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무허가 판잣집이 즐비했던 서울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에서 살았다. 이후 초등 3학년에서 5학년 때 부산 광복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그가 살던 집에는 전기가 안 들어와 힘든 생활을 했으며 부친의 사무실 한쪽을 판자로 막고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오 시장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 수예품점을 차렸다. 장사가 잘되면서 어느 정도 가난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훗날 오 시장은 “살림이 나아져 좋았지만 비좁고 침침한 가게 모퉁이에 앉아 계신 어머님의 모습이 마음 아팠다”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당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관상용 새를 키워 팔아 용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1979년 한국외국어대 법정학부에 입학후 이듬해 고려대 법학과로 편입학했다. 이후 1984년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사법연수원 시절 식중독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16기로 입소해 17기로 졸업했다.
군 제대 후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해 1994년 부평의 한 아파트 일조권 문제로 대기업과 맞서 승리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오 시장은 환경운동연합 전 대표였던 최열 씨와 함께 창립에 참여, 1992년부터 약 5년간 시민상담실 실장으로 무료상담을 진행했다.
아울러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 환경운동연합 중앙집행위원 등을 맡으며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MBC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SBS ‘뉴스 따라잡기’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토론 오늘과 내일’ 등 각종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법률 상담 등과 진행을 맡았다.
오 시장은 헌칠한 외모, 뛰어난 언변으로 ‘스타변호사’로 거듭나며 여•야의 러브콜을 받았다. 오 시장은 당시 교수직과 정치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환경을 잘 아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정계 진출을 결심했다.
이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 을에 출마해 승리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 정치 개혁과 혁신을 주장하며 정치발전에 큰 목소리를 냈다. 17대 총선에서 이 뜻을 관철하기 위해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
서울특별시장으로서도 성과가 많았다. 다산콜센터 설립,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 등을 이뤘으며 디자인서울 기치를 내걸고 서울서체 정립(서울한강체, 서울남산체) 등을 추진했다. 또한 서울의 명소가 된 동대문디지털프라자(DDP), 세빛둥둥섬 등을 건설했다.
이후 민선 시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2011년 시장직을 걸고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참여율 저조로 개표조차 못하면서 사퇴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치1번지’ 종로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17년에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을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다.
국민의당과의 합당에 반대해 2018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 복당했다. 이후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화려한 정계 복귀를 노렸지만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 헌정 사상 두 번째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된 오 시장은 올해 열린 6.1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누르고 승리하며 4선에 성공했다.
4선 오세훈 시장이 임기 연속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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