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나 연인의 갈등이 강력범죄로 번지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범죄심리학자 공정식 경기대 교수 연구팀은 1973∼2021년의 친밀관계 폭력사건 판결문 약 80건을 분석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가해자가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닌 ‘관계 밖’ 사람을 공격한 사례 가운데 63.8%(39건)가 피해자의 부모나 형제자매 등 가족을 향한 보복이었다.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갈등을 대화로 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 그 폭력이 당사자도 아닌 가족을 향하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와 깊이 닿아 있다. 겉으로는 가족이 해체되는 듯 보여도 내면에는 여전히 '집안' 의식이 남아 있고,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은 곧 양가의 결합으로 받아들여진다. '집안 망신'이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도 보수적이어서, 안에서 곪고 흔들려도 어떻게든 지켜야 할 성역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가부장 의식이 겹친다. 아내를 소유물처럼 여기는 남편에게 부부 갈등은 곧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견고해야 할 가정이 흔들리는 것은 그에게 치욕이자 자존감의 붕괴다. 한편 아내에게 친정은 여전히 정서적·현실적 버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영향력은 자녀가 독립한 뒤에도 크고, 결혼한 부부는 양쪽 모두 원가족과 긴밀하다. 그래서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든 부부 문제는 쉽게 양가의 문제로 번진다.
이 유형의 가해자가 된 남편들의 심리를 따라가 보자. 아내가 이혼을 준비하며 친정에 머물거나 부모의 정서적·경제적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는다면, 가장을 자처하는 남편의 눈에 처가는 자신의 성역을 무너뜨리는 '악의 근원'으로 비친다. 그는 장인·장모나 아내의 형제자매가 갈등을 부추겼다고 오판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문제는 본질에서 벗어나고, 보복의 총구는 아내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향한다. 최근 서울 송파구에서 벌어진 장모 살해 사건도 이 유형에 가깝다. 가해자는 장인·장모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을 지목하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이어 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범죄에 대해 사회적·제도적 대책을 내놓는다. 친밀관계 폭력을 별도의 범죄 유형으로 규정하는 독립 법률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접근금지 같은 보호조치를 피해자 가족에게까지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 협박이 처가로 향하기 시작하면, 수사·보호 체계가 이 위험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처가를 향한 집착과 위협을 ‘집안일’로 치부하지 않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시급한 일은 예방이다. 문제의 뿌리에 집중하자. 관계와 가정을 소유하고 지탱할 고정물로 보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세상 모든것은 변한다.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가정의 모습도 예외가 아니다. 관계는 변할 수 있고 끝날 수도 있으며, 상대의 떠남을 받아들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고착된 생각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 이혼과 이별을 실패가 아닌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관계를 움켜쥐지 않고 물줄기로 흘려주는 성숙함이 예방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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