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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공개
‘자율과 예방’ 패러다임 전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효과 있을까
사업장 위험요인 찾아 예방하는 ‘위험성 평가’ 도입
정부, OECD 수준으로 감축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공개
“규제완화 포석” “구체적 개선책 동반 필수” 입장 엇갈려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14 00:05:00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당정은 “2026년까지 중대재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줄지 않자 현재의 처벌 위주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규율 방식으로 예방 체계를 전환한다. 윤석열정부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공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번 대책이 중대재해법을 개악하려는 움직임이라며 반발했고 경제계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환영하지만 구체적 개선책이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제도개선 방향은 좋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여주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다며 다소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역효과 막는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자기규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은 올해 1월27일 시행됐는데, 그 후 법이 적용되는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24년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기 전에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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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어도 사고사망 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은 8년째 정체돼 있다”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보다는 스스로 규율하는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사망사고 만인율’, 즉 노동자 1만명 당 산재사망자 비중을 0.4‱(퍼밀리아드)대인 현재 수준에서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노동자 10만명 당 4명대에서 2.9명으로 줄이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우리나라 중대재해만인율은 0.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였다. 독일(0.07‱)이나 영국(0.08‱)과 비교하면 5~6배 높은 수준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이를 위해 노사가 함께 사업장에서 위험요소를 발굴하고 제거하는 ‘위험성 평가’ 제도가 도입된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대상 작업 노동자 등과 함께 파악해 관련 대책을 세워 실행하는 제도다.
 
노사가 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제도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 체계를 확립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위험성 평가를 2025년까지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5인 이상 모든 기업에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노동부의 감독 체계도 개편할 방침이다.
 
이 장관은 “처벌을 회피하려고 서류 작업에 치중하다 보니 중대재해법 도입 이후 오히려 사망사고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며 “선진국들이 일찍이 경험하고 증명해낸 자기규율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경희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도 “노사가 사업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어디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으며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등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매일 안전점검회의 시간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위험성 평가를 강조한 이유는 우선 산업안전 분야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예방 노력을 기울이는 게 선진국에서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범사례로 꼽고 있는 자기규율 예방 체계를 강조했던 1972년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뿐 아니라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자율적인 노사의 재해 예방 노력으로 성과를 거뒀다.
 
위험성 평가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문재인정부 시절 실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주장이다. 2019년 도입 당시 재해 관련 통계 지표가 반짝 개선됐지만, 그 후 3년 동안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또한 산안법 개정 및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예컨대 예방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고가 일어난 기업을 처벌하는 것 이상으로 사고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나 재해 예방에 투자하도록 기업들을 유도하는 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편, 위험성 평가에 대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법 개정이 필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 및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노동계 “규제완화 포석” vs 경제계 “로드맵 큰 방향 공감”
 
▲이정미(오른쪽 세번째) 정의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재판 증언대회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가운데 노동계는 이번 로드맵이 경제계가 바라는 규제완화의 일환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국노총은 로드맵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위험성 평가제 정착을 위해서 벌칙조항을 명확하게 제시할 것과 노동자 참여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노동자 처벌‧작업중지 완화 등 규제완화 내용이 곳곳에 박혀 있다"며 “중대재해법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제재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법을 축소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최명선 중대재해법제정본부 상황실장도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통계를 바탕으로 적합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어떻게 줄이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며 “매해 이주노동자가 100명 이상 사망해도 내놓는 대책은 교육뿐”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주요 경제 단체들은 로드맵을 환영한다면서도 구체적 개선책이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4개 단체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현재처럼 처벌 위주의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기업 자율에 따른 사전 예방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고용노동부의 로드맵에 공감을 표시했다. 
 
전경련은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는 정책 방향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경총은 “안전 주체의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을 기본 원칙으로 삼은 데 대해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 방식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며 경계했다. 경총은 “로드맵 세부 과제에선 자율은 명목 뿐이고 오히려 처벌과 감독을 강화해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중복규제 정비, 자의적 법 집행 방지를 위한 명확한 기준 마련 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규제에 불과할 뿐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과 예방’으로 패러다임 전환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기존 산업안전 정책·제도가 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현행법의 합리적 개선 없이 위험성 평가가 의무화되면 기업에 대한 ‘옥상옥’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로드맵의 취지가 잘 살 수 있게 기업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윤석열정부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자율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기로 발표하자 노동부가 여기에 맞춰서 서둘러 준비한 것 아닌가 싶다”며 “방향은 좋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충분한 고민이 담기지 않아 아쉽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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