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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37] 나당전쟁 ①
너의 목숨보다 나라의 운명과 군사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라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8 06:30:20
 
 
바람이 사납게 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이 사람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널어 놓은 빨래를 걷는 아낙네와 볕에 말리던 벼 이삭을 거둬들이는 장정의 손길이 바빴다. 아이들은 바람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철새 떼가 비행하듯 떼를 지어 뛰어다녔다.
 
도련님, 이곳에는 어인 일로 나오신 겁니까? 내일이 출정일입니다. 좀 쉬셔야지요.”
담릉(淡凌)의 목소리가 원술(元述)을 일깨웠다.
저들을 봐라. 아름답지 않으냐?”
담릉은 영문도 모른 채 원술이 시키는 대로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이곳은 밖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는 무관한 듯 평화스럽게 보였다.
이번에 우리가 당군을 막지 못하면 이곳도 통곡과 비탄으로 가득 차겠지.”
담릉은 그제야 주군이 성 밖 마을을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혹시 패할까 봐 걱정이세요?”
출정을 앞둔 장수 앞에서 패배를 입에 담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원술이 잔잔한 웃음을 띤 채 대답했다.
지는 건 두렵지 않다. 단지 그 때문에 백성이 고통을 받게 될까 저어될 뿐이다.”
담릉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주군이 자랑스러웠다.
우리 신라군이 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아무리 막강한 당군이 상대라 해도 도련님처럼 신념을 품고 싸우면 절대 패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곳에 나오길 잘 했다. 이제는 됐다. 집으로 돌아가자. 내일은 긴 하루가 될 테니 오늘 밤은 푹 쉬어야지.”
 
원술이 말머리를 돌리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차가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말을 달리다 보니 바람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전장에 나가면 너를 잊고 오로지 쓰러뜨려야 할 적만 생각해라. 그것이 우리 화랑도에서 말하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이다.”
유신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전장을 누비며 신라를 삼국 가운데 우뚝 세운 이 노장은 자기 아들도 신라의 화랑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리라 믿었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원술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재삼 다짐했다.
그에게 부친은 사방 수천 리에 그늘을 드리우는 백두산과 같은 존재였다. 늘 바쁜 정무와 원정으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그의 마음속에서 늘 함께했다.
 
이번 원정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여러 형제 중에서 노환으로 전장에 나설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출전하는 것은 그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는 증거였다.
너의 목숨보다 나라의 운명과 군사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라.”
유신의 훈시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원술에게는 폐부에 새기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었다.
원술은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며 말을 달렸더니 두건과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어느새 성문 앞에 다다랐다.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몹시 을씨년스러웠다.
 
서력 6717, 설인귀가 금강 어귀에 나타났다. 그는 문무왕에게 당 고종의 편지를 전했다. 문투는 공손했지만 그 내용은 신라에 잘못을 돌리고 백제 땅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었다.
문무왕은 정중하게 답신을 써서 보냈다. 약조를 어긴 당의 처신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받은 설인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그 후, 문무왕은 공세를 펼쳐 사비성을 점령하고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했다. 그리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아 통치를 맡겼다.
설인귀로부터 문무왕의 답신을 받아 본 고종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고간에게 평양으로 가서 신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라 명했다. 그리고 설인귀에게 수로를 통해 금강으로 나아가라 일렀다.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은 금강 하구에 정박하여 상륙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문무왕의 명을 받은 진공(眞功)의 부대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진공의 명을 받은 급찬 당천(當千)이 당의 군선을 공격하러 나섰다.
당천의 목표는 당군의 식량을 수송하는 보급선이었다. 식량이 사라지면 당군의 사기도 자연히 꺾일 터였다.
당천의 신라군은 작고 빠른 배를 타고 오가면서 당군의 혼을 빼놓았다. 바다 위에서 한바탕 격전이 펼쳐졌다. 조운선단(漕運船團)의 감독을 맡고 있던 낭장 겸이대후(鉗耳大侯)가 신라군에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장은 신라군에게 사로잡혔고, 보급선 70여 척이 화염에 휩싸여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식량을 모두 잃은 설인귀는 상륙을 포기하고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토번과 격돌한 대비천 전투에서 10만 군사를 잃은 후로 연이은 참패였다. 설인귀는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 함께 작전을 펼쳤던 신라군의 역량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는 싸움에서 패한 후에야 신라군의 저력을 깨달았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와 백제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도 신라군의 활약 덕분이었다.
설인귀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부터 전개되는 신라와의 싸움이 절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흔들었다.
 
한편, 당 고종의 명을 받은 고간은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말갈 장군 이근행(李謹行)의 군대와 합류하여 남하했다.
이근행은 고구려 영양왕 시절 흑수말갈을 꼬드겨 고구려에 반기를 들게 한 매국노 돌지계의 후손이었다. 그 당시 돌지계는 거란으로 도망쳤다가 수나라에 귀부했다. 그의 후손인 이근행은 다시 당에 붙어 돌궐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이끄는 기마병은 당군에서도 최정예라 불릴 만했다.
 
