칙 있는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힘을 통한 평화 구축’을 강조한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억제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 당선인은 “비핵화가 최우선인 상황에서 남북협력과 경제협력은 후순위”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천식 전 차관은 “북한은 보수 혹은 진보든 한국 측 새 정부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한다”라며 “체제이익을 위해서 한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보수 정부가 집권했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정책을 변경하거나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동맹 공조’를 통한 대북정책 대응도 한층 더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10일 윤석열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이종섭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예비역 중장) 또한 한·미 연합지휘 구조를 설계하는 등 국방정책·기획 전문가로 평가된다. 한·미동맹 강화를 예고한 윤 당선인의 국방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웬디 셔면 국무부 부장관을 면담한 한·미정책협의대표단도 이 같은 기조와 결을 같이 한다. 미국 측과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서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하는 데 공감했다고 알렸다. 이들은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비롯한 안보상황을 감안해 미국 측에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만나는 ‘2+2’ 회의를 제안했다고 7일 밝혔다.
윤 당선인은 북한 비핵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난달 8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통해 확인 가능한데, 당시 윤 당선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미 양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며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지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북한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당선인은 ‘핵무장’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는 질문에 “자체 핵무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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