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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푸른나무의 김준 사무총장은 어려서 부터 봉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살아왔다. 김 총장은 현재 북한 취약계층을 돕고 장애인을 위해 재활을 지원하는 활동 등을 다양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선천적으로 남을 돕고 봉사하는데 제 스스로 많은 기쁨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로 활동을 하는 한편 목사로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북한 주민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북한 장애인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본격적인 북한 장애인 지원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사)푸른나무의 김준 사무총장은 1970년 경북 군위군 태생이다. 그는 공무원이었던 선친의 영향으로 주민을 살피고 봉사하는 희생정신을 어려서부터 일깨웠다고 한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집안을 이끌어 가셨지만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친은 부족한 형편에도 주민들을 살피며 걱정했고, 남을 돕고 사셨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죠. 부친은 항상 솔선수범했죠. 저 역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주변에 베풀며 살고자 했습니다”
유년시절을 군위군에서 보낸 그는 순복음신학교(현 한세대)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저는 당시 집안의 어려움으로 학비를 못 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했지만 학비를 마련하는 것은 힘들었죠. 그리고 자포자기 하려는 순간 제 사정을 누가 알았는지 밀린 학비를 대납해 주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누가 대신 납부해 주셨는지 수소문해서 확인해보았지만 아직까지 결국 확인을 못했습니다. 그 이후 ‘평생 남을 돕고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20대에 뜻하지 않는 질환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30 대를 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 김 총장은 20대에 류마티스관절염에 걸려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과 강한 의지로 병에서 회복했다. 이후 그는 다른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의 삶에 더 큰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젊은 혈기 왕성한 20대의 김 사무총장은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됐었다.
“1997년으로 기억이 납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였는데, 담당 의사는 관절염이 점점 악화돼 30대를 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20대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셈이었죠. 희망이 점점 없어지던 시기에 제가 다니던 담임 목사님이 병문안을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저를 위해 많은 시간동안 기도해 주셨습니다”
김 총장은 관절염이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밤낮없이 홀로 깊은 기도를 했고, 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병이 호전됐던 상황을 전했다.
“한번은 밖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관계자 분이 물건을 들어달라는 도움을 요청해서 거들었는데 제가 관절염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체 물건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며 일을 도왔습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돌이켜 보니 그런 행동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후부터 관절염이 조금씩 호전됐고 계속 운동량을 늘러 갔었죠. 의사도 이런 호전 현상은 처음 본다며 의아해 하셨죠”
조금씩 회복을 보였던 김 총장은 기적처럼 완치돼 퇴원을 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신앙생활과 선교사 활동에 나섰다. 국내와 외국을 넘나들며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고려사이버대학교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공부해 원어민과의 대화가 될 정도의 어학실력을 갖게 됐다. 이후 선교사로서 본격적인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외국아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 2009년 미얀마 정부에 구호품 전달 협약식에 참석한 김준 사무총장(원) <사진=푸른나무>
김 총장은 2005년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지역 복구지원, 2009년 미얀마 정부 구호품전달, 2010년 인도 빈민지역에 의료지원 등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외국을 많이 다녔습니다. 한번은 말레이시아에 갔었는데 영어로 수업을 하면서 한국어를 전파하는데 노력을 했었죠”
“또 북경에서 임시 담임 한인교회 목사를 맡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이곳에서 조선족과 북한주민들을 만났는데, 이들의 열악한 환경을 접하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저의 북경 생활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수업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족과 북한 주민들을 만나 얘기 하면서 북한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계기로 현지에서 ‘푸른나무’의 관계자로부터 소개를 받았고 사무총장으로서 북한 장애인들을 위해 힘쓰게 됐죠”
북한 장애인을 위한 지원 단체 ‘푸른나무’
▲ 김 총장이 중국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사진=푸른나무>
푸른나무는 북측의 유일한 장애인 공식기구인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원회’와 2005년에 인도적 지원 분야의 공식적인 합의를 체결한 이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곳은 평양을 비롯해 황해도, 함경도 등 북한 전역에 11곳의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 했고 장애인 체육협회와 예술단도 지원하는 등 대북지원을 위해 약 30여개의 협회와 학교, 공장, 의료기관 등을 마련해 주었다.
지원 내역으로는 장애인 휠체어, 목발, 담요, 생필품 등 약 3억 원 상당을 비롯해 협력기관과의 협업으로 의료지원 등 재능기부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저희 재단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한번은 공사장에서 포크레인 사고로 왼쪽 팔과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인인 임주성이란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사고 이후 절망보다는 웃음을 잃지 않았죠. 수영을 좋아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본인의 뜻대로 수영을 가르쳐주었고, 독일 전지훈련까지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2012 런던 패럴림픽 대회에 참가 했지만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평양을 비롯해 황해도, 함경도 등 북한 전역에 11곳의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 했고 장애인 체육협회와 예술단도 지원하는 등 대북지원을 위해 약 30여개의 협회와 학교, 공장, 의료기관 등을 마련해 주었다.
지원 내역으로는 장애인 휠체어, 목발, 담요, 생필품 등 약 3억 원 상당을 비롯해 협력기관과의 협업으로 의료지원 등 재능기부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저희 재단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한번은 공사장에서 포크레인 사고로 왼쪽 팔과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인인 임주성이란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사고 이후 절망보다는 웃음을 잃지 않았죠. 수영을 좋아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본인의 뜻대로 수영을 가르쳐주었고, 독일 전지훈련까지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2012 런던 패럴림픽 대회에 참가 했지만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임주성 선수는 열심히 훈련을 했고 지난 2013년 말레이시아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저희 단체가 후원사로서 각광을 받게 됐고 북한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 듯 합니다”
▲ 푸른나무는 북한의 임주성 선수(원)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런던페럴림픽에 참석한 임주성 선수(원) <사진=푸른나무>
김 총장은 오는 10월 방북 계획을 갖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번 방북을 하게 되면 1주일 정도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으며, 다시 주기적인 방북을 통해 1년 중 약 80일 정도 머물수 있다고 한다.
“북한어린이는 발육성장이 잘 안돼 후천적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무엇보다 잘 먹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 같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북 지원방안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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