고간의 군대는 안시성에서 항전하고 있던 고구려 유민들을 격파하고 평양성으로 입성했다. 이로써 그동안 각지에서 일어난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 세력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안동도호부의 당군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간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패하 이서에서 득세하고 있는 나려 연합군을 평정하기 위해서 남하했다.
문무왕은 당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의복(義福)을 대장군, 춘장(春長)을 상장군으로 삼아 정예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게 했다.
 
신라군이 패하 이서에 이르렀을 때, 당군은 이미 한시성(韓始城·평양 인근 서시촌)·마읍성(馬邑城) 등을 함락시키고 백수성(白水城,·재령)에서 5백여 보 떨어진 벌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기마병을 내세워 기동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술을 썼기에 백수성 앞에 펼쳐진 너른 벌판은 신라군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양군은 한동안 상대방을 탐색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행동을 개시한 쪽은 당군이었다. 고간은 신라군이 보병 위주로 편제된 것을 보고 기병으로 공격하면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고간의 진격 명령이 떨어지자 일렬로 선 말갈의 기병이 선봉으로 달려 나갔다. 당의 기병 역시 뒤처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수만 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뛰니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요동쳤다. 이때, 밀집된 형태의 방진(方陣)을 취하고 있던 신라군이 진형을 변화시켰다. 신라 진영은 마치 활짝 핀 꽃잎과도 같았다. 이른바 육화진(六花陳)이었다.
말갈 기병이 진영으로 무섭게 다가오자 선두에 서 있던 신라 군사들이 들고 있던 방패와 칼을 땅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숨겨 놓았던 긴 창을 꺼내 달려드는 적군의 말을 향해 사선으로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한순간에 시퍼런 장창 숲이 나타나자 선봉에 섰던 말갈 기병은 놀라서 말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가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날카로운 창날이 말의 목과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말들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말 위에서 튕겨 나간 군사는 허공을 날면서 비명을 질렀다. 뒤따라오던 당의 기병도 속속 변을 당했다. 고통에 겨운 신음으로 가득 찬 벌판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당군이 자랑하던 기동력은 허무하게 와해됐다.
 
바닥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뼈가 부러진 가운데, 당군은 도망치려 안간힘을 썼다. 이때, 단창을 든 신라 보병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왔다. 운신하기도 어려운 당나라 군사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난도질을 당했다.
고간은 황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후퇴시켰다. 그냥 놔뒀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듯했다. 선봉에 섰던 이근행이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오긴 했지만 수천의 기병이 목숨을 잃었고, 3000여 명이 신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백수성 전투에는 신라군의 근간을 이루는 6정의 부대와 독립 부대 성격을 띤 서당·낭당·장창당·백금서당 등이 대거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당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조직된 장창당의 활약은 눈부셨다.
서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운 장창당은 포상을 약속받았다. 백수성 전투에서 승리한 공이 모두 장창당에게 돌아가자 논공에서 제외된 나머지 당들은 의욕을 잃었다. 여러 독립 부대가 참여하여 명령 체계가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부대만 공을 독점하면 다른 부대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장창당의 장졸들이 기고만장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자 감정이 상한 당주(幢主)들은 철수 의사를 밝혔다. 이를 들은 대장군 의복은 크게 당황하여 말렸지만 그들의 의지가 너무도 단호하여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각 당의 군사들이 대거 빠져나가려 하자 비장 원술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마당에 한갓 전공을 다투고 있는 당주들이 한심했다.
원술은 울컥거리는 심정을 담릉에게 털어놨다.
여기서 물러나면 신라군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내 당장 철군하는 당주들의 목을 베어 흩어진 군심(軍心)을 하나로 모아야겠다.”
당장에라도 칼을 빼 들고 달려 나갈 기세였다.
담릉이 놀라서 말렸다.
저들의 목을 베어 봐야 사태가 악화할 뿐입니다. 그보다는 당군의 움직임을 경계하십시오. 아군의 사분오열(四分五裂)을 눈치채면 당장 쳐들어올 겁니다.”
내가 대장군을 뵙고 아뢰겠다.”
원술은 말을 몰아 지휘부 막사로 달려갔다.
 
담릉은 원술의 뒷모습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 대장군 유신을 따라다니며 많은 전투를 겪었기 때문에 사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한 법인데 원술은 위태롭게 보일 정도로 조급했다. 담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원술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거두어 준 대장군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었다.
 
수장인 의복은 아무 대책도 없었다. 그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휘하의 부대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조차도 신설 부대인 장창당의 활약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듯했다. 실망한 원술은 직접 당주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갓 비장의 말을 귀담아듣는 자는 없었다. 당주들은 휘하 군대를 이끌고 하나씩 진영을 떠났다.
 
신라군의 움직임은 곧바로 고간에게 보고됐다. 고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근행에게 신라군을 앞질러 가서 길목을 막도록 했다. 후퇴하던 신라군은 호로하(瓠瀘河)에 이르기도 전에 석문에서 이근행이 이끄는 말갈 기병의 기습을 받았다.
전열이 흐트러진 신라군은 적의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신라 군사들이 활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고간의 군대가 후위에서 덮쳐 왔다. 적군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된 신라군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물고기처럼 무력했다. 이때 의문(義文)을 비롯해 숱한 장수가 목숨을 잃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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