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 투자액이 말라가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해 7조 원 이상 감소했다. 금융당국은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아직 효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규제를 완화해 벤처업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민간 중심 모험자본시장을 조성해 벤처투자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1일 스타트업 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스타트업·중소기업에 투입된 자금은 2조8910억 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9조9944억 원) 대비 71.8%(7조1034억 원) 감소한 수치다. 신규 투자 건수도 1177건에서 547건으로 53.5% 줄어들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시드(창업 1년 이내)와 시리즈A(제품 제작 또는 서비스 오픈 준비 전) 단계의 상반기 투자는 443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다. 건당 투자액도 29억3000만 원에서 25억2000만 원으로 4억 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대규모 투자 사례도 드물었다. 상반기 100억 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건수는 74건이었다. 작년 상반기(235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1000억 원 이상 유치한 곳도 비욘드뮤직(2000억 원)·컬리(1000억 원) 정도였다. 1년 전 버킷플레이스(2350억 원)·쏘카(1832억 원)·스마트스코어(1800억 원)·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1746억 원) 등이 투자금을 받아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다보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등장은 묘연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5월)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수가 2.7배(449개→1,209개) 늘어나는 동안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수는 1.4배(10개→14개)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 기간 한국 유니콘의 전 세계 비중은 2.2%에서 1.2%로 주저앉았다.
정부도 손을 놓지는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7일 금융투자업규정을 개정해 자산운용사가 창업투자회사 등과 함께 벤처투자법에 따른 벤처투자조합을 공동운용(co-GP)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4월에는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세컨더리 펀드 조성,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 확대 등의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다만 벤처업계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에 손을 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경련은 지난달 초 “일반지주회사의 CVC 펀드를 조성할 때의 외부자금 비율을 최대 40%로 제한하고 있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CVC란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VC)로 그룹 계열사, 그룹 외부출자자의 펀딩을 받아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CVC가 조성하는 펀드의 외부 자금 비중은 40%로 제한된다. 해외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비율도 조성액의 20%를 넘지 못한다. 모기업의 장기적·전략적 투자 측면이 강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하는 CVC로서는 투자 제약이 큰 상황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지주회사 소속 CVC가 외부 투자자와 50:50 지분으로 출자해 펀드를 조성하고 공동운용을 검토했으나 규제로 인해 무산됐다”며 “벤처투자조합 공동운용 시 운용주체가 50%씩 출자하는 것이 업계의 관례인데 일반지주회사 CVC는 외부투자자가 40%까지 출자가 가능해 (금융투자업규정 개정) 규제완화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 중심의 모험자본시장을 조성해 지속가능한 스케일업(규모 확대), 유니콘이 육성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5~2021년 7년간 우리나라에서 결성된 벤처펀드의 평균 규모는 279억 원으로 미국(1900억 원)·중국(1100억 원)보다 훨씬 작다. 우리나라 벤처조합 후속투자 비중도 2021년 기준 미국(92.6%) 대비 낮은 71.2% 수준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창업후기 대규모 지분투자를 수행할 자금이 크지 않고 자본시장 투자자층이 두텁지 않다”며 “모험자본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투자 창의성과 자율성을 확대해 투자 역량을 제고하고 시장 원리에 기초한 투자금 배분을 통해 투자금이 대형화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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