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10여일 앞둔 가운데 민주당은 ‘집토끼’들의 이탈에 초조해진 분위기다. 민주당 최고 스타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투입된 상태지만 별 효과가 없다. 23일(현지시간) 나온 여론 조사 결과엔 공화당·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뒤바꼈다는 역사적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 젊은 흑인 남성 중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헤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유권자가 10명 가운데 6명도 안된다.
민주당이 흑인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유지해 온 이래 최대 이변이다. 시카고대가 18~40세 성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26일~이달 6일 실시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자 가상 대결에서 흑인 남성 응답자 26%는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젊은 흑인 여성의 해리스 지지(63%)가 여전히 트럼프보다 훨씬 높긴 하지만 흑인 전체 및 흑인 남성 유권자의 트럼프 지지세는 놀라운 현상이다.
150여년 전 북부 공업지대에 기반한 공화당이 노예해방을 추진할 때 노예노동에 기반한 남부 농장주들은 민주당이었고, 이들의 충돌로 일어난 게 남북전쟁이었다. 이 구도가 1930년대 경제공황 당시 뉴딜정책을 밀어붙힌 민주당 소속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달라졌으며, 이후 민주당은 흑인·라틴계·아시아계 등 비(非)백인계 인구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것이 다시 크게 뒤집힌 것은 제조업이 중국 등지로 옮겨가면서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져 서민·중산층 몰락이 가시화한 2016년 대선이었다.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블루칼라 백인들의 지지를 업고 등장한 게 트럼프였다. 기존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유형의 트럼프 같은 인물이 공화당 후보가 돼 대권을 차지한 것, 조 바이든에게 백악관을 넘겨 준 사이 공화당을 사실상 ‘트럼프당’으로 재구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화당 내 네오콘 세력에게 최대 위협이 트럼프인 것은 그가 이들의 방위산업을 지탱해 온 ‘세계경찰’ 역할 대신 민생에 집중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미국 우선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로 표현된 트럼프의 방향성이다. 재임 시절 두 번의 트럼프 탄핵에 적극 나서는 등 반(反)트럼프 경향을 보이다 공천(경선)에서 밀려난 리즈 체니 전 의원 등이 해리스 선거운동에 동참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승패의 또 하나 관건이 ‘청년 표’라는 분석도 나왔다. 2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선 이번 미 대선을 ‘청년층 쟁탈전’으로 전망하기까지 했다. 통상 Z세대를 포함한 젊은층이 민주당 지지층으로 여겨져 왔지만 트럼프가 젊은 남성 표심을 대거 확보한 점에 닛케이는 주목했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거주 19세 남성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내 주변 생활을 나아지게 만들 사람에게 투표하겠다”며 “매일 운전해 출퇴근하는 처지라 휘발유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전 세계 운명을 좌우할 미 대선에서 서민의 생계와 일상 생활 문제가 결정적 요인이 된 현실을 짚었다.
10월 7~10일 뉴욕타임스(NYT)가 실시한 펜실베이니아 주 여론조사에선 투표할 후보 미정인 사람이 14% 정도였다. NYT는 이 중 절반쯤을 청년층, 즉 정치에 관심이 적고 투표참여 여부도 확정적이지 않은 계층으로 보며 트럼프가 격전지의 5% 유권자를 ‘표적 설득’ 대상으로 잡아 집중 공략 중이라고 전했다. 인종 불문, 저소득 청년층에 초점을 맞춘 게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젊은 남성 시청자를 많이 보유한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에 적극 출연하는 전략도 그 중 하나다. 주류 언론이 트럼프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 특유의 입담과 순발력은 신종 미디어에서 빛을 발한다. 25일(현지시간) 로건의 토크쇼에 트럼프 출연이 결정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이자 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한 로건의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 구독자는 1700만 명 이상이며 그 중 81%가 남성(35살 이하 56%)이다. 라틴계 비율도 높다.
해리스 역시 TV 심야 프로그램·팟캐스트·라디오 방송 등 노출을 늘리고 있으나 준비된 원고 없이 대응해야 하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주류 언론 방송사가 해리스 인터뷰를 편집·보정한 게 드러나 물의를 빗기도 했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의 18~29세 득표율이 60%(트럼프 36%)였기에 젊은 층이 민주당 승리를 이끌었다고 풀이됐다. 하지만 달라졌다. 남녀 간 성향 차이 등이 나타나는 등 ‘젊은 층 대다수 민주당 지지’ 공식이 깨진 것이다.
최근 NYT 조사에 따르면 젊은 층 남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55%로 해리스(38%)를 17%p나 앞섰다(여성 유권자에선 해리스 62%·트럼프 31%). 고령 리스크로 바이든이 후보직을 사퇴한 후 해리스가 젊은 층의 지지를 다소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젊은 남성만 따지면 바이든과 해리스 지지율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이번에 ‘생애 최초 대선 투표’를 하게 될 유권자는 약 830만 명이며 18~27세 유권자 45%가량이 비백인이다. 민주당 지지 기반이던 흑인과 라틴계가 확연히 트럼프 지지세로 돌아섰다고 평가된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저소득 젊은 층 타격도 크게 작용했다. 우크라전쟁·중동전쟁 등 악재가 겹쳤다고 하나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바이든정부의 정책 기조다. 친환경을 위해 셰일 채굴이 금지됐고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미국판 이대남(이십대 남성)’ 현상, 젊은 남성들에게 보수적 성향이 강화된 것 또한 트럼프에게 호재다. 과격 페미니즘인 젠더이데올로기 등 민주당 리버럴에 대한 반감이 젊은 남성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사회에 남성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18~29세 남성이 지난해 45%나 됐다. 2019년 32%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닛케이는 이런 계층이 남성성을 내세운 트럼프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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