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상반기 실적이 크게 악화됐으며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신작 ‘트릭스터M’, ‘블래이드앤소울2’ 등이 연달아 실패의 고배를 마신데다 ‘리니지M’ 등 주력 게임들의 과도한 과금 유도로 게임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결과다.
관련업계와 소액주주들은 김택헌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에게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사업논리에만 치중한 나머지 게임사, 나아가 기업으로서의 기본자세를 망각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김 수석부사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다. 김 수석부사장은 엔씨소프트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동생이다.
엔씨 전성기 일군 확률형 아이템, 게임이용자 원성·회사 위기 초래한 애물단지 전락
게임업계 등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어제(28)일 종가 기준 57만1000원이다. 연초에 기록했던 100만원대 주가 대비 40% 넘게 하락했다. 신작 트릭스터M, 블래이드앤소울2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며 실적이 크게 나빠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연결 기준 엔씨소프트의 상반기 매출은 1조5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22%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1695억원으로 전년 4504억원에서 62.37%나 떨어졌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신작 게임의 흥행실패와 실적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엔씨소프트 주요 사업모델(BM)인 ‘확률형 아이템’이 지목된다.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 이용자들의 피로도를 높이면서 엔씨소프트를 향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됐고 그 결과 신작 또한 외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 아이템의 일종이다.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사용가능한 일종의 도구다. 확률형 아이템 구매자는 게임 회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특정 가치의 아이템을 지급받을 수 있다. 대부분이 유료로 판매되고 있으며 이용자는 확률형 아이템을 열어보기 전까지 그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확률형 아이템의 특성 때문에 과도한 과금 유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주력 지적재산권(IP)인 ‘리니지’ 시리즈를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 나섰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17년 출시된 리니지M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 게임 내 핵심 아이템 대부분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판매했다. 최상급 아이템의 경우 획득을 위한 기대비용만 현금 수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게임 이용자들은 리니지M의 확률형 아이템 획득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확률형 아이템들의 성능이 워낙 우수했기 때문이다. 리니지M 핵심고객들의 구매력이 상당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리니지M 성공을 기반으로 엔씨소프트는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2017년 엔씨소프트는 연결기준 1조758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9836억원의 2배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영업이익도 3288억원에서 58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엔 창사 첫 2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조4162억원, 영업이익 8248억원이다. 전체 매출액 중 8287억원이 리니지M에서 나왔다. 리니지M과 비슷한 BM을 적용했던 ‘리니지2M’의 매출액 역시 8496억원에 달했다. 덕분에 엔씨소프트 주가도 100만원 전후까지 훌쩍 뛰었다.
문제는 역대급 실적과 별개로 게임 이용자들의 피로도와 불만이 누적됐다는 점이었다. 리니지M의 경우 게임 이용자가 즐길 수 있던 콘텐츠가 많지 않았고 몇 안 되는 콘텐츠마저도 확률형 아이템 없이는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했다. 게임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이 일었지만 게임성은 개선되지 않았고 과금 유도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게임 이용자들은 리니지M을 떠나기 시작했다.
리니지M 이탈 현상은 최근의 통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빅데이터 플랫폼 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3월 안드로이드 기준 리니지M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수는 18만7822명이다. 전달 23만3937명과 비교해 25%나 줄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출시했던 트릭스터M, 블래이드앤소울2 등에도 리니지M와 비슷한 BM을 적용했다.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들이었지만 외형만 다를 뿐 사실상 리니지M과 다를 것 없다는 비판이 불거져 나왔다. 비슷한 시기 경쟁사들이 내놓은 작품과 비교해 게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엔씨소프트 사태’ 원인 제공자는 김택진 대표의 동생 김택헌 수석부사장…퇴진하라”
엔씨소프트 소액주주들과 다수의 전문가들은 엔씨소프트의 전성기를 불러온 확률형 아이템 기반 BM이 현재는 회사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학회장(중앙대학교 교수)는 “엔씨소프트가 확률형 아이템 기반 BM으로 너무 많은 돈을 벌었다. 김택진 대표도 확률형 아이템 BM이 이정도로 성공할 줄은 예상 못했을 것이다”며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성공이 독으로 돌아와 엔씨소프트를 갉아먹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단위 매출을 일으킨 BM을 두고 새로운 시도에 나서기엔 부담이 컸거나 혹은 새로운 시도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며 “엔씨소프트는 사실상의 자기복제만 반복하고 있으며 최근 내놓은 신작들만 봐도 새 옷만 입혔을 뿐 리니지M과 차이점을 찾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은 엔씨소프트가 확률형 아이템 기반 BM외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내부 문제를 지목했다. 리니지M, 리니지2M 등의 잇따른 성공으로 발언권이 강화된 엔씨소프트 사업부가 개발부를 통제하면서 게임 콘텐츠 개발보다 BM 강화에 주력했다는 설명이다.
소액주주 중 일부는 김택헌 수석부사장의 존재가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 수석부사장은 엔씨소프트 창업주이자 대주주인 김 대표의 동생이다. CPO(Chief Publishing Officer·최고퍼블리싱책임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퍼블리싱(Publishing)’이란 게임의 사업화 전반을 뜻한다. 전략·기획·마케팅·홍보 업무를 모두 주관하고 있다.
이런 김 수석부사장이 사실상의 수장으로 있는 사업부의 요구를 개발부가 외면하기 힘들다는 게 소액주주들의 시각이다. 개발부는 자신들의 역량을 BM 강화에 쏟게 됐으며 자연스레 엔씨소프트 작품들의 게임성이 악화됐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액주주는 “최근의 엔씨소프트를 보면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BM에만 집중할 뿐 달리 눈길을 끌만한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개발부의 역량이 크게 제한됐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며 이게 사업부의 통제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창적 콘텐츠 없이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걸 리니지M과 리니지2M 등이 증명했으니 게임개발 대신 과금 시스템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업부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며 “특히 사업부 수장이 김택헌 수석부사장이라는 점에서 개발부는 사업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수석부사장이 최근의 사태 등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위 학회장의 경우 본인의 페이스북에 ‘엔씨 블소2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택헌 수석부사장이 퇴진해야 한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엔씨소프트의 블래이드앤소울2 항의 사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대외 커뮤니케이션 불통이라는 적폐가 일거에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엔씨소프트는 기업으로서의 리스크 관리와 사회적 관계 유지 유저와의 신뢰 회복에 실패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경영진의 쇄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인다”며 “경영진 쇄신은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리니지2M 등의 사업 안착을 주도해 왔다고 알려진 김택헌 수석부사장의 퇴진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엔씨소프트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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