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엔 ‘무죄추정의 원칙’이 명시돼 있다.
헌법 제27조 제4항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소위 고소나 고발이 돼 용의자 또는 피의자로 신분 변동이 있어도 최종 판결까지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거나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이 조항은 법의 적용보다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우선시한 조항이다.
세상은 ‘피의자 신상 공개’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범죄자 인권 문제와 직결된 이 논란은 죄를 저지른 비상식적 행위자의 인권이 과연 중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통상 죄지은 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진리인데 죄를 범한 가해자에게 충분한 처벌이 이뤄지기는커녕 처벌 수위도 지나치게 낮아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월 법제처는 이러한 비판 여론을 수렴해 ‘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4조는 법에서 정한 모든 요건이 총족될 때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특정중대범죄사건 피의자의 신상정보에 해당하는 얼굴과 성명·나이를 공개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개 요건은 △범행 수단의 잔인성·중대 피해 발생 △충분한 증거 보유 △국민의 알권리 보장·피의자의 재범 방지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 목적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이 아닌 경우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신상 공개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 제도는 수사 단계의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신중히 처리되고 있다.
최근 법과 처벌에 관한 논란의 쟁점은 사회에서 매우 중대하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을 해 국민적 공분이 커진 데 있다.
문제는 이렇게 약한 처벌을 받고 출소해 사회로 풀려난 범죄자가 보복을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재접근해 2차 가해하는 등 재범 피해 사례가 속출한다는 점이다. 죄가 극악무도하고 보복성 가해가 이뤄지는데도 처벌 수위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가가 하지 못하면 시민이 나서서 직접 흉악범을 처벌하겠다는 현대판 공개 처형 움직임도 심심찮게 포착되고 있다.
얼굴·신상 공개가 형법에서 정한 처벌의 종류에 속하지는 않는다. 형법에서 언급하는 형의 종류는 사형·징역·금고·자격상실·자격정지·벌금·구류·과료·몰수 등이다.
인권 침해를 무릅써야 하는 얼굴·신상 공개는 재범 방지의 목적에 의한 것이다.
신상이 공개되면 범죄 용의자에게는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 있으므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약한 처벌로 이어져 재범도 막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용의자를 보호하며 재범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상 공개가 처벌의 형태도 아니고 불법이 아님에도 때에 따라서는 처벌보다 훨씬 가혹한 처분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최근 동료 군무원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유기한 현역 군 장교 양광준의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졌다.
그런데 체포 과정에서 흉악범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호송 업무를 담당한 경찰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경찰관에 대한 인권 유린이 발생한 것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신체나 재산 나아가 생명에 해를 끼쳐 평범한 일상을 와해시킨 강력 범죄자에게 합당한 수준의 처벌이 아닌 과도한 안전 보호장치를 걸어 준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아울러 근원적인 대안 마련으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흉악 범죄와 이들이 벌이는 재범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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