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표명해 한바탕 소동을 불렀다. 5일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포럼(EEF) 석상에서 나온 푸틴의 관련 발언에 백악관이 발끈했고 국내외 주류 언론은 ‘어리둥절’ 하면서 며칠간 시끄러웠다.
전날 미 재무부가 “소셜미디어에서 친(親)러시아 메시지 확산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며 러시아 국영 방송 RT의 보도국장 등 개인 열 명과 기관 두 곳을 신규 제재 명단에 올린 이튿날 벌어진 일이다. 제일 먼저 나온 해석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원하려는 푸틴의 기만전술’이었다.
특히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이 즉각 반발했다. “그가 (우리 대선 후보 중) 어느 쪽도 선호해선 안 된다”며 “차기 미 대통령을 결정할 유일한 사람은 미 국민이다. 간섭을 중단하면 정말 고맙겠다”고 정색을 했다. 국제사회의 ‘악당’으로 몰린 푸틴에게 칭찬을 받는 게 난처한 상황일 수 있다.
7일에서야 국내 유튜브 채널 ‘월드 리딩’이 “퓨틴 대통령의 재치와 순발력”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해설했다. 발언 당시 푸틴의 표정·말투, 관중석에 앉아 있던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의 반응을 보면 고단수 재치였음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주류 언론과 달리 유튜브·팟캐스트 등 뉴미디어나 댓글 등에 이런 해석과 통하는 지적이 많다.
EEF란 러시아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 및 주변국과의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 2015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연례 행사로 주최국 러시아 외 한국·일본·중국·몽골·베트남이 참석해 왔다(우크라이나전쟁 발발 후 한국·일본 불참). 이 자리에서 미 대선 후보 중 누가 더 좋냐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그러자 푸틴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우리의 선호 후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예측가능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불출마하며 지지자들에게 해리스 지지를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가 놀려 온 해리스 특유의 ‘폭발형 웃음’을 들어 “매우 표현력 있고 전염성이 높다”며 “그(해리스)가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재임 시 역대 대통령 중 최다 제재를 러시아에 부과했다. 해리스는 그런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고 말한 다음, “미국의 새 대통령이란 미국 시민의 선택이니 이를 존중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다만 여기서 그가 언급한 대러 최다 제재 대통령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착오다.
이에 CNN가 “지지의 대상(해리스)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며 “미 국내 정치의 ‘냄비’ 속을 휘저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MSNBC에선 “미 대중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시도”, “해리스의 웃음까지 언급하다니 미 대선에 대한 지나친 관심” “고도의 낚시질(trolling)” 등의 해석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뉴욕의 한 경제 행사에 참가해 “(푸틴의 해리스 지지 표명에) 모욕을 당한 것인지 그가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인지 모르겠다”며 덤덤하게 감사를 표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래 푸틴의 칭찬이 해리스에게 결코 이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수 없다.
크렘린궁에선 “(푸틴 대통령) 발언 맥락이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라”고 짧게 논평했다. 해리스캠프의 이언 샘스 대변인은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를 암시하며 “이번 선거에서 전 세계 독재자와 깡패들이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2015년 12월 트럼프가 대선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기 몇달 전부터 푸틴은 그를 “의심할 여지 없이 밝고 재능 있는 인물”로 표현하곤 했다. 반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해선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2016년 대선 직전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이메일 폭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힐러리캠프가 ‘트럼프 당선을 위한 러시아의 정치 공작’으로 몰아가려 했다.
2019년 트럼프와 푸틴 정상회담 때 푸틴이 “냉전은 끝났다”, “미국과 러시아는 문제들을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2월 미 폭스뉴스 앵커와의 인터뷰 때만 해도 트럼프와 “좋은 개인적 관계”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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