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 이미지 13개 출처: 연합뉴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뇌졸중 투병 끝에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항년 88세. 수려한 외모·연기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으로 20세기 지구촌 영화팬들의 영원한 스타가 된 인물이다. 1960~1980년대를 풍미한 미남 배우 신성일의 별명이 “한국의 아랑 드롱”이었으며 “알랭 들롱 같은 미남” 등 표현이 자연스레 통용됐을 만큼, 영화를 떠나 친숙한 존재이기도 했다.
들롱의 세 자녀 파비앙·아누슈카·앙토니가 이날 AFP통신에 보낸 성명을 통해 부친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들롱은 2019년 뇌졸중으로 쓰려진 이후 요양에 집중해 왔다고 알려진 상태였다. 성명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북부 두쉬의 자택에서 세 자녀등 혈육 등 가족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으며 유족들과 루보(들롱의 반려견)가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가 그의 출세작이다. 풍요로운 삶과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톰을 연기해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이 작품에서 “태양보다도 강인한 눈빛을 보여줬다”고 평가 받았으며 출중한 외모와 매혹적인 눈빛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릴러 영화이기도 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들롱이 연기한 것은 부잣집 아들과 지중해에서 요트를 타다가 치명적 범죄를 저지르는 청년 리플리다.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원작으로, 자기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리플리 증후군’ 용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훗날 맷 데이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리플리’(2000)로 리메이크됐으며 오늘날 초연결성과 익명성 속에 만연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상반신을 드러낸 ‘태양은 가득히’ 속 들롱의 관능미는 오래오래 화제가 됐다. 이후 특유의 퇴폐적인 매력을 앞세워 주로 암흑가 범죄와 삶의 어둠을 다룬 느와르 작품에 출연하면서 살인자·악당·경찰 등 배역을 맡았다. 1957년 데뷔 이래 50여년간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 중 80여편이 주연이다. 중년 이후에도 녹슬지 않는 연기력과 중후함이 더해진 외모를 유지하며 프랑스 국민배우로 사랑받았다.
그 외 대표작으론 ‘태양은 외로워’(1962)·‘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볼사리노’(1970)·‘암흑가의 세사람’(1970년)·‘조로’(1975) 등이 있다. AFP통신은 들롱을 “프랑스 최고의 스크린 유혹자”로 평했으며 AP통신에선 “도덕적으로 타락한 영웅을 연기하든 로맨틱한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든 잊을 수 없는 들롱의 존재감”을 말했다.
들롱을 20세기 전 세계 최고 배우의 한 사람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난해한 영화조차 흥행에 성공하게 만든 것 역시 들롱 특유의 매력과 인기를 말해준다. 한때 안방에서 해외 영화를 접할 유일한 통로였던 TV프로그램인 토요명화나 주말의명화의 단골 레퍼터리가 알랭 들롱 영화였다. 대중오락의 중심이 영화였던 20세기였기에 들롱의 유명세는 사실상 영화팬 여부를 구분할 필요도 없다.
다작의 배우였던 그가 1990년대 이후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니 2017년 영화계 은퇴 선언이 나왔다. 앞서 2007년 칸영화제에서 ‘밀양’(이창동 감독)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전도연의 시상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마지막 공개 석상은 2019년 칸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 때였다. 영화계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된 이 상을 받으며 그는 “스스로 정말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게 자신의 (영화인) 경력”이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1935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들롱은 스물두 살이던 1957년 우연히 칸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어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당시 들롱은 ‘프랑스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 할리우드 스타 제임스 딘에 비유된 것이다. 마침 1955년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어 영화계의 신화가 된 미국 배우 제임스 딘 추모 열기로 뜨거웠던 시기였다.
‘지하실의 멜로디’(1963)·‘암흑가의 세 사람’(1970)·‘형사’(1972)·‘암흑가의 두 사람’(1973) 등도 유명하다. 장 가뱅·리노 벤추라 등 당대의 대표적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들 작품에서도 들롱의 외모가 관객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조각상 같은 골상, 고독과 우수로 가득한 눈,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린 채 걸어가는 모습 등이 들롱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예술적 작품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이끈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로코와 그의 형제들’이 대표적이다. 시칠리아 출신 극빈층 가족의 삶을 그린 이 영화가 그만한 주목을 끈 것은 들롱의 호소력 있는 연기 덕분으로 설명된다.
요절한 제임스 딘과 달리 구순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난 들롱은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 가정폭력, 22세 어린 마지막 연인 등 다채로운 삶 속에 화제를 몰고 다니며 구설에도 올랐다. 근년 프랑스의 자국 우선주의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을 옹호하는 발언 등이 논란을 불렀지만 그런 그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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