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章邯)은 통일 진(秦)나라의 장수다. 한 때 항가(項家) 세력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간 인물이다. 또한 환관 조고(趙高)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한 뒤 어처구니없게도 항가에 중용돼 기어이 ‘항가 궤멸’에 못 박다시피 한 괴이한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陳勝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여섯 개 나라는 부활했다. 이세황제 호해(胡亥)의 명으로 출병한 장한은 이들을 학살했다. 초(楚)나라의 기둥 항량(項梁)이 전사했고 초나라를 옹위하던 국가들도 백척간두에 섰다. ‘항가 궤멸’은 시간 문제였다.
항가는 항량의 조카 항우(項羽)의 무력에 한숨 돌렸다. ‘항가 궤멸’에 쐐기를 박으려 한 장한은 조정에 원군을 청했다. 장한을 시기한 조고는 모함했고 호해는 역정 냈다. 그러자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해 친정에 칼 겨눴다.
진나라를 이긴 항우는 장한을 옹왕(雍王)에 봉했다. 또 유방(劉邦) 저지 임무를 맡겼다. 유방은 항우의 책사 범증(范增)이 “항가를 무너뜨릴 자”라 우려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중책을 과거의 ‘항가 궤멸’ 주역에게 준 것이다. 장한은 항우를 자식처럼 키운 숙부이자 항가의 리더 ‘항량’을 척살한 자다.
‘원수 출신 용병’에게 중임을 부여한 것은 항가 몰락의 시발점이 됐다. 장한은 “항가는 망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관념 때문인지 방어선 구축 소홀 등 사고를 치고 패하면서 목이 달아났다. 유방은 옹나라가 있던 비옥한 관중(關中)을 근거지로 항가를 기어이 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냈다. 당시 많은 우파가 ‘보수 학살극’ 앞에 영어(囹圄)의 몸 또는 극단적 선택에 내몰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당시 정부 요인들과의 충돌 끝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당은 ‘보수 궤멸’을 막을 중책을 줬다.
이후 대야(對野) 행보는 실망이었다. 최근 ‘계엄’ 사태의 진실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자칫 ‘보수 궤멸’에 못 박을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윤 대통령 자신의 몰락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의 보수 승리 희망마저 뿌리째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시기를 화양연화(花樣年華·꽃다운 시절)라 칭한 한동훈 대표 행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현재도 ‘보수 궤멸’ 운운 중인 제1야당의 대표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보수 궤멸 확정’이라는 게 우파의 자조적 목소리다. 두 사람은 진충보당(盡忠報黨·충성을 다해 당의 은혜를 갚음) 자세로 홍준표 시장 등 중진의 조언에 적극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이 위기가 극복된다면 보수는 차기 대선에선 절대 동일한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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