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젠더 갈등 문제가 극에 치닫고 있다. 여성 유저가 많은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을, 남성 유저가 많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롱하고 짓밟는다. 온라인상의 젠더 갈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각자 자신이 더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통계도 나타났다. 여성과 남성 간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쟁이 혐오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건강한 공론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성별이 차별로 느끼는 문제들을 갈등 소재가 아닌 함께 고민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젠더 갈등
2022년 12월26일 남성 유저가 많은 커뮤니티를 확인해 보니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이 만연했다. 이들은 여성의 학력이 초등학교 수준이 적합하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같은 날 여성 유저가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이 ‘사회의 악’으로 치부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발현되던 갈등이 오프라인으로 번진 대표적 사례는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신논현역 인근 빌딩의 화장실에서 범죄 대상을 물색하던 김모 씨는 1시간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20대 여성 하씨를 살해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가 6명의 남성은 지나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임이 드러나면서 초점이 ‘묻지 마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 살인’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추모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여성이라 당했다”고 주장하며 불안함을 호소했다. 이에 일부 남성들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고 대응하면서 충돌이 빈번히 발생했다.
해당 사건 이후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에만 주목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사건·사고의 본질이나 문제 해결보다 성별에 따라 누가 더 차별받고 있느냐로 뒤바뀐 것이다.
지난해 10월에 발생한 평택 SPC 공장 사망 사고도 마찬가지다. 평택 SPC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이 사고를 당하자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차별적 노동환경’을 문제로 꼽았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자가 당한 사고는 논란이 없다가 20대 여성이 당하자 나라가 뒤집혔다’며 역차별을 주장했다.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성별 이슈가 뒤덮으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만 늘어나고 있다.
서로 차별받는다 생각하는 이성… 필요한 것은 ‘소통’
실제로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이 4월 발표한 ‘젠더 갈등과 성차별 인식’에 따르면 남성 중 40%는 ‘여성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 답했고 여성의 52%는 ‘남성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 답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차이는 선명해졌다.
2021년 2월에는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63%였지만 2022년 2월에는 71%로 늘어났다. 향후 젠더 갈등의 흐름에 대한 질문에도 ‘지금보다 심각해질 것’이라는 답변이 27%였고 ‘지금과 비슷한 수준’은 52%로 79%가 젠더 갈등의 향후 흐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남성 A씨(25)는 “여경 비율을 늘리는 것도 그렇고 영화진흥위원회에 여성 가산점 등이 왜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책적인 측면에서 남성이 역차별당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인식 문제에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A씨는 “무고죄는 성립되기 어려운데 성범죄로 한 번 고소 당하면 성범죄자로 낙인이 찍히지 않느냐”며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한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후일 것”이라 말했다.
여초 커뮤니티 유저인 여성 B씨(28)는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n번방 사건 등 심각한 여성 혐오 범죄가 있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며 이성 갈등 문제를 진단했다. B씨는 엘리베이터부터 밤길을 걸을 때조차 귀를 곤두세우는 경험은 여성에게 보편적이라며 불안을 호소했다.
같은 여초 커뮤니티 유저인 여성 C씨(28)도 “살면서 운이 좋아 나에게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것일 뿐 없었던 것은 아니다”며 “돌아보면 가족 관계에서 남자 형제와의 차별부터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인사, 미성년자 때 들었던 성희롱 모두 차별이었다”며 경험담을 털어놨다.
세 사람은 성별마다 극명한 차이를 보였지만 공통적인 답변도 있었다. 갈등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소통’의 중요성을 꼽았다. A씨는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차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커뮤니티 내 극단적인 의견에만 노출될수록 상대방을 배척하게 된다는 것이다.
B씨와 C씨도 마찬가지였다. B씨는 “인터넷만이 아닌 공개적인 장소에서 건전한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씨도 “무분별한 커뮤니티와 인터넷상의 가짜뉴스를 판별하며 서로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 밝혔다.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 있어야… 미디어도 갈등 부추기지 말아야 해
전문가들도 이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도시모니터링 센터장은 이성 갈등이 ‘교육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변 센터장은 “젊은 세대들이 다양성을 우선시하는데 정작 교육 과정에서 다양성을 수용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며 ‘공론장’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의 주장을 들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 센터장은 여성과 남성 각자 어려운 점이 있기 마련이라며 “성별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이슈들을 사례별로 나눠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별로 차별받는다고 인식하는 이슈들을 개별로 분리해 함께 해결해 나갈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었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이성 갈등 문제에 대해 “모두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라 진단하면서 “미디어가 소수의 불씨를 확대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거에 기반한 보도로 현실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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