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땅에서만 수천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나치(1933~45)는 모순으로 가득 찬 신비주의 집단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사람들은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진학해 화가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하곤 한다. 그는 실제로 우편엽서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번번이 미술학교 입시에서 낙방해 머리끝까지 화가 난 히틀러는 아카데미 원장을 찾아가 불합격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의 그림을 유심히 살핀 원장이 “나는 아돌프가 화가가 아닌 다른 길로 나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때 미술학교에서 히틀러를 받아 주었어야 했다.
히틀러가 가진 또 하나의 재능은 연설이었다. 연설 하나로 수많은 청중을 감동시킨 그는 루돌프 헤스라는 유능한 조력자를 만나 ‘나의 투쟁’을 대필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과장과 거짓말로 점철된 글이었지만 책은 발간 연도인 1925년에만 1만 부나 팔렸다.
나치는 히틀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청소년들에게 가르쳤는데 매년 2000명에 이르는 히틀러 청소년단원들을 이끌고 800km를 행진하는 ‘아돌프 히틀러 행군’을 펼쳤다. 행군의 마지막 순서는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구술했던 란츠베르크 요새 감옥에서 신비주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성지순례였던 셈이다.
승부욕이 강했던 아돌프는 권력을 쥐기까지는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막상 독일이 자기 발아래 굴러떨어지자 정치에 흥미를 잃고 비서 보어만에 서류 결재를 일임해 버렸다.
그나마 그가 끝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게 예술과 전쟁이었다. 그는 일찍이 점쟁이로부터 ‘영웅이 될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웅장한 건축물과 장엄한 음악을 감상하며 세계 정복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들곤 했다.
히틀러의 개인 경호대인 친위대(SS)는 인종 말살을 주도하는 등 악명 높은 전쟁범죄 집단이었다. SS 장관 하인리히 힘러는 히틀러를 우상으로 숭배한 나머지 고대 게르만 전설의 슈바르체 존네(검은 태양)를 SS의 문장으로 사용했다.
히틀러는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했고 부하들은 그를 우상화시켰다. 그 자체로 신비주의 집단이었던 나치는 민간인을 3000만 명 이상 살해한 끝에 본인도 자살하거나 전범 재판을 통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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