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말이다. 연말연시에 웃음꽃이 피고 삶에 만족감을 느껴 본 게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무엇보다 현재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울한 예감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은 희망보다 절망감으로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정치의 질은 계속 하락하고, 정부의 무사안일 또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새해 시작이 한 달 이상 남았는데도 내년 한국 경제가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대내외 전망이 앞다투어 나온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미·중 마찰이 격화될 것이라는데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이 지목되고 있을 정도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기업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화두는 실종되고 눈살 찌푸려지는 정치 파행만 계속된다.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사회 공기가 절대 훈훈해질 수 없다. 특히 한국 경제는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이 활기를 띠지 못하면 내수도 덩달아 얼어붙고 당연히 양질의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는다. 한국 수출에 현재 두 개의 큰 숙제가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하나는 더 거세질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물밀듯이 해외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중국산의 공습이다. 사실 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되어 한국 제조업과 수출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백기를 들었다. 전 산업에 걸쳐 중국 내수시장 수요 대비 과잉 생산된 물량이 해외시장을 저가 공세로 초토화하고 있다. 세계 모든 시장, 심지어 한국 시장까지 중국산으로 경제 근간이 흔들릴 정도다.
중국산의 공습으로 지구촌이 온통 몸살을 앓고 있고 속수무책이다. 일례로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의 파죽지세로 시장에선 빠르게 지형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산 자동차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동남아 시장이 중국산에 넘어갔다. 유럽 차 시장도 중국 점령군이 안방을 차지하면서 무릎을 꿇리고 있다. 세계 2위 자동차 제조업체인 폴크스바겐은 공장 3곳을 폐쇄했고, 닛산·포드 등 완성차에 더해 보쉬·셰플러·노스볼트 등 부품(배터리) 업체까지 대규모 감원을 하면서 생태계가 크게 흔들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제조업의 70%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휘청거린다. 기술 격차는 없고 가격 열세는 점점 더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발(發) 과잉공급으로 인한 충격의 장기화다. 과거와는 다른 ‘차이나 리스크’가 고착화될 조짐이다.
불황의 늪에 빠진 석유화학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고부가 제품 위주로 재편을 유도한다지만 당장의 해결책은 아니다. 한국 기간산업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포스코도 더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산 공급 테러로 철강과 이차전지 공급 루트가 막히면서 사상 최대의 위기 상황이다. 마침내 45년 된 중국 1선재 공장 철수를 결정하면서 안방과 현지 시장에서 버틸 공간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올해 26% 고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중국산의 승승장구와 대조적으로 한국산의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유럽과 한국에서는 기술 제휴를 위해 중국 업체에 손을 내밀면서 중국 기술에 잇단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얄팍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한국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이 시점에 국가무역진흥기관인 코트라(KOTRA)가 트럼프노믹스 2.0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시장으로 아세안(ASEAN)을 꼽았다. 거세지는 통상 파고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평가로 이해된다.
아세안 시장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중국 시장 점유 비중을 만회할 수 있는 효자 시장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고 있는 중국산이 정조준하고 있는 시장도 이 지역이다. 절대 만만치가 않다.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시장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중국산과의 좁혀지는 기술 격차와 벌어지는 가격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세안 시장 운운하는 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단기 혹은 중장기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이나 개인 등 경제 주체들도 움츠러들고 초조해진다. 그리고 정치권이나 정부를 쳐다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더 강해진 강적들이 즐비하다. 모두가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 와중에 정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복합 위기가 엄습하고 있는데도 위기가 아니라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한국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둥지를 떠나려는 기업·사람·돈이 속절없이 늘어난다. 내년 경제만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좋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이보다 더 치명적인 중국산 저가 공세에 대한 대비책이 없으면 수출 시장이나 내수 시장에서 한국산이 설 자리가 계속 없어질 것이다. 민생을 살리겠다고 하면서도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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