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º
습도 55%
대전 7º
습도 75%
전주 2º
습도 55%
 내년도 예산안 일부(...'))
프랑스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2일(현지시간) 내년도 예산안 일부(복지 관련) 처리를 위해 초강수를 쓰다 정국을 혼돈에 빠뜨렸다. 예산안 가결이 난망하자 헌법 권한을 이용해 ‘의회 패싱(건너뛰기)’을 한 것이다. 야당은 즉각 불신임안을 발의하며 총리를 끌어내릴 기세다. 현 의석 구도상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못해 ‘셧다운’(정부의 일시적 업무정지)을 맞을지 모른다. 9월 들어선 바르니에정부가 ‘최단기 내각’ 불명예 속에 퇴진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정치적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셧다운이란 좌·우 격돌 끝에 벌어지는 극단적 사태다. 미국은 1976년 이래 21차례 겪었으나 프랑스에선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래 130여 회 이상 정부불신임 발의가 있었을 뿐 셧다운까지 가진 않았다. 미국 셧다운의 최근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첫 임기 시절 남부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두 차례(9시간·34일간) 연방정부 업무 중단이었다. 이 ‘34일’ 최고 기록 외 2주 이상의 셧다운은 낙태비용의 저소득층 의료보장 문제(지미 카터), 오바마 케어(버락 오바마) 갈등 등 모두 민주당 대통령 때 일이다.
바르니에 총리는 이날 정부 책임 아래 하원 표결 없이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헌법 제49조3항을 발동해 ‘사회보장 재정’ 법안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보장 재정안은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일부분으로 건강보험·국민연금·가족지원 등 각종 사회보장시스템의 수입·지출을 관리하는 예산안이다. 야당인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과 자국중심주의를 내세워 ‘극우’ 취급을 받아 온 국민연합(RN)이 해당 법안에 서로 다른 이유로 반대한다.
예컨대 NFP는 복지예산을 너무 깎았다며 불만인 반면, RN에선 경제침체로 인한 납세자들의 구매력 감소 등을 들어 복지예산을 더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 못할 것으로 판단한 바르니에 총리가 의회를 건너뛰기로 한 것이다. 바르니에는 “개개(정당)의 이익보다 국가 미래를 우선시해 책임을 보이라”고 촉구했으나 NFP와 RN은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는 “바르니에 총리가 1100만 유권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우리도 대응할 것”이라며 불신임안 발의 및 찬성 의지를 천명했다. NFP 또한 정부의 헌법 제49조3항 발동을 비난하며 “이 불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불신임안을 발의한다. 바르니에 다음엔 에마뉘엘 마크롱 차례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프랑스 헌법상 내각 불신임안에 하원 재적 의원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전체 의원 577명 중 2석 공석이라 가결 정족수는 288명이다. 불신임안이 통과되자마자 정부는 총사퇴해야 한다. 불신임안 표결이 4일 오후, 늦어도 5일 진행될 예정이다. 법률상·관행상 불신임안 가결로 정부가 붕괴하면 추진 중이던 예산안들도 전부 폐기된다.
릴 대학 공법 교수인 오렐리앙 보두는 일간 르몽드 인터뷰에서 “바르니에 정부가 무너지면 정부는 새로운 법안을 추진할 권한이 없어지며 일상적 업무 처리만 담당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달 31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못할 경우 공무원 급여나 국가 공급업체 결제대금을 지불할 수 없어 공공 서비스가 중단된다.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셧다운’으로 중앙정부 행정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런 파국을 피할 시나리오가 없진 있다. 우선 마크롱 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해 새 정부 권한 하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방안이다. 다만 총리 후임 지명 및 인준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6월 말∼7월 초 조기 총선에서 RN의 약진을 막으려는 총공세 끝에 NFP가 의회 1위에 올랐지만 마크롱은 좌·우 양측과 일정한 거리감 및 친화력을 함께 가진 바르니에(공화당)를 총리로 세웠다. 이들 연립정부 의석이 과반에 못 미쳐 정책 추진력은 여전히 미약한 상태였다.
절차대로 표결을 거치면 부결될 터였기에 바르니에 총리가 이날 헌법 조항을 이용해 예산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로 인해 ‘총리 불신임안’ 사태가 벌어졌으므로 마크롱은 후임 임명에 한층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예산안을 다시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연내 처리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렇게 되면 관련법 조항에 따라 올해 예산을 연장하는 특별법안을 제출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할 때까지 올해 예산으로 긴급 땜질하듯 쓰는 것이다.
특별법안마저 부결돼 셧다운 위기가 현실화하면 헌법16조의 ‘대통령 비상 권한’이 발동될 수 있다. 해당 조항은 국가의 독립·영토 보전이 심각하게 위협 당할 때뿐 아니라 공권력이 정상 작동을 못할 시를 위해 대통령에게 주어진 특별 권한이다. 대통령은 헌법위원회와 상·하원 의장과 공식 협의를 거쳐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으나 정치적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지난 74년간 내각 해산은 1962년 10월 샤를 드골 대통령 당시 조르주 퐁피두 정부가 유일하다. 드골이 이원집정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의회 절차 대신 국민투표에 붙이려 하자 의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불신임안이 가결돼 퐁피두 정부가 총사퇴했으나 드골은 의회해산·조기총선으로 맞섰으며 결국 범여권 승리로 퐁피두를 재임명할 수 있었다. 드골보다 불안정한 마크롱정권이 이 거센 파도를 넘어설지 주목된